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형제복지원의 원천은 박정희 시대부터



  대한민국 헌정 70년 역사에서 37년을 독재정치(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 전두환 7년)를 했으니 일제 36년 강제점령기(일제 강점기) 36년보다 긴 세월을 인권유린 당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특히 박정희는 5.16군사정변의 괴수로 유신독재까지 했으며 전두환은 12.12군사반란을 통해 실권을 쥐고 7년 간 국민을 살해하며 갖은 횡포를 동원한 위인이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키운 군 장교로서 그 뒤를 이어 약간의 정치적 향로를 바꿔가면서 국민을 회유하며 기만했다.
  전두환이 정치범을 죽이기 위해 삼청교육대를 세워 감금하고 갖은 학대를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사회정화라는 구실을 붙여 폭력배들을 소탕할 목적이라지만 그 내부에는 정치범을 혹사시켜 기를 죽여 길들이기 전법을 취했던 것이다.
  나무위키는 삼청교육대를 1918~1988년에 걸쳐 있었던 제정 러시아와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인 굴라크(Gulag 노동교화소)와 비견하고 있다.
  물론 북한과 중공의 노동교화소도 굴라크의 규법을 배워온 것이라고 하니 대한민국 과거 정권이 얼마나 괴물 정치를 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가?

  전두환은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세워 부산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에 있던 형제복지원으로 마구잡이 몰아넣기 시작했다.
  형제 복지원은 박정희 유신독재시절 세워진 사단법인 재단이다.
  아이들 머리수자에 의해 국고지원을 받았었기에 좁은 방 속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복지시설도 없는 사회단체로 폭력과 감금을 마다하지 않은 허접한 시설에서 아이들은 매를 맞아 죽어갔다.
  그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망자수만 513명이라고 하는데 실제 수자는 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죽은 아이들은 기백만원을 받고 의대생들의 실습용이 되기도 했다니 인권이나 있었던 대한민국인가?
  결국 전두환도 독재자 박정희가 세워 논 시설들을 이용해서 정치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 아이들 중에는 길을 잃고 방황하던 아이들도 있고 재수없이 경찰에게 잡혀 혐의도 없이 따라가야만 했던 아이들도 있었다니 독재 시대의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3,000여 명이나 수용하던 시설이니 그 속에서 이뤄진 비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
  2012년 5월에서야 그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1987년 복지원이 폐쇠되고 25년 뒤 한종선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세상에 그 사실을 전하게 된다.
  전규찬 교수가 한종선 그리고 박래군과 공저로 <살아남은 아이>를 발표하면서 그 내막이 수면위로 뜨고 말았다.
  형제복지원 12년의 역사를 책 하나로 어찌 다 엮었다고 할 수 있겠냐만 억울했던 그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알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박정희는 서산군 인지면 모월리의 뻘밭으로 '대한청소년 개척단'이라는 부량청소년과 윤락여성들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장면 정부를 몰아낸 것에 민의를 사기 위한 조치로 깡패 소탕과 사회정화라는 명목을 걸고 국민을 기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수가 많을 때는 1,700명이 육박할 정도로 전국에 걸쳐 있는 집 잃은 아이들과 청년들을 긁어모은 것이다.
  개뻘을 매워 농지로 개간해서 쌀밥을 먹게 하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네 명 중 한 명은 15세 아이들이다
  허드레 일은 도맡아 해야 했던 아이들은 멀건 소금 국에 깡보리밥이 전부였다고 한다.
  을지로에서 자동차 조립 공장을 하는 민정식이 그 원장을 맡았는데 미국에서 정부를 통해 들어온 잉여 농산물과 구호물자를 보라는 듯 시장에 내다 팔아먹고 경찰서장과 도지사를 주무르며 자신이 박정희 동서라며 떠벌리고 다녔던 인물이다.
  박정희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정권을 참칭하는 것은 물론 권력을 빌지 않고 1,700여명의 입과 주위 마을 사람들까지 어떻게 입을 봉하게 할 수 있었을까?
  서산 일대에서는 '개척단'이라는 말만 나오면 울던 아이도 눈물을 그칠 정도로 흉악한 고통을 받는 집단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구호반원들은 채찍을 휘드르고 있었다니 그들의 고행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나무위키는 대한청소년 개척단을 두고 박정희 식 군함도로 비견시키고 있다.

  박정희는 개척단원들을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내보내는 대한뉴스와 국정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125 쌍 합동결혼식도 거행한다.
  남성들을 운동장에 줄지어 세워놓고 여성들을 시켜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으면 골라내라고 했는데 여성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거부하자 '윤락여'라는 호칭을 아끼지 않고 인권을 농락했다고 한다.
  결국 125쌍 결혼식을 거행했으나 가정생활이 원만해진 것은 40여 남짓?
 
  사람의 인권은 없었고 말을 안 들으면 주먹으로 처서 죽일 정도로 극악무도했던 구호반원도 있었단다.
  인근 야산에는 죄없이 죽어간 시신들이 장사도 지내지 않고 마구잡이로 묻었기 때문에 제법 비가 많이 오면 흙이 흘러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어 그 산은 갈 수 없는 산이 되고 있었다니 처참한 상황을 누가 알려고 했을 것인가?
  부산형제복지원도 그와 같았으니 결국 전두환도 박정희의 전철을 밟아 국민 인권유린에는 동등한 처세를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부산 형제복지원도 1975년 박정희 시절부터 시행된 것이나 전두환 시절 더욱 도드라지고 있었기에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독재 죄악의 최고 정점은 박정희요 그것을 쫓아 한 것은 전두환인데 전두환은 광주민주화운동에 지극한 죄를 진 자이니 더욱 드러나보이는 것은 아닌지?
  물론 전두환은 살아 생전 법에 의해 대통령직을 박탈 당한 사실이 있지만 박정희는 전두환 정권이 김재규 민주 의사를 사형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박정희가 지금도 국립현충원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곤히 잠에 취해 있는 것 같다.
  어서 깨어나 독재자 박정희를 심판하여 현충원 밖으로 몰아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음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참혹상 생생히 증언…눈물 쏟은 검찰총장'이라는 제하의 연합뉴스이다. 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49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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