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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4일 일요일

민주주의 후퇴 죄인 김종필에게 백안시



정부는 독재를 조력한 김종필에게 무궁화장 줄 건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白眼視(백안시)로 바라보는 김종필인데 문재인 정부조차 국민을 배반할 것인가?
대한민국 정치역사를 뒤바뀌게 한 주역 중 주역이 김종필이었는데 죽은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줄 생각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이 어떤 관심을 보이는 지 떠보고 있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대한민국 훈장이 남아돌아 박정희 독재의 조력자에게 무궁화장을 준다는 것인가?
SBS
故 김종필 조문 행렬 계속'무궁화장 추서두고 논란이란 제목을 걸고 낸 그 밑의 댓글에 어떤 글들이 나오고 있는지 잘 보기 바란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이완용에게도 무궁화 훈장을 줄 거냐?”고 묻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잘 기억하기 바란다!
고 김종필의 장례식장에 찾아가는 민주화의 주역들의 예절은 老子(노자)철학의 報怨以德(보원이덕)에서 나올 수는 있어도 眞心(진심)이 얼마나 있을지 파악하기 바란다.


김종필은 5.16쿠데타의 重役(중역)을 맡은 것만이 아니다.
색마이자 독재자 박정희가 국민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남산의 중앙정보부장에 앉혀두고 김종필이 35세 철모르던 시절에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지 않는가?
민주화 투사들을 가두어두고 갖은 고문으로 없는 죄를 생산해낸 김종필!
그에게 무궁화장을 준다고?
민주당도 국민을 조롱할 것인가?
白眼視(백안시)가 되지 않는다면 그는 민주화 투사의 자격이 있을 것인가?
국가 훈장은 예절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영예의 훈장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재를 산출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이에게 주는 報怨以德(보원이덕)의 물품이 아니란 말이다.


1979년 박정희가 義士(의사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자 전두환은 김종필을 가두었다.
7년 동안 김종필의 권력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 투사들의 1987년 6월 항쟁을 틈타 죽은 권력을 되살려 민주화의 역군인양 가면을 쓰고 정치꾼으로 둔갑한 김종필 아니던가?
그 때문에 파생된 정치꾼들이 얼마였던가?
자유한국당 그 속에 잠용들처럼 살아 숨을 쉬며 민주주의를 짓밟은 주역들이 그 안에서 입만 살아 움직이고 있잖은가!
그들은 박정희 독재정치의 산물은 아닐지언정 그 脈絡(맥락)을 이어가려고 하며 민주화를 毁謗(훼방)놓고 있지 않은가?
지금 국민들은 2020년 4월만 되면 그들을 쳐버리겠다고 이를 앙달물고 있는데 민주화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김종필에게 무궁화장을 勳章(훈장)을 하겠다고?
눈에 흰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민주화 투사였던가?
白眼視(백안시).


白眼視(백안시)
마땅찮은 일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을 흘기게 되는 현상이다.
업신여기거나 냉대할 때도 눈의 흰자가 보일 정도로 째려보게 된다.
직역을 하면 흰 눈동자가 드러나게 흘겨보는 눈

희다백색날이 새다()
눈구멍눈매보다()
자세히 살피다주관하다()

中國(중국()나라와 ()나라 중간에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가 형성된다.
그 시절 중국인들에게 孔子(공자사상이 왕성할 때 朝廷(조정)에서 벼슬아치들이 지나친 예절에 치우치는 것이 싫어 정치를 버리고 살던 *竹林七賢(죽림칠현)들이 있었다.
*老莊(노장)의 虛無(허무學文(학문)에 정통하던 이 인물들 중 阮籍(완적)이라는 이는 수많은 서적을 탐독했으나 술도 좋아하고 거문고도 즐기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원적은 특히나 예절에 치우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칠현 중 嵆康(혜강)의 형 嵆喜(혜희)가 찾아오자 세속 정치(예절만 앞세우며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는 정치)를 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白眼視[눈에서 흰자가 나올 정도로 유심히 쳐다봄]하고 그냥 보낼 정도로 세속 정치인들을 싫어 했다.
하지만 죽림칠현인 혜강이 찾아오면 반가이 맞으며 靑眼視(청안시=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맑은 눈으로 바라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세속정치인들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母親(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세속정치인들이 찾아와 장례예절에 따라 ()을 할 때 같이하지도 않고 묵묵히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인가?
그는 본시 성내는 법도 없었지만,
즐겁다고 마냥 기뻐하지도 않았다는 인물이다.
그의 성품 때문일까?
예절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세속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항상 白眼視(백안시)였다고 해서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보는 것을 두고 白眼視(백안시)’라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예절은 孔子(공자)도 싫어했다.
사마씨 후손들이 공자의 본 뜻도 모르고 지나치게 예절을 해옴에 따라 일종의 病弊(병폐)가 된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고인이 된 김종필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汚點(오점)을 남긴 인물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죄인이라고 본다.
1987년 이후 그가 1990년 대 초 김대중과 합의 정치를 한 것 때문에 김대중도 정치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첫 총리에 김종필이 국회청문회에서 어떤 수모를 당하고 있었던가?
억지를 쓴 김대중도 미었던 시절 아닌가?
왜 김대중과 노무현이 민주화에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의 지대한 추대를 다 받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 잘 알지 않는가?
지나친 예우는 白眼視(백안시)가 되는 것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요약중국 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

중국 위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였다그중 유명한 7인을 죽림칠현으로 부르는데 그들의 이름은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이다그들은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신봉하여 지배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소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하여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하기도 하였다이후 이들은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씨의 일족에 의해 회유되어 해산되었다하지만 이들 중 혜강은 끝까지 사마씨의 회유를 뿌리치다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루쉰[魯迅]은 그들의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교(奇矯)한 행동이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들이 그룹을 형성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집권자에게 죽음을 당하거나타협하여 관계로 돌아가거나 하여 모두 흩어졌지만그 풍부한 일화는 그 후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인물평론이나 회화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죽림칠현 [竹林七賢] (두산백과)

 
*老莊(노장)
老子(노자)와 莊子(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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