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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30일 목요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적합한가?



유은혜의 교육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2기 개각을 단행하면서 18개 부처 중 5곳의 장관을 새로 내정했다는 뉴스다.
2기 내각의 면면을 살펴보면 신임 내정자들을 포함한 18부 장관의 평균 나이는 만 60(1958년생)로 낮아지고 여성장관은 5명으로 27.7% 비율이다.
지난 1기 입각자 평균 나이가 만 62세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2살 이상 젊어졌다고 한다.
그 중 신임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로 유은혜(1962~ )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돋보이고 있다.
그의 과거사들도 나돌며 夫君(부군장안식 씨까지 새롭게 돋보여지는 인물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교육부 장관의 직이 정말 무거운데 잘 해 나갈지 조금은 의심스럽게 하는 뉴스까지 나왔다.
부산일보는
‘"유은혜 의원교육부장관 후보 지명 철회하라청와대 국민청원 시작… 참여자 1만 명 육박이라는 제목을 걸고,
그가 교육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다는 것을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대한민국 교육부장관은 정말 고통스러운 자리라는 것을 잘 안다.
이승만 정권부터 그랬다.
손을 잘 비비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올랐으니 하는 말이다.
박정희 독재자가 정권을 쥐고는 그의 子息(자식)들이 입시가 있는 그 해에 따라 교육부의 방침이 바뀌곤 했다.
특히 박지만 군이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1968년 뺑뺑이 입시라는 것이 등장해서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실도 있었다.
모든 장관들이 최고 존엄이라는 인물에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데 특별하게도 교육부장관들은 질질 끌려가는 것만 같았으니 지금껏 대학 입시가 정착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이번 김상곤 전 장관 문책 경질도 대학입시의 中立(중립)이 흔들린 때문이다.
37년의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교육적으로 어떤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있을 리 없겠지만 특히 교육제도에 불신이 따른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유은혜 지명자가 국회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하게 된다면 어떤 교육제도를 도입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약간의 기대도 해본다.
그가 성균관 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때문이다.
그의 所信(소신)도 그 학문이 바탕 돼 남편의 외조를 받지 않았을까?
서둘지 말고 차분하게 이끌 수 있었으면 한다.

 

서울 휘경초등학교와 동대문여자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은혜는 반장을 도맡아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나무위키는 적고 있다.
하지만 서울 송곡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여 2학년 재학시절 학교가 비리 사학과 족벌 경영이라는 오명 속에 처한 것에 항의라도 하듯 등교거부를 주도하다가 학내에서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고교시절 아버지가 부산에서 근무 중 사망하자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문재인 당시 변호사의 도움이 켰으며 그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여고시절부터 가정 풍파에 시달리기 시작하며,
대학 시절(1985년 전두환 독재가 한창이던 때)에는 선배가 경찰에게 얻어맞으며 끌려가는 것에 분을 참지 못해 忿怒(분노)하기 시작한 것이 사회운동의 시작으로 비춰지고 있다.
1985년 2월에 민주정의당 일당독재를 반대하는 시위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던 적도 있다.
1986년 노동운동을 하며 장안식(당시 수배중)을 만나 결혼할 때 남편 이름까지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후일 아들(1남 1녀 중의 그 아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민주화 투사의 가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왜 대한민국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던가!
美人(미인)의 얼굴 속에 波瀾萬丈(파란만장)한 면도 있었다는 것을 同情(동정)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최종학력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정책학 석사이다.


그는 1998부터 2001까지 국회의원 김근태(1947~2011) 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면서 정계에 들어섰고 다음은 그의 경력사항이다.
1999 국민정치연구회 이사
200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2002 ~ 2003 김근태 국회의원 보좌관
2002 16대 대통령선거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환경위원회 부위원장
2003 한반도재단 사무국장
2004.04 ~ 2009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 부대변인
2006 김대중도서관후원회 기획위원
2009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2009 ~ 2010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 운영위원
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 상임이사
우석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2010 ~ 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고양시 일산동구 지역위원회 위원장
2012.05 ~ 2016.05 19대 국회의원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현재는 제20(2016년 4월 당선고양 병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21대 국회의원도 도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할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다.
대략 1년 반의 기간?
그동안 잘 가꾸었던 자신의 동양철학이 확실하다면 교육계에 흠씬 전하기 바라고 싶다.
더할 글이 있다면
그의 夫君(부군)도 도시농사를 일궈가면서 명퇴자들과 어울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큰 논란에 휩쓸리는 것은 없어 보이지만,
그의 思考(사고)는 너나할 것 없이 같이 잘 살아보자고 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Civic 뉴스는 2016년 12월 14일자에
학교 비정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내용의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약칭 교육공무직법)’ 제정안을 놓고 공시생들의 반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지난달 28일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법안은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와 교육행정기관에 종사하는 비정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처우를 개선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고직종과 지역마다 각양각색인 처우를 통일한다는 내용이다.”고 보도한 것이 있다.

천재와 둔치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하지만 교육 공시생들이 볼 때와 일반인 들이 보는 觀念(관념)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어렵게 하는 것 보다 차근차근 잘 처리할 수 있는 慧眼(혜안)을 갖춰주면 좋을 것으로 본다.
좀 더 젊어진 교육부장관의 신선한 교육제도가 돼 원만하게 이끌어지길 바라고 싶다.



원문 보기;

2018년 6월 24일 일요일

민주주의 후퇴 죄인 김종필에게 백안시



정부는 독재를 조력한 김종필에게 무궁화장 줄 건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白眼視(백안시)로 바라보는 김종필인데 문재인 정부조차 국민을 배반할 것인가?
대한민국 정치역사를 뒤바뀌게 한 주역 중 주역이 김종필이었는데 죽은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줄 생각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이 어떤 관심을 보이는 지 떠보고 있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대한민국 훈장이 남아돌아 박정희 독재의 조력자에게 무궁화장을 준다는 것인가?
SBS
故 김종필 조문 행렬 계속'무궁화장 추서두고 논란이란 제목을 걸고 낸 그 밑의 댓글에 어떤 글들이 나오고 있는지 잘 보기 바란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이완용에게도 무궁화 훈장을 줄 거냐?”고 묻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잘 기억하기 바란다!
고 김종필의 장례식장에 찾아가는 민주화의 주역들의 예절은 老子(노자)철학의 報怨以德(보원이덕)에서 나올 수는 있어도 眞心(진심)이 얼마나 있을지 파악하기 바란다.


김종필은 5.16쿠데타의 重役(중역)을 맡은 것만이 아니다.
색마이자 독재자 박정희가 국민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남산의 중앙정보부장에 앉혀두고 김종필이 35세 철모르던 시절에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지 않는가?
민주화 투사들을 가두어두고 갖은 고문으로 없는 죄를 생산해낸 김종필!
그에게 무궁화장을 준다고?
민주당도 국민을 조롱할 것인가?
白眼視(백안시)가 되지 않는다면 그는 민주화 투사의 자격이 있을 것인가?
국가 훈장은 예절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영예의 훈장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재를 산출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이에게 주는 報怨以德(보원이덕)의 물품이 아니란 말이다.


1979년 박정희가 義士(의사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자 전두환은 김종필을 가두었다.
7년 동안 김종필의 권력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 투사들의 1987년 6월 항쟁을 틈타 죽은 권력을 되살려 민주화의 역군인양 가면을 쓰고 정치꾼으로 둔갑한 김종필 아니던가?
그 때문에 파생된 정치꾼들이 얼마였던가?
자유한국당 그 속에 잠용들처럼 살아 숨을 쉬며 민주주의를 짓밟은 주역들이 그 안에서 입만 살아 움직이고 있잖은가!
그들은 박정희 독재정치의 산물은 아닐지언정 그 脈絡(맥락)을 이어가려고 하며 민주화를 毁謗(훼방)놓고 있지 않은가?
지금 국민들은 2020년 4월만 되면 그들을 쳐버리겠다고 이를 앙달물고 있는데 민주화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김종필에게 무궁화장을 勳章(훈장)을 하겠다고?
눈에 흰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민주화 투사였던가?
白眼視(백안시).


白眼視(백안시)
마땅찮은 일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을 흘기게 되는 현상이다.
업신여기거나 냉대할 때도 눈의 흰자가 보일 정도로 째려보게 된다.
직역을 하면 흰 눈동자가 드러나게 흘겨보는 눈

희다백색날이 새다()
눈구멍눈매보다()
자세히 살피다주관하다()

中國(중국()나라와 ()나라 중간에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가 형성된다.
그 시절 중국인들에게 孔子(공자사상이 왕성할 때 朝廷(조정)에서 벼슬아치들이 지나친 예절에 치우치는 것이 싫어 정치를 버리고 살던 *竹林七賢(죽림칠현)들이 있었다.
*老莊(노장)의 虛無(허무學文(학문)에 정통하던 이 인물들 중 阮籍(완적)이라는 이는 수많은 서적을 탐독했으나 술도 좋아하고 거문고도 즐기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원적은 특히나 예절에 치우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칠현 중 嵆康(혜강)의 형 嵆喜(혜희)가 찾아오자 세속 정치(예절만 앞세우며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는 정치)를 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白眼視[눈에서 흰자가 나올 정도로 유심히 쳐다봄]하고 그냥 보낼 정도로 세속 정치인들을 싫어 했다.
하지만 죽림칠현인 혜강이 찾아오면 반가이 맞으며 靑眼視(청안시=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맑은 눈으로 바라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세속정치인들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母親(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세속정치인들이 찾아와 장례예절에 따라 ()을 할 때 같이하지도 않고 묵묵히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인가?
그는 본시 성내는 법도 없었지만,
즐겁다고 마냥 기뻐하지도 않았다는 인물이다.
그의 성품 때문일까?
예절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세속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항상 白眼視(백안시)였다고 해서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보는 것을 두고 白眼視(백안시)’라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예절은 孔子(공자)도 싫어했다.
사마씨 후손들이 공자의 본 뜻도 모르고 지나치게 예절을 해옴에 따라 일종의 病弊(병폐)가 된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고인이 된 김종필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汚點(오점)을 남긴 인물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죄인이라고 본다.
1987년 이후 그가 1990년 대 초 김대중과 합의 정치를 한 것 때문에 김대중도 정치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첫 총리에 김종필이 국회청문회에서 어떤 수모를 당하고 있었던가?
억지를 쓴 김대중도 미었던 시절 아닌가?
왜 김대중과 노무현이 민주화에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의 지대한 추대를 다 받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 잘 알지 않는가?
지나친 예우는 白眼視(백안시)가 되는 것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요약중국 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

중국 위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였다그중 유명한 7인을 죽림칠현으로 부르는데 그들의 이름은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이다그들은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신봉하여 지배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소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하여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하기도 하였다이후 이들은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씨의 일족에 의해 회유되어 해산되었다하지만 이들 중 혜강은 끝까지 사마씨의 회유를 뿌리치다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루쉰[魯迅]은 그들의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교(奇矯)한 행동이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들이 그룹을 형성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집권자에게 죽음을 당하거나타협하여 관계로 돌아가거나 하여 모두 흩어졌지만그 풍부한 일화는 그 후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인물평론이나 회화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죽림칠현 [竹林七賢] (두산백과)

 
*老莊(노장)
老子(노자)와 莊子(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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