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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5일 월요일

김종필에게 역사는 어떻게 쓸까?



역사는 김종필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도 전 국무총리 고 김종필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25일 확정했다는 뉴스다.
경향신문은 2018년 6월 25일 자에
시민훈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 요구라는 제목을 걸고
일단 정부는 김 전 총리에 대한 서훈 결정 근거로 관행을 들었다최근 타계한 전직 총리들 중 이영덕·남덕우 전 총리에게 무궁화장이 추서됐고박태준 전 총리에게 청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는 것이다김 전 총리 훈장 추서는 전직 총리에 대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예우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들도 모조리 독재자 박정희를 도와 독재정치를 하게 만든 사람들인데 지난 정권에서 훈장을 주었다고 같이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떫다.
분명 독재정치를 도와 자신만의 영광을 누린 인물들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일당(一堂이완용(李完用, 1858 ~ 1926)은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어서 안 된다는 것인가?


우리가 판단하는 이완용을 일본은 어떻게 보며 생각하고 있는데?
 또 일본이 김종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김종필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었다.
아베는 23일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게 돼 깊은 슬픔을 견디기 힘들다.
김종필 전 총리는 일-한 국교 정상화에 직접 참여해 오늘의 일-한 관계의 기초를 놓은 분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김종필은
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고 했던 인물이다.
굴욕외교의 장본인인 김종필을 바라보는 일본은 남다르지 않은가?
잘 알다시피 이완용이 일본과 수교를 위해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한반도에 철도가 놓아지며 발전이 될 수 있었다는 일본인들의 사고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들은 한반도를 짓밟아 대륙을 저들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목적으로 철도를 놓았다는 생각은 뒤로 미루고,
일본으로 인해 한국이 퀴퀴 묵은 구시대에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는 망상 속에서 역사를 왜곡하며 살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것인가?
지난 정부에서 관행적으로 부패한 짓들을 한 것들이 쌓여 積弊(적폐)로 된 것을 청산하자고 하는 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가관이다.
이완용에게 日帝(일제)가 훈장을 수여했으니 김종필에게 대한민국 무궁화장을 줘야 마땅하다는 의도인가?
문재인 정부가 이제부터 하향 곡선으로 지지도가 내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부겸 행정안전부(행안부장관의 본성이 들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다.
김 장관 본인은 아무리 진보적인 사고를 지녔지만,
김종필을 박정희 독재자를 도와 국가재건에 이바지 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앞서가고 있다는 것인가?



경향신문은 김종필 평가를 박정희 독재 시대 1기와
1987년 민주화시대부터 김영삼 김대중 시대까지 2기로 구분하여 2기에서는 김종필이 민주화 이후 정치에 참여한 것으로 나누고 있는 구절이다.
김 전 총리의 정치 생애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주역으로 시작해 박정희 정권의 영원한 2인자로 매김한 유신 말기까지(1)와 1987년부터 2004년까지 이어진민주화 이후 보수정당 당수 시절(2)로 나뉜다김 전 총리에 대한 호의적 평가는 상당 부분 2기 삶에 근거를 두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1997년 김대중·김종필 연합(DJP연합)을 통해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것이다일종의 정치적 평가다.(경향신문)
솔직히 김종필의 2기 정치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독재 잔재 정치꾼들을 그대로 같이 이어오며 그 세력으로 김영삼 김대중의 힘을 갈라 지역정치로 나라를 3등분 한 주역 중 주역 아닌가?
그 세력으로 인해 민주화가 또 얼마나 뒤로 물러났었던가?
결국 이명박근혜까지 이어지면서 積弊(적폐國家(국가)를 만들어버린 것이 누구의 짓이던가?
역사는 김종필을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가?


김종필이 박근혜를 가운데 두고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에게 붙었다가,
박근혜 탄핵이 시작되자 최태민과의 관계를 털어놓으면서 右往左往(우왕좌왕)의 節槪(절개)도 없는 언행으로 국민들을 混沌(혼돈)으로 빠져버리게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자신의 野慾(야욕)을 위해 한평생 2인자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서 민주화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을 죽은 다음에 무궁화장을 追敍(추서)하면 문재인 정부를 국민들이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는가?
행안부 김부겸 장관의 뜻에 이낙연 총리가 한 발 뒤로 물러나고 말았던가?
기자들의 질문에 이 총리는 김종필 훈장 추서에 관한 발언은 평소와 다르게 차분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떨리며 언변이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고 김종필 장례식장을 방문하지 않을 때는 그 의미가 분명 있는데 그대로 넘어갈 것인가?
눈을 감아 줄 것을 감아야 하고 正義(정의)가 바탕 하지 않는 일은 꼭 뒤탈이 나게 돼있다.
잘 파악하고 다져나가기 바란다.


전 총리 이영덕과 남덕우에게 준 무궁화장도 박태준 전 총리에게 준 청조근정훈장도 생각 같아서는 모조리 회수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김종필에게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종필의 공훈이 있었다면 김종필이 92세까지 살고 있었을 때 주지 왜 죽은 다음에 추서하려고 했나?
추서는 어쩔 수 없었을 때 즉 전사를 했다거나 상훈자가 살아생전 받을 수 없을 만큼 시간적으로 부여할 수 없을 때 추서돼야 올바른 것이지,
이 나라는 꼭 죽고 난 다음에 훈장추서가 있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는
이완용 총리에게도 한반도 발전을 시킨 공훈을 밝혀 무궁화장을 줘야 하고,
친일파들도 모조리 索出(색출)해서 훈장을 추서하라!
전두환 노태우에게도 또 줘야 한다.
하기야 그들은 대통령 취임하면서 무궁화대훈장을 부부동반으로 미리 가져갔지!
이들 훈장도 벌써 회수했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독재정치를 해도 대한민국은 죽은 다음에는 훈장을 받을 수 있는 나라에 속하게 됐으니 노태우 전두환도 각별히 모시는 나라로 遁甲(둔갑)시켜야 하지 않은가?
왜 적폐청산은 하자고 하는가!
적폐의 사람에게 훈장을 주면서 적폐청산은 왜 해야 한다는 말인가!
모조리 다 내다 던져버려라!
한심한 지고!
역사가들이 역사를 어떻게 적어야 올바르게 적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원문 보기;
 "제2의 이완용되더라도.." 다시보는 '달변가' JP어록

2018년 6월 24일 일요일

민주주의 후퇴 죄인 김종필에게 백안시



정부는 독재를 조력한 김종필에게 무궁화장 줄 건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白眼視(백안시)로 바라보는 김종필인데 문재인 정부조차 국민을 배반할 것인가?
대한민국 정치역사를 뒤바뀌게 한 주역 중 주역이 김종필이었는데 죽은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줄 생각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이 어떤 관심을 보이는 지 떠보고 있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대한민국 훈장이 남아돌아 박정희 독재의 조력자에게 무궁화장을 준다는 것인가?
SBS
故 김종필 조문 행렬 계속'무궁화장 추서두고 논란이란 제목을 걸고 낸 그 밑의 댓글에 어떤 글들이 나오고 있는지 잘 보기 바란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이완용에게도 무궁화 훈장을 줄 거냐?”고 묻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잘 기억하기 바란다!
고 김종필의 장례식장에 찾아가는 민주화의 주역들의 예절은 老子(노자)철학의 報怨以德(보원이덕)에서 나올 수는 있어도 眞心(진심)이 얼마나 있을지 파악하기 바란다.


김종필은 5.16쿠데타의 重役(중역)을 맡은 것만이 아니다.
색마이자 독재자 박정희가 국민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남산의 중앙정보부장에 앉혀두고 김종필이 35세 철모르던 시절에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지 않는가?
민주화 투사들을 가두어두고 갖은 고문으로 없는 죄를 생산해낸 김종필!
그에게 무궁화장을 준다고?
민주당도 국민을 조롱할 것인가?
白眼視(백안시)가 되지 않는다면 그는 민주화 투사의 자격이 있을 것인가?
국가 훈장은 예절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영예의 훈장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재를 산출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이에게 주는 報怨以德(보원이덕)의 물품이 아니란 말이다.


1979년 박정희가 義士(의사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자 전두환은 김종필을 가두었다.
7년 동안 김종필의 권력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 투사들의 1987년 6월 항쟁을 틈타 죽은 권력을 되살려 민주화의 역군인양 가면을 쓰고 정치꾼으로 둔갑한 김종필 아니던가?
그 때문에 파생된 정치꾼들이 얼마였던가?
자유한국당 그 속에 잠용들처럼 살아 숨을 쉬며 민주주의를 짓밟은 주역들이 그 안에서 입만 살아 움직이고 있잖은가!
그들은 박정희 독재정치의 산물은 아닐지언정 그 脈絡(맥락)을 이어가려고 하며 민주화를 毁謗(훼방)놓고 있지 않은가?
지금 국민들은 2020년 4월만 되면 그들을 쳐버리겠다고 이를 앙달물고 있는데 민주화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김종필에게 무궁화장을 勳章(훈장)을 하겠다고?
눈에 흰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민주화 투사였던가?
白眼視(백안시).


白眼視(백안시)
마땅찮은 일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을 흘기게 되는 현상이다.
업신여기거나 냉대할 때도 눈의 흰자가 보일 정도로 째려보게 된다.
직역을 하면 흰 눈동자가 드러나게 흘겨보는 눈

희다백색날이 새다()
눈구멍눈매보다()
자세히 살피다주관하다()

中國(중국()나라와 ()나라 중간에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가 형성된다.
그 시절 중국인들에게 孔子(공자사상이 왕성할 때 朝廷(조정)에서 벼슬아치들이 지나친 예절에 치우치는 것이 싫어 정치를 버리고 살던 *竹林七賢(죽림칠현)들이 있었다.
*老莊(노장)의 虛無(허무學文(학문)에 정통하던 이 인물들 중 阮籍(완적)이라는 이는 수많은 서적을 탐독했으나 술도 좋아하고 거문고도 즐기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원적은 특히나 예절에 치우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칠현 중 嵆康(혜강)의 형 嵆喜(혜희)가 찾아오자 세속 정치(예절만 앞세우며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는 정치)를 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白眼視[눈에서 흰자가 나올 정도로 유심히 쳐다봄]하고 그냥 보낼 정도로 세속 정치인들을 싫어 했다.
하지만 죽림칠현인 혜강이 찾아오면 반가이 맞으며 靑眼視(청안시=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맑은 눈으로 바라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세속정치인들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母親(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세속정치인들이 찾아와 장례예절에 따라 ()을 할 때 같이하지도 않고 묵묵히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인가?
그는 본시 성내는 법도 없었지만,
즐겁다고 마냥 기뻐하지도 않았다는 인물이다.
그의 성품 때문일까?
예절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세속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항상 白眼視(백안시)였다고 해서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보는 것을 두고 白眼視(백안시)’라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예절은 孔子(공자)도 싫어했다.
사마씨 후손들이 공자의 본 뜻도 모르고 지나치게 예절을 해옴에 따라 일종의 病弊(병폐)가 된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고인이 된 김종필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汚點(오점)을 남긴 인물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죄인이라고 본다.
1987년 이후 그가 1990년 대 초 김대중과 합의 정치를 한 것 때문에 김대중도 정치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첫 총리에 김종필이 국회청문회에서 어떤 수모를 당하고 있었던가?
억지를 쓴 김대중도 미었던 시절 아닌가?
왜 김대중과 노무현이 민주화에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의 지대한 추대를 다 받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 잘 알지 않는가?
지나친 예우는 白眼視(백안시)가 되는 것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요약중국 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

중국 위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였다그중 유명한 7인을 죽림칠현으로 부르는데 그들의 이름은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이다그들은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신봉하여 지배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소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하여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하기도 하였다이후 이들은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씨의 일족에 의해 회유되어 해산되었다하지만 이들 중 혜강은 끝까지 사마씨의 회유를 뿌리치다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루쉰[魯迅]은 그들의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교(奇矯)한 행동이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들이 그룹을 형성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집권자에게 죽음을 당하거나타협하여 관계로 돌아가거나 하여 모두 흩어졌지만그 풍부한 일화는 그 후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인물평론이나 회화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죽림칠현 [竹林七賢] (두산백과)

 
*老莊(노장)
老子(노자)와 莊子(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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