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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1일 토요일

북한도 음악다운 음악 들어야 한다!



남쪽 예술단의 힘이 평양에 봄이 온다’?

북한보다 거리가 먼 동남아에도 유럽에도 지구촌에도
대한민국 한류스타들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한지 오래이다.
심지어
싸이(박재상, 1977.12.31.)라는 가수는 세계적인 가수가 됐고,
그의 노래 <강남스타일>
2012년 7월에 내놓자 2개월 만인 9월 25
유튜브 조회 수 2억 7000만 건을 넘긴 대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어낸 초대형 가수도 배출했다.
한류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나 할 까?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 북한에는
2005년 조용필의 평양 단독 콘서트 이래 13년 만이고,
2002년 MBC가 주최한 평양특별공연이 가장 가까웠던 북한공연이라고 한다.
남북의 문화교류가 간단히 杳然(묘연)했다고만 말하기에는
괴로운 가슴이 아주 크게 뭉클대게 만들고 있다.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정치꾼들의 선동이고 謀略(모략)에 의해 발생된 국민 분열 때문이다.


북한은 音樂(음악)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민 선동의 자극제로 만들었다.
주체사상을 그 안에 집어넣어 김일성 3부자 懷柔(회유)책의 도구로
썼으니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킬 목적으로 주민들의 고된 몸에서 정신적인 힘을 만들기 위해
독재자들 욕구의 무기로 만들었을 뿐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있었다.
쉽게 말해 주민의 모든 진을 빼기위해 사용했던 노래로
唱歌(창가같은 구실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창가란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표현하는 것 같이
개화기 詩歌(시가양식의 하나로
서구의 충격을 받아서 그 내용과 형태에서
고전시가와는 다른 모습을 띤 가벼운 노래로서
1876년 새문안교회 교인들이 지어서 부른 황제탄신경축가> 같은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주는 고뇌에 찬 악보가 아닌 즉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악보가 아니라 남의 곡을 베껴오는
악보와 만들어 붙인 가사를 붙여 불렀던 노래라는 것이다.


물론 김일성을 숭상하여 만들어진 북한 노래도 없지 않을 테지만,
진정한 마음과 마음이 통해 만들어진 철학이 숨어있는 음악이 아니란 말이다.
가볍게 흔들리며 산들거리는 이파리를 보면서도
그 느낌은 수천수만 가지로 흩어지듯
자신의 깊고 깊은 심정을 읊어낸 말이 아닌 창가 같은 노래가
어떻게 주민들의 가슴에 닿을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강산에의 라구요’ 같이 실향민의 애환을 그린 곡에서
어머니의 애절함이 들어가 지어진 음악과는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의미가 없는 노래는 없다지만
그 의미가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지 않은가?


정치꾼들은 남북이 다 같았다.
북한은 김일성 3부자를 폭군 같은 독재자들로서 그들의 도구가 되게 했지만,
남쪽 정치꾼들도 선거만을 이기기 위해
북한 체제를 이용하여 이념을 통해 남쪽 국민을 분산시켜 정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들은 북한과 완전 결별해야 한다며 형제의 정에서 더 멀리 떨어지게 했다.
북한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국민은 가차 없이 종북 딱지를 붙여주고 있었다.
남북은 더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 놓고,
제 욕심만 채운 독재의 독선자들이 대한민국 정치꾼들이었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그 혜택을 그대로 누리며
북한 김일성 부자보다 더 국민을 갈라지게 했다.
그 여파는 2017년까지 이어지게 했으니
정치꾼들의 橫暴(횡포)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본다.
지금도 자유한국당은 虎視耽耽(호시탐탐이념으로만 가르려 하고 있지 않은가!
저들의 정권욕 때문인 것이다.
정치를 핑계하여 문화교류까지 맥을 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 음악이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힘이 대단히 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02년도 2005년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나마 평양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음악다운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
이명박근혜는 그 길조차 막고 남북을 더 멀리 떼어내면서
북한은 그 사이 핵과 미사일 개발로 세계를 더 놀라게 하고 있었다.
음악을 음악으로 생각하고 가슴과 가슴이 오가게 하지 못한 것도 다 우리들의 탓!
저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꾸려가야 한다고 본다.
정치꾼들의 힘을 내치게 될 때까지는!


북한이 음악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사용했듯이
남쪽 독재자들도 자유롭게 불러야 하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금지곡을 정했다.
주로 가사에 따라 독재자들을 위협하는 말이 들어간 음악을 못 부르게 막았다.
심지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라는 노래가 금지곡으로 된 것에
국민은 머리를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노랫말이 유행가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독재자들의 양심을 찌르고 있었다?
정치꾼들 때문에 한반도는 더 갈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공이 분단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꾼들은 그들의 분단 정책의 완결판이었던 것이다.
제정신이 박혀있는 이가 정치를 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는 말이다.
국민은 그것도 모르며 독재자들에게 추파를 보내면서
고맙다고 하지 않았는지?
우리 음악도 북한 음악도 뼈아픈 세월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음악이 그만큼 사회생활에 광범위한 體積(체적)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음악과 정치는 별개라고 볼 테제만 붙어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음악을 듣고 즐거워야 하지만 작곡을 한 이가 그려낸 것과
듣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감상의 표현의 마음이 같아질 때
그 음악이 含蓄(함축)하는 힘은 수백 수천수만의 파장을 불러오게 하지 않던가?
들어도 자꾸만 듣고 싶어 지치지 않으며
그 뒷맛이 영원할 수 있는 클래식(Classic) 음악들이
왜 지금도
우리 주위를 벗어나지 않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어떤 작곡가 인지 얼굴도 모르지만
그와 같이 動搖(동요)할 수 있는 음악이 된다는 것은,
音樂家(음악가, Musician)들의 꿈일 것이고,
음악을 즐기는 音樂(음악)인들이 바람일 것이다.


120여 명의 예술단이 북한에서 멋진 공연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더 좋은 음악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도 안다.
모든 재량을 발휘해서 북한에도 음악다운 음악이 성행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한다.
북한 국민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남한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안다면 말이다. 
자기들은 음악다운 음악을 알면서 주민들에게는 왜 주체사상을 심는데 이용하나?
세상을 세상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세상으로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음악으로 듣지 못하고 음악을 음악으로 알지 못하게 한 때문이다.
단 이틀 간 북한 공연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으랴만
그 공훈은 영원히 남을 것으로 믿는다.
좋은 음악 많이 전달하고 남북의 좋은 成果(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북한 주민들도 음악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영원히 이어지기만 기대한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봄이 온다는 소제가 좋다.
남측 예술단의 힘으로 평양에 봄이 온다는 의미 같아서 더 좋고,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어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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