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0일 화요일

기무사 문서 유출 따지는 자유한국당?



기무사 문서 유출을 따지는 자한당의 근본을 잘라내야

전체 그룹은 아닙니다.”
그들 중 일부에게서 제가 받은 정보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UN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이
2018년 7월 4일 북한에서 파견된 중국 소재 류경식당 지배인과 종업원 2명을 1시간가량 면담한 뒤 발표한 말이다.
나머지 10명은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SBS는 보도하고 있다.
나머지 10명 중에도 이렇게 응답하지 않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2016년 4월 대한민국 제20대 총선을 6일 남겨두고 당시 박근혜가 이끈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전신)과 무슨 관련이 있었는지 따져봐야 할 일로 본다.


총선에 앞서 12명의 집단 탈북단을 뉴스에 즉시 공개했던 底意(저의)는 국민을 欺瞞(기만)하여 국민의 투표 심리를 여당 쪽으로 돌리게 하기 위한 선거 전술을 썼던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지금껏 그들의 탈북은 남조선 정권의 조작에 의한 것이라고 강력 항의하게 한 원인이 틀리지만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다.
국민을 감쪽같이 속일 속셈의 박근혜 정권에 따른 혜택을 자유한국당(자한당)은 지금껏 누린다고 봐야 한다.
현 112명 자한당 국회의원 그 속에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말이다.
정치꾼(정치에는 無關心(무관심)이지만 선거철만 되면 승리를 위해 手段(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인물)들이 자한당 그 속에 없다고 自負(자부)할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들은 박근혜가 彈劾(탄핵)을 당하고 있을 때 스스로 정치에서 ()을 끊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명도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고 지금껏 머물다가 6.13지방선거에서 (慘敗(참패)를 당하자 서청원 의원만 그 당에서 탈당했으나 議員(의원)의 ()은 그대로 두고 있을 뿐 謝罪(사죄)하는 이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자한당 일부 의원들이 무릎을 꿇고 ‘Show도 아닌 쇼를 보여주며 국민들로부터 콧방귀만 날리게 했다.
자신들은 박근혜의 탄핵과 無關(무관)하다며 목청을 높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박근혜 탄핵 그 자체도 부정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과 40년 因緣(인연)이 있을 뿐 박근혜는 국정농단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거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같은 말로 遁甲(둔갑)시키기 위해 空論(공론)을 煽動(선동)시키고 있다.
다음을 보시면 잘 알 수 있다.


Jtbc
기무사 문건도 한국당만 거치면'유출데자뷔라는 제목을 걸고 다음과 같은 보도를 했다.
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계엄까지 검토했다는 문건이 나와서 충격을 줬고문재인 대통령이 오늘(10군에 독립수사단을 설치해 철저히 수사하라 이렇게 지시했는데요.

이 문건이 작성됐을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에서는 이 내용보다도 문건의 유출 경위에 대해서 더 문제 삼는 모습입니다.

김진태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면 "기무사 보고서를 유출한 군사기밀 유출사범부터 수사하라"라고 촉구를 했고요.

김성태 원내대표도 어제 같은 취지의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김성태/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어제) : 기무사에 은밀한 문건이 지난 한 주 난데없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배경에 대해서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큰 문제가 폭로됐을 때 문제 자체보다는 '이게 어떻게 유출됐느냐', 이른바 유출 프레임이 매번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입니다.(Jtbc;2018-07-10 22:12 )

 군 인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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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촛불집회를 탄압하려고 했던 그 잘 못을 따지는 것이 먼저로 알아야 하는 데,
그 비밀을 공개한 사람이 더 잘 못됐다고 하며 억지를 쓰려는 것이다.
즉 국민을 보호하려는 意志(의지)를 내세워야 올바르다고 하는데 반해,
자한당의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은 국가의 기밀을 유출한 죄도 같이 따져야 옳다는 것이다.
부정한 닭이 부정한 달걀을 낳은 그 알을 빼돌렸다고 난리를 친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
軍隊(군대)는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면,
국민들이 正義(정의)를 위해 집회를 하는 일을 도와야 올바른 일이지 국가를 거머쥔 권력자가 非行(비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돕기 위해 국민의 언행을 막을 방패로 군대를 쓴다면 민주주의 국가 군대의 正意(정의)에 符合(부합)될 수 있는 것인가?
자한당 前身(전신)의 정당들은 이런 방법을 자주 썼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박근혜 탄핵 전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으로 몰아넣은 것도,
2년 뒤 정윤회의 전 처 최순실 박근혜 국정농단으로 발족시킨 것만 따져도 저들의 과거는 非理(비리)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일부는 국가의 일이라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방치하는 인물들도 太半(태반)이었지 않았나싶어진다.
독재시대는 그런 일들은 일종 관행처럼 여기며 넘기기가 일쑤였으니까!
감히 그런 군사비밀도 아닌 국민 탄압 비밀을 밖으로 내볼 수 있게 방치하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12년의 이승만 독재정권을 내쫓았던 나라에서 어떻게 색마이자 군사독재자 박정희 정권이 자그마치 18년을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뒤를 이어 전두환도 12.12 쿠데타로 7년을 독재로 장악한 뒤,
그 친구 노태우에게 민주적 정권이양처럼,
- 6.10민주항쟁에 의해 국민의 직접 선거권만 넘겨받을 수 있었지,
6공화국헌법 그 속에는 독재자들의 獨裁(독재)적인 慣行(관행)들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았을 때 노태우에게 정권을 이양할 때는 민주적 정권이양인 것처럼꾸며진 것으로 밖에 인정할 수 없다는 현실인 것이다.
더구나
전두환과 노태우는 쿠데타를 함께 일으키며 권력을 이어갈 것을 약속한 사이라는 것을 그 당시 몰랐다고 할 사람이 얼마였을까?
군사쿠데타를 당연히 있었어야 하는 일처럼 생각하며 지냈던 국민들도 적잖았을 정도로 대한민국에는 쿠데타 국가의 경지에 있었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대가 지나고 노태우 정권에서도 새롭게 劇變(극변)됐어야할 立法(입법)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정치꾼들도 변하지 않았다.
때에 맞추고 정치꾼들의 입맛에 맞게 국민을 탄압시키려는 법들이 먼저 통과되고 있었으며 새로운 법이 하나 통과되려면 악법이 그 代價(대가)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치꾼들의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진즉 없어져야 할 독재의 잔재 법들은
국회내부 정치꾼들에 의해 독재적인 관행 속에서 잘 보존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그 속까지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아니던가?
어찌 쿠데타가 우리와 결별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촛불혁명을 일으키고 있던 국민을 진압하기 위해 기무사는 계엄령 발동을 위해 탄탄하게 그 企劃(기획문서를 작성했고,
그 문서는 촛불혁명 정부에게 들통이 난 지금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일으키는 衝突(충돌)은 얼마나 일고 있을까?
쿠데타는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진정한 마음들일까?


군사쿠데타의 元兇(원흉)이고 200여 여성을 籠絡(농락)한 색마 박정희는 그 이름과 땅도 고귀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역군인 것처럼 아주 큰 땅을 소유하고 그의 두 번째 부인과 함께 누워 있다.
누구하나 그가 고귀한 그 땅에 누워있는 것을 탓하는 이 없다.
그래서 아주 잘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본다.
???
군사쿠데타를 대한민국은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覺醒(각성)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그가 그곳에 누워있으면 언제든 대한민국은 군사쿠데타 국가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18년 동안 박정희가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도와주는 오른팔과 왼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 전 세상과 이별한 김종필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김종필에게 무궁화훈장을 追敍(추서)했다.
국민을 무시한 행동이고 국가 체면을 忘失(망실)한 處事(처사)인 것이다.
그로 인해 18년 동안 학생들을 쥐 죽인 듯 만들 수 있었고 기성세대들을 洗腦(세뇌)시켜 박정희와 함께 침묵의 독재를 할 수 있었다.
속으로 숨어 독재정권을 깊고 넓게 將就(장취)할 수 있었으며,
겉으로는 日就月將(일취월장국가 百年大計(백년대계)를 세워 논 것 같이 꾸밀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4.19혁명의 대가들이 확고하게 존재하던 때에,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 18년의 긴 세월 동안 침묵의 그늘 속에서 한숨만 내쉴 수 있었을 것인가?
박정희 정권에 대해 떠들려고 하는 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던 사람이 누구?
김종필의 두뇌가 아니었나?
4.19혁명의 대가들도 군화 발과 총칼의 권력에서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 권력의 두뇌 회전은 대단했다.
죽지 않으면 병신이 돼야 했던 세상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지금 어느 길을 택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간첩 조작하고도 훈장 받았던 대한민국 독재의 잔재들 중 53명 서훈 취소한다는 뉴스가 나돌고 있지만 웃기는 일 아닌가?
사쿠데타의 오른팔 김종필에게는 무궁화훈장을 추서했으면서 간첩조작의 훈장은 아니라고 하면 그 말이 對比(대비)되는 말 아닌가?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몸살이 나도록 열심히 뛰면 뭐하냐?
쿠데타를 인정하는 나라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으면서!


대한민국은 할 일이 아주 많다.
70년 긴 세월 동안 37년의 독재정권 속에서 살면서 받아온 冷酷(냉혹)한 시대에서 익혀진 것을 버리고 개선하려면 할 일이 아주 많다고 본다.
그래서 문재인 같은 인물이 탄생이 돼도 그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국립현충원에 묻혀 지내는 한,
대한민국 미래는 보이지 않고
김종필에게 추서한 무궁화장을 반환받지 않는 한,
국가는 안정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善行(선행)을 알리지 말라고만 쓰려는 예수의 생각이었을까?
그 말의 본심은 잡음이 일지 않아야 세상은 조용히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싶어진다.



 원문 보기;

2018년 7월 9일 월요일

文 대통령과 이재용 그리고 India




문재인 대통령과 삼성전자의 이재용 그리고 인도[India]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뉴델리 인근의 노이다 공단 안에 삼성전자 인도 신 공장 준공식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당당 부사장이 접견하는 자리에서 언급한 뼈있는 소리이다.
재벌들이 한국 땅을 벗어나 외국으로 확장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지 재벌 스스로에게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물론 삼성전자가 인도 같은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 서비스 산업[소프트웨어(SW), 업무처리 아웃소싱(BPo, Business Process outsourcing)]의 부흥을 이루는 나라에 신 공장을 세우는 것에는 큰 意味(의미)가 있다는 것은 잘 이해하는 바이다.
인도는 저임금의 풍부한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과 축적된 기초과학 지식,
더해서 인도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
지리적으로 주 고객인 미국과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어 시차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장점 등으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대한민국 외교부는 진즉부터 인정하고 있었으니 좋은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인도는 미국 다음의 정보기술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200만 명(2008년 기준이상이 정보기술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삼성전자의 인도 신 공장 준공은 커다란 意義(의의)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물론 IBM, 오라클(Oracle) 등 세계 굴지의 정보기술 전문회사가 방갈로르(Bangalore), 하이데라바드(Hyderabad) 등에 사무소를 설치해 수천 명의 인도 IT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인도의 삼성전자의 확장은 마땅하다.
그러나 고국에서 삼성의 旣存(기존발판도 깊이 있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대한민국 청년 실업률의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볼 때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한 문 대통령의 助言(조언)도 마땅한 것이다.



다음은 인도에 대해 잠시 복습해본다.
인구 약 1,354,052,000명의 세계2(2018 통계청 기준국가인 인도는
힌디어(40%)외 14개 공용어를 사용하지만 영어를 상용 언어로 쓰고 있어 다각적으로 편리한 나라 아닌가싶다.
나라 면적도 3,287,263의 세계7(CIA 기준국가인 인도!
삼성전자 뿐 아니라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노리고 있는 지구촌 굴지의 (市場(시장)으로 꼽히는 인도!
GDP가 2조 8,482억 달러로 세계7위 (2018 IMF 기준국가인 나라!


인도의 기후는
히말라야산맥이 장벽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열대몬순(계절풍)기후를 나타낸다몬순(계절풍)은 태양이 북반구로 북상하고또한 남반구로 남하함에 따라 겨울과 여름의 두 계절이 나타나고남서와 북동의 바람이 교대하는 것으로서 인도양을 항해하던 아라비아인이 명명한 것이라 전해진다.”며 두산백과는 적고 있다.

인도의 계절은 계절풍의 변화를 바탕으로 3월에서 5월에 이르는 乾燥(건조酷暑(혹서=몹시 심한 더위)기와 6월에서 10월 상순에 걸친 濕潤(습윤=습기가 많아 끈끈함高溫(고온)의 氣候(기후), 그리고 10월에서 2월에 이르는 乾燥(건조寒冷(한랭)기 등의 삼 계절로 되어 있다최고기온은 하지와 雨季(우계직전에 나타난다해안 가까이 있는 캘커타에서는 낮에도 그늘의 기온이 40를 넘는 경우가 가끔 있으며갠지스강 중류지역에서는 43℃ 정도로 오르는 것은 보통이다밤에도 실내는 더우므로 사람들은 마당이나 길 가에서 노숙을 많이 한다.
남부 인도는 원래 상하의 지방이나북부 인도의 겨울은 기온이 내려가 한국의 초가을과 같으며 하늘은 맑게 개어 순례의 계절이 된다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0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건기는 겨울이 되며인도 북부에서는 곳에 따라 영하로 내려가고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것이 특색이다특히 가장 추운 1월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불어 건조하면서도 청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인도의 기후 (두산백과)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하는 인더스 문명과 함께 시작하였다는 인도의 역사는 눈부시다는 표현을 한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 사이에 발전하였던 문명으로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조금 늦게 발달하였으나,
단순히 인더스 강 주변 지역이 아니라 가하하크라 강 유역까지 포함하는 폭과 길이가 모두 1,000km가 넘는 매우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서 발달하였다고 두산백과는 다음과 같이 적어나가고 있다.

유적지들은 지점마다 멀리 산재해 있는데 하라파와 모헨조다로(Mohenzodaro)간의 거리만 600km 정도 떨어져 있다또한 모헨조다로의 동쪽 40km의 코트디지 유적과 델리의 서쪽 270km의 칼리방간 유적이 발굴되어인더스문명 직전의 문화가 밝혀졌다칼리방간과 암리의 유적은 하라파(Harappa)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트디지 유적에서는 인더스 문명에 속하는 4층의 밑에 12층에 이르는 코트디지문화의 층이 있으며견고한 요새를 가진 작은 도시가 발견되었다그러나 이 지역에서 발굴된 어느 유적에서도 철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인더스 문명은 청동기 문명으로 보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모헨조다로나 하라파의 유적은 BC 2,500년경의 것으로 정교한 도시계획을 가진 도시문명의 흔적을 보여준다양자는 모두 동일한 도시 계획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첫째 시가지에서 약간 높은 곳에 성채가 있으며 이곳에는 주로 제단과 공공시설이 있고 낮은 쪽에 일반시민들의 주거지역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를 보이고둘째 도로는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조성되어 있고셋째는 매우 정교한 배수시설을 가지고 있으며넷째 집들은 견고한 구운 벽돌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 도시에는 지배자를 위한 시설이나 신관들이 사용하는 소욕장과 일반시민들이 사용하는 대욕장이 나눠져 있는 목욕시설이 발달해 있고 곡물창고하수도 시설 등의 공공시설를 가지고 있다주택 외에 상점·식당도 있었으나하라파나 모헨조다로에는 신전이나 왕궁으로 볼 수 있는 대건축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그렇지만 하라파의 대규모 식량창고와 모헨조다로의 대형 목욕탕은 당시의 도시의 규모가 상당하였고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인더스 문명의 유물인 채도금은 세공품구리청동제식기 등의 분포로 미루어 이란과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교역을 하고 있었으며 멀리 나일강 유역과도 활발한 문물교류가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인장처럼 생긴 유물은 동일한 모양의 유물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인장에 등장하는 악어코뿔소물소 등의 동물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보다는 습하고 숲이 우거진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들이 목화를 옷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최초의 목화 재배자였음을 알 수 있다.한편으로 신앙생활을 위한 성채가 마련되어 있고여러 동물이 그려져 있어 자연물 숭배의 흔적도 보인다그런데 시바신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삼면신(여신상)이 발견되었으며수많은 동물에 둘러싸여 요가의 자세를 취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인장이나 돌 위에 새겨놓은 그림에 나타나는 바오늘날의 인더스인의 신앙인 힌두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런데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던 인더스 문명은 그 갑작스런 멸망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몰락의 원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게 추측된다천재지변인 홍수로 인해 강이 범람하면서 붕괴하였을 것이라는 설고생물학적 연구에 따라 과도한 경작과 삼림파괴로 인한 환경의 변화로 붕괴하였다는 설이후에 이 지역에 들어온 아리아족과 같은 외적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다는 설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인도의 인더스 문명 성립 (두산백과)


더 중요한 것은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년 ~ 1948)를 배출한 나라 인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는 점이다.
철학사전은 간디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논술하고 있다.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남아프리카로 건너간 그는 인도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충격을 받아 반대운동을 일으켰다인도에 귀국한 후 사티아그라하투쟁(Satyagraha란 '진리의 파지把持'란 뜻)을 조직하여 반영(反英독립운동을 개시한다.

철학적 견해로는 객관적 관념론자로서 신과 진리를 동일시하고도덕적 자기개선을 통해 그러한 진리를 포착할 수 있다고 보았다'불상해'(不傷害), '극기', '금욕등이 그의 도덕의 원리를 이루고 있다. (힌두교 아힘사(ahimsa)의 禁忌(금기)의 德目(덕목))

그의 사회적 정치적 관념 역시 사티아그라하의 생각을 구체화하여제국주의자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그는 국민회의파의 지도자로서 객관적으로는 인도 민족자본의 입장에 섰지만다른 한편으로 농민쟁의노동쟁의를 지도하고 인도 민족을 대중투쟁으로 결집시켜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가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냈다.

후에 대중적 비복종운동을 개인적 불복종운동으로 바꾸어 국민회의파의 지도력을 상실했지만마하트마(mahatma=위대한 정신)로 경칭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 지식백과간디 [Gandhi, Mohandas Karamchand]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문 대통령, 간디 기념비에 헌화 문재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뉴델리 간디기념관을 방문해 간디 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092234005&code=910302&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csidxb41fda1cd3bd9c997ceb7310f30d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