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일 수요일

봄 - 상아탑 황석우


 봄

 

 

가을 가고 결박 풀려 봄이 오다.

나무 나무에 바람은 연한 피리 불다.

실강지에 날 감고 밤 감아

꽃밭에 매어 한 바람 한 바람씩 당기다.

 

가을 가고 결박 풀어져 봄이 오다.

너와 나 단 두 사이에 맘의 그늘에

현음(絃音) 감는 소리. 타는 소리

새야, 봉우리야 세우(細雨), 달아 -

 

 

- 황석우

 




 

<두산백과>

봄을 맞이하는 즐거움이 주된 내용을 이루는 이 시는 계절의 흐름을 ''로 구상화하여 표현한 시적 발상이 기발하다. 시인은 겨울의 이미지를 결박으로 표상하고, 결박이 풀리는 자유로운 비상의 이미지로 봄을 노래한다.

 

특히 '실강지에 날 감고 밤 감아'라는 표현은 세월을 당겨서라도 봄을 빨리 맞고 싶은 시인의 조급한 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실강지(실타래)에 감겨 팽팽하게 당겨지는 줄의 탄력은 현악기가 연주하는 음악소리로 확장되어 표현된다. 이와 함께 꽃들이 만발하는 봄의 정경이 그려지면서 봄의 환희는 점차 고조되어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봄의 생명력과 즐거움은 너와 나의 마음에 오고가는 교감의 환희로 노래되고, 마침내 하늘의 새와 꽃봉오리, 실비, 밤하늘의 달 등 모든 사물에까지 퍼져나가 봄을 맞는 감격이 무르익어감을 노래한다.”라고 해설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중에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17746&cid=40942&categoryId=32868

 

 

 

2023년 2월 28일 화요일

거울 - 이상(李箱) 김해경


 거울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 하는구료마는

거울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 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에 골몰할게요.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1934.10.

- 이상 김해경

 

 




*** 李霜(이상)은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데,

이것은 정서법이나 기존의 율격의식 같은 모든 상식이나 질서를 거부한다는 뜻도 된다.”라고 나무위키는 적었다.

그의 그것까지 지금에 와서 고집할 필요가 더는 없을 것 같기도 하여,

내 멋대로,

작가의 방식에 대한 반항일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박사의 한글 사랑에 헌신한 그 대가를 따진다면 답답하게 한글을 이어 쓴 것을 확 풀어버리고 싶어지고 만다.

물론 周時經(주시경) 선생의 한글에 대한 愛着(애착)의 밑바탕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한글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도 일제강점기가 지은 죄의 代價(대가) 아니던가!

국어에서 띄어쓰기가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 아는 이들은 아마 이해하지 않을지...



2023년 2월 27일 월요일

봄비 -변영로(卞榮魯) 민족혼의 시인


 봄비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니!

 

,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1922.3.

- 변영로






---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희미한 希望(희망)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 나라!

2023년 2월 26일 일요일

눈물 - 김현승(金顯承)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 자식을 가슴에 묻으며 떨구는 눈물을 어찌 막으랴!

작자는 신의 전능에 따르며,

 아버지로 에이는 눈물을,


()로 승화시키는 마지막 이별에서,

인간의 애틋함까지 펴 놓아두고 있음이다.

가슴에 묻는 자식,

어찌 그려낼 수 있으랴!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아침 이미지 - 박남수


 아침 이미지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 박남수

 



* 물상 (物象) [물쌍]

1. 자연계 사물의 형태.

2. 자연계의 사물과 그 변화 현상.

3. 물리학화학천문학, 지구 과학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



--- [한국대표현대시 낭송] #아침이미지 #박남수 시 #김양경 낭송

 #어둠이아름답다 #어둠은새를낳고 ---

동영상

https://youtu.be/Xk7A2AlV6WE



 

2023년 2월 24일 금요일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 오일도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황막(황막)한 벌판을 희게 덮어다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盃)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한 바람 때 없이 지내는 잔 칼질에

피투성이 낙엽이 가득 쌓인

대지의 젖가슴 포-트립 빛의 상처를.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어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 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 옷과 청춘의 육체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그리는 검은 얼굴들.

 

눈이여! 퍽 퍽 내려다오

태양이 또 그 위에 빛나리라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어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 위에

내 영()을 쉬이려는 희원(希願)이오니.

 

 

- 오일도

 

 

 




 

* 금수(4) (錦繡)

1) 수를 놓은 비단. 또는 아름답고 화려한 옷이나 직물.

2)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2023년 2월 23일 목요일

조춘(早春) - 정인보 독립운동가


조 춘 早春[이른 봄]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다 푸르다.

산골집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손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기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올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타말고 헤쳐본들 어떠리.

 

 

1929. 4.-.

- 정인보

 

 


 

* 볕발햇발=사방으로 뻗친 햇살.

* 하마(1)= 바라건대. 또는 행여나 어찌하면.

<네이버 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