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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요일

박근혜 때문에 부역자가 될 이유?

   JTBC 손석희 앵커(anchor)는 “박 대통령은 친박단체가 보내준 편지에 대해 어제(28일) 감사 메시지를 단체 측에 보냈습니다. 친박단체가 편지를 보낸 건 지난 달 초였는데 삼일절 집회를 딱 하루 앞두고 입장을 전달한 겁니다. 당연히 대통령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전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본인을 지지하는 단체에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고 입을 땠다. 마치 박근혜가 탄핵반대집회를 선동하고 있다는 말 같아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상황을 본다.

    박근혜는 정규재TV 보도(1월 25일) 중에서 “촛불시위 두 배도 넘는 정도로 열성을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듣고 있는데, 이렇게 나오신단 걸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란 허위를 말한 적도 있다. 어떻게 하던지 대통령직을 그대로 꿰찰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물론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것은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직에 앉아야 할 사람의 자세에 있어, 거짓말까지 하면서 국민을 선동하려는 의지는 쉽게 이해할 수 없어서다.


    박근혜가 18대 대선 당시 여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후보로 지명이 되는 순간, 아니 그 이전 - 여당에서 대선주자로 지정하고 있는 순간 - 부터 수많은 이들이 국가 미래를 위할 때, 그녀는 위험한 인물로 단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 출생 -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독재자 처단) 군화 발 독재정치의 정경유착은 물론이거니와, 박정희 젊은 시절의 파행(跛行)적인 명예욕(名譽慾)을 참고했을 때 분명 그녀에게도 그런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꾼(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선거에만 이기려는 사람)에게 혼이 빠진 수많은 국민들은 박정희 18년의 기나긴 독재시대에 형성된 경제발전 - 그저 먹고 살만한 생활 - 에만 만족한 나머지, 朴 씨 일가에 미쳐 날뛰고 있었으니, 올바른 말과 참된 글 내용들이 먹혀들어갈 수 있었을 것인가? 그 어떤 정치꾼이라고 하더라도 18년의 긴 세월만 집권했다면 형성시킬 수 있는 먹고 살만한 생활일 것인데, 박정희 독재시대에 세뇌(洗腦)당해 고칠 줄 모르는 아둔한 인물들이 산재하고 있었으니, 박정희 독재가 대한민국에 끼친 지대한 영향은 한(恨)이 서려 있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던가!

    그 恨이 박정희 딸 박근혜가 억지를 부려가며 대통령직에 있는 지금, 한반도 남쪽에 봇물처럼 터져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그런가?
    박정희 18년 독재시대에서 국민의 恨은 정말로 컸다. 시시때때로 국민은 궐기(蹶起)하고자 했지만, 총칼을 앞세운 군화 발 독재정치에 질려버렸으니, 국민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4·19보다 더 큰 함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나 국민을 옥죈 박정희 독재는 국민의 입과 글을 쇠사슬로 봉합시키고 있었으니 어찌 분통한 일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일제로부터 36년의 기나긴 강제점령기(강점기)도 모자라, 그 절반에 해당하는 세월을 박정희 독재자 친일파로부터 제2의 강제점령을 당했으니 하는 말이다.

    


    보시라! 박정희가 대한민국 국민 탄압을 하기 위해 얼마나 지독한 준비를 한 인물이었는지 말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구국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반해, 박정희는 일제 앞잡이가 되기 위해, 후배양성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뿌리치고 - 문경 훈도(교사) 직을 뿌리치고 - 만주로 올라가, 당시 일본의 국왕이었던 쇼와 덴노에게 일본인으로서 개와 말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혈서 -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 박정희] - 를 쓴 끝에 만주국육군군관학교에 2기로 입학하여 예과(1942년)를 우등으로 졸업했으니 그의 친일은 그 어떤 친일파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라며 자발적인 창씨개명을 하고, 당시 만주군관학교 예과 상위 성적학생에게만 주어지는 관행에 따라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2년)에 진학해 졸업하고 현역 만주군 육군 소위로 전역하였으니 ‘친일파 중에 친일파’가 아니란 말인가?


      파일:박정희.jpg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게는 친일파의 피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일본 육군 소위가 된 박정희는 일본이 패망하자 소련군 포로가 되어 고투 끝에 간신히 도망한다. 가까스로 귀국한 박정희는 남조선국방경비대(육군사관하교 전신)에 들어가서 포병 소위 계급을 부여받는다. 복무 도중에 셋째 형인 박상희가 대구 10.1 사건으로 경찰에게 사살되자, 남조선로동당(남로당)에 들어가서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들의 군사총책으로 활동하게 된다.
     남로당 활동 당시 박정희는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에서 감행했던 작전 중에 가장 큰 규모였으며 가장 성공에 가까웠던 정부전복 기도사건(대한민국 국방경비대 침투사건)을 지도했다. 소령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던 1948년 11월에는, 김창룡이 주도한 숙군 작업 도중에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연루돼 체포됐으며, 결국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당시 동거녀 이현란은 공산주의가 싫어서 월남한 사람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박정희에게 실망하고 만다. 게다가 박정희가 딸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사실까지 이현란에게 들통이 나자 1950년 2월 헤어진다.

    
    


    박정희 어머니 백남의는 셋째 아들 박상희가 경찰로부터 총살당하고, 박정희마저 사형선고를 받자, 그 충격으로 세상을 저버린다. 바람 앞 촛불 같던 박정희의 목숨은, 한 때 만주에서 같이 근무했던 만주국 출신의 당시 육본정보국장이던 백선엽 대령의 구명에 의해 힘겹게 사형은 면하여 민간인 신분의 군속으로 일하게 된다. 6·25가 발발한 덕에 박정희는 육군에 재편되고 포병소령이 된 이후 군 생활을 영유하기 시작하여 육군 소장(별 둘)까지 오른다. 4·19이후 장면 정부가 들어서자 과거 남로당 사건이 알려지면서, 더 이상 진급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앙심을 품고,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군화발로 대한민국을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기회주의자 박정희는 18년을 대한민국 국민을 옥죄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를 비평하는 인물들은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었다. 남산 중앙정보부에는 선량한 시민들이 잡혀와 줄을 서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병신이 되지 않으면 죽어서 나와야 했으니 국민을 처참한 지경에 다다르게 한 장본인 아닌가! 어찌 언론의 자유가 있었으며 집회를 함부로 할 수 있었는가? 그런 전철을 박근혜는 그대로 시행하려하고 있었다. 누구와 같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고로 김기춘 쪽 대리인단은 문화예술인의 블랙리스트를 당연한 과정으로 인정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의 집권은 아버지 박정희를 잇는 독재의 과정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둔한 두뇌로는 아버지 박정희만큼 철저하지 못해 결국은 최순실이 개입되는 국정농단이 되고 만 것 아닌가? 이런 것을 뒤집으려고 박근혜를 감싸고 도는 국가 부역자들과 그 일행들이 갖은 애를 쓰며 탄핵반대집회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그 탄핵반대 집회를 더 열렬히 할 수 있도록 박근혜가 3·1절 하루 전날 감사메시지를 보내 더욱 증가시키려는 기세란다.
     


     3·1절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국회와 헌법재판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물론, 언론까지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있단다. 또한 어김없는 색깔론도 나왔다. 이들은 “국회 해산” “언론 해체” “종북 척결”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국가 죄인이자 친일 중 친일의 수괴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감싸 돌고 있는 중이다. 경향신문은 “안모씨(30)는 “박 대통령은 지인(최순실씨)에게 믿고 맡겼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라며 “좌파들이 나라를 완전히 삼키려는 것 같아 탄핵에 반대하게 됐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이라는 문구가 담긴 보자기를 몸에 두르고,. ‘공산주의 싫어요!!’라는 손 팻말을 든 참가자도 보였다는 뉴스다.
     이들이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와 삼촌 박상희가 남로당 출신(빨갱이)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인지, 아니면 무식한 결론을 아무데서나 표현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박정희 독재정권 18년 동안 세뇌(洗腦)를 당했으면 진짜 빨갱이는 모르고, 올바르고 진실한 소리를 하는 이 - 촛불 탄핵 집회 - 를 몰아간다는 것인가!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박정희 국화 발 독재자의 거짓 정책의 입김이 한반도에 서리고 있다는 것인가! 박정희가 정말로 빨갱이였으며, 그 딸이 박근혜인 것이다. 확실하게 알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감사메시지에 정신줄까지 놀 것인가!!! 박근혜는 국민을 선동할 자격도 없다. 만일 그녀의 말을 믿고, 그렇게 쫓는 이가 있다면, 그들은 곧 국가 부역자(附逆者) -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이 - 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박근혜를 가까이 하다보면 결국 국가 부역자도 될 수 있다는 말이 형성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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