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파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파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문재인 퇴진과 국가수호 선언 단체는?



문재인 퇴진과 국가수호를 위한 320 지식인 선언?

2018년 10월 25일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남북 양측과 유엔군사령부는 무장을 해제했다.
더 이상 전쟁은 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이다.
그 다음날(26남북은 군사 회담에서 우선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인 GP 11개씩을 다음 달 완전 파괴 조치하기로 하고, 12월 중 상호 검증하기로 결정한 날이다.
한반도에 남북대치 국면이 사라지며 평화의 序幕(서막)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귀중한 날들이다.

 

자유한국당(자한당)의 지식인 320명이 유신 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 義士(의사)의 민주화를 위한 激忿(격분)의 저격에 의해 저세상으로 간 날(1979.10.26.)을 기념이라도 하려는지 그날(26)을 기해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선언하고 있다?
그 320명 명단은 다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처음 결성할 때는 머리를 끄덕이든 인사들이 당일이 돼서는 참석조차 하지 않으며 뒤로 빠진 비굴한 머리들이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 결성단체로 보이는 것 같다.
어찌됐건 100여 명의 인사들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지식인의 침묵이 문재인 정권의 독단과 국가 파괴에 조력함을 통감한다."고 하는 뉴스가 눈을 멈추게 한다.
준비위도 신통치 않았는지 전 경기지사 김문수(이하 김문수)와 자한당 국회의원 심재철(이하 심재철그리고 자한당 국회의원 김진태(이하 김진태등 13명으로 꾸려졌다는 내용만 있다.
기왕이면 촛불혁명 같이 국민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나?
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에 怏心(앙심)을 품고 있는 이들의 이름만 오르고,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한 고영주 이름도 들어간 것을 보는 순간 제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인사들의 發起(발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驚歎(경탄)할 일 아닌가!
 

'문재인 퇴진과 국가수호를 위한 320 지식인 선언'의 언론보도에서 뉴시스에 달린 댓글들은 이것을 지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앙일보에 달린 댓글들은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아직도 極右(극우세력이 국민 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저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의 慘禍(참화속에서 아까운 젊은 청춘을 불사르게 한 同族相殘(동족상잔)의 6.25한국전쟁의 悲哀(비애)가 돼야 했던 박재권 이등중사(현재는 병장)의 유해가 보여주는 것을 저들은 눈이 없어 아니면 가슴이 없어 보지 못할까?
박재권 이등중사는 1953년 7월 11일 전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해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됐으니 당시 22세였던 그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왜 박재권 이등중사처럼 한반도 안의 청년들이 慘酷(참혹)하게 죽어야만 했던가!
개도 물어가지 않는 이념이라는 더러운 단어들의 미친 짓에 아까운 청춘들의 생명을 잔혹하게 목숨을 던지게 했던 그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晝夜(주야)로 머리를 싸매고 忠心(충심)을 다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위로는 하지 못 할망정 퇴진하라고 하는 卑屈(비굴)한 인물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답이 없는 것인가?
김문수 김진태 심재철 고영주와 이승만 김일성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똑 같이 1945년에 갈라진 나라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이 통일을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체제 아래서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과 한국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인종이 다르고 우리와 말이 다르고 각자의 땅의 위치가 다르고 이념이 다른 것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같은 국민이 동서로 갈라졌고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졌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같은 시기(소련이 붕괴된 때)에 통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인가?
정권을 쥔 자들이 생각하는 자세가 틀렸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민족끼리 총을 맞대고 싸워봤자 서로 간의 국방비만 더 늘어간다는 것만 이해를 해도 쉽게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한민국 독재자들은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북한을 이용하지 못하면 자신들이 영구적으로 독재를 할 수 없다는 것만 알던 그들은 북한과 손잡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북한 도발 强度(강도)를 강하게 할수록 대한민국 국민은 독재자 앞에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防諜(방첩=북한 간첩을 막는 것)’과 防共(방공=공산주의 세력을 막음)’을 앞세워 국민을 欺瞞(기만)했다.
물론 북한 김일성이 적화통일을 위해 간첩은 물론 간첩 단까지 꾸려 남한에 침투시키곤 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그것을 빌미로 자신이 아니면 북한 김일성을 막아낼 수 없다는 방법을 써가며 독재정권을 이어갔다.


5.16쿠데타와 유신 독재의 영웅 박정희는 公安(공안=공공의 안녕과 질서)’과 安保(안보=안전보장의 준말)’를 앞세워 국민을 叱咤(질타)하며 독재정권을 創出(창출)했다.
12.12.군사반란의 首魁(수괴전두환도 박정희의 전철을 밟아가려고 했다.
이 세 사람은 북한 도발이 없으면 가짜로 꾸며서 국민을 기만했다.
간첩은 권력을 써서 만들면 됐다.
그때마다 언론을 이용해서 국민을 쉽게 속여 넘겼다.
국민의 박수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독재정권의 대를 이어오며 1990년 독일이 통일을 할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 직을 수행한 자는 전두환의 절대적 친구였던 노태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국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직접선거만 할 수 있다는 명분이 있을 뿐이지 남북통일에 대한 꿈은 꿀 수조차 없었다.
그런 시기에 民主化(민주화)의 투사라고 하는 김대중과 김영삼은 갈라졌다.
국민들이 그 두 사람을 가르게 만들었다.
결국 김대중은 간접적으로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만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 직을 거머쥐려고만 했지 남북통일은 뒷전에 있었다.
謙遜(겸손)이라는 말은 그들에게는 없었다.
김대중이 북한을 방문한 때(2000.6)는 독일 통일 10주년이 되는 해가 된다.
입으로는 겸손해야 한다고 하며 행동은 동떨어진 짓을 한 분들이다.
그래도 그들이 있어 민주화가 됐다고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은 人心(인심)은 좋으나 決斷力(결단력)과 自主(자주정신은 비약하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아직도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문재인 퇴진과 국가수호를 위한 320 지식인 선언은 국민으로부터 크나큰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는 많은 국민이 왜 이렇게 긴 세월동안 남북이 갈려 있어야 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국민은 感知(감지)하고 말았다.
더 이상 이렇게 허황된 짓을 하는 단체는 없었으면 한다.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