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6일 일요일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면 과거로 회귀해야 할 것인가?

국가 경제정책이 시험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적잖다.
하지만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경제정책을 확 바꾼다고 새롭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 시도했으면 어느 시점까지는 그 정책을 끌고 갈 수 있는 정부와 국민의 인내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틀로 이끌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야권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장하성 정책실장은 26일 오후 3시부터 열린 춘추관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의 고용·가계소득 지표는 '소득주도성장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는 뉴스다.
문재인 대통령도 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영상축전에서도
소득의 양극화 심화 고령화 시대 속의 노후 빈곤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층 소득자들의 소득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혁신성장과 함께 포용적 성장을 위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더욱 다양한 정책수단으로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라며 계속해 소득주도 성장을 이끌고 갈 것이라고 했다.
올바르다고 결심해서 정책을 시작했으면 그 결과가 선명하게 들어날 때까지 밀고 가는 것이 올바른 판단 아닌가?
물론 야권이 원하는 박근혜 식 창조경제의 혁신성장(제조기업의 발전만이 경제성장)을 전면 무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없지 않다고 본다.
더해서 공정경제(균형 잡힌 공정거래)정책도 철저히 이행하고 말겠다는 의지도 있다.


금년(2018) 들어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올라 전년 대비 16.4%p까지 증가한 때문에
570만 자영업자들에게 타격을 받아 아르바이트(Arbeit)직종까지 수요가 떨어지고 실업자 대란의 효과를 내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소득주도 성장론은 실패작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노리고 있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효과로 근무시간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기대치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자고 하는 이유인 것으로도 보인다.
임금을 많이 주면 많이 쓰는 것이 서민들의 정서로 보는 것은 틀리지 않다.
그 효과를 위해 정부는 분수효과[반대 낙수효과]를 보기위해 복지정책도 늘리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대기업으로부터 세수를 늘려 저소득층에 복지를 늘려나가면서 소득주도 성장론에 의지를 들어내 보이고 있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책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낙수효과(대기업과 중산층에게 투자와 소비를 유발시켜 떨어지는 물 같은 효과)로 80%의 서민에게 주려는 혜택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서민층의 복지가 증진돼 소비를 촉진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이론상으로 틀리다고 하는 것은 야권과 보수층의 지적일 뿐이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대한민국 서민들은 낙수효과를 얼마나 느끼며 살았던가?
그 상황으로 回歸(회귀)하자고?
말 같은 소리를 해야 인정해줄 것 아닌가!


혁신성장의 틀도 나름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는 말이다.
로봇시대의 4차 산업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손이 필요 없게 돼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인 로봇산업을 뒤로 미룰 수는 없는 상황 아닌가?
irony한 일이지만 로봇시대로 갈수록 인권비는 줄지만 생활의 潤氣(윤기)가 더해진다는 산업에서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기대를 해야 할 일이 분명 나오게 될 것이다.
인간의 손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 기간까지 허기진 배를 움켜쥘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두뇌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니까!
로봇 산업만이 아닌 혁신성장의 ()는 다양하게 나눌 것으로 본다.
어떤 이는 한국 재벌들의 골목상권을 장악하고 서민의 직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을 빙자해서 재벌기업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정경유착만 하지 않고 서민 경제정책을 투명하게 계속 이끌면서 올바른 기업윤리를 부르짖게 된다면 저들도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삼성이 그 선두주자가 되지 않을지?
문제는 신경제를 위해 개혁의 구도를 창안해서 있는 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제품과 문화시설의 개발과 서비스 산업 발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기획을 대한민국 정부가 소홀히 하지 않고 계속 찾고 있지 않은가!
우물 앞에서 숭늉을 달라고 하지 말자!


과거 정권들의 공정거래는 잘 됐었던가?
적폐의 산실이 들어나고 있는 것도 보았으며 또 보고 있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를 믿고 따라가는 방안이 중요한 때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임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할 것이라고 했다.
적폐를 청산함과 동시 규제가 잘 못된 것이 있다면 풀어야 한다.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는 정부를 지금껏 얼마나 보았던가?
말도 안 되는 야권의 억지를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지난 1년 동안 계속 보아왔다.
그 심판을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금 고통을 받게 된 것은 경제적인 沈潛(침잠)으로 인해 국민의 기대 밖으로 약간 밀려난 것 같다.
이따금 언급하지만 김종필이 세상을 뜨면서 정부 실책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다.


국민의 80%가 김종필은 박정희 독재자의 수족이었는데 그의 죽음을 애도한 문재인 정부가 더 미웠다.
김종필에서 추서한 훈장으로 인해 국민에게는 굴욕의 훈정추서가 됐다.
그게 문재인 정부 쪽으로 화살이 돼 날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 그 상처는 문재인 임기가 끝나는 그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정의당에서 얼마나 말리고 있었던가!
문재인과 민주당 지지율이 정의당과 무당층 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또한
드루킹 김동원(49)의 정치브로커 짓으로 김경수 경남지사의 마음이 흔들림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있을까?
드루킹의 근본을 처음부터 차단하지 못했다는 것이 끝까지 발목을 잡게 될 것으로 본다.
두 가지 欠缺(흠결)에다 경제까지 바닥으로 주저앉았고 貧益貧(빈익빈富益富(부익부)까지 더해진 데에 국민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있다.


경제 개발을 위해 지진 대비 재건축을 시도 하면 어떨까?
건축은 일용직 서민의 저변을 위해 소득이 증가될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남북 간 경제협력이 따르면 그런 효과가 나올 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남쪽의 건물부터 재건하여 지진대비의 건설 투자를 불러오게 해야 할 것이다.
서민 복지 정책을 쓴다고 해도 서민의 주머니는 한도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건축 건설은 항상 소비를 크게 북돋아주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왜 새로운 개발을 주저하고 있는 것인가!
집값 상승에만 觀點(관점)을 두고 지진 대비는 뒤로 미루기만 할 것인가?
국민의 삶이 확장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혁신성장도 소비가 증대할 때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물건을 많이 팔았을 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 법 아닌가 말이다!
보다 더 원대한 기획이 있기 바란다.


장하성 실장의 소득주도성장 이론과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혁신성장론 그리고 김상조 공정 경제정책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문재인 경제정책을 왜 야권은 반박하고 나서고 있는 것인가?
그저 멱살을 잡기만하면 놓지 않겠다는 싸움꾼 같은 짓을 야권은 계속할 것인가?
국민들의 마음을 얼마나 야권이 움직일 수 있을지 아주 궁금하다.
6.13지방선거처럼 제2의 21대 총선을 바라고 있는 야권의 어설프고 쓰디쓴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인가?
국민은 그것을 또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의 드루킹 특검을 보고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야당은 계속 국민을 자극하기 바란다고 하지 않는가!



다음은 노컷뉴스가
장하성 "소득주도 성장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라는 제하에,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은 26일 "최근의 고용·가계소득 지표는 소득주도성장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기업수출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은 과거 압축성장 시대에 효용이 다했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 실장의 이런 언급은 야당과 보수언론 일각에서 주장하는 소득주도 성장 폐기론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으로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경제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 것을 뒷받침한 성격도 짙다.

장 실장은 "만약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아니라면 다시 과거의 정책방향으로 회귀하자는 말이냐"며 "투자 중심의 성장정책만으로는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없고 양극화의 고통을 가져 온 과거의 방식을 되풀이할 수 없다"고 강고하게 말했다.
 
또 "하반기에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정책 추진에 더욱 체계적이고 과감하게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일자리 증가추이 감소와 빈부격차 심화 지표 등 좋지못한 경제지표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장 실장은 "국정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국민들께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한 달한 달 발표되는 통계수치를 면밀히 살피고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가를 밝혀서 빈틈없이 정책을 챙기는 것은 공직자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말했다.

또 "고용률과 취업자수가 증가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취업자 증가 규모가 둔화된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평균가계소득과 임금근로자의 소득이 늘었는데도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하고 자영업자가 어려운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서 정책을 세심하게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최근의 경제지표 악화가 소득주도 성장 때문이라는 공격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장 실장은 "최근 일자리·가계소득 관련 통계가 악화하면서 이 모든 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고 최저임금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을 등치시키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전환·포기하라고 하는데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난관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이제 시작단계로 문재인정부의 예산과 정책이 실행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며 "경제정책은 기획·입안·실행에 시간이 걸리고 효과를 본격적으로 발휘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또 "일각에서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선택의 문제로 보고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고 규제혁신을 통한 혁신성장에 집중하라고 하는데과거 정부에서도 녹색성장창조경제 등 투자 중심의 성장정책을 10여년 실시했지만성장잠재력을 높이지 못했다"며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선택의 문제도선후의 문제도 아닌 반드시 같이 가야 할 필연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혁신성장공정경제와 함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기조가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했다.
 
장 실장은 "지난해 국내총생산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위이지만 국내총생산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국가 중 끝에서 세 번째로 낮다"며 "가계지출 중에서 정부의 교육의료 등 정부의 보조를 포함한 실제 가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OECD 국가 중 끝에서 세 번째로 낮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는 지난 10여년간 OECD 국가 중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항시 가장 높았는데도 성장률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투자만이 성장을 견인한다는 생각에서 경제성장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인 국내 수요즉 소비의 중요성을 간과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수요 즉 소비가 경제성장을 견인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가 성장한 만큼 가계소득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1인당 국민소득은 71.5% 늘었지만 가계총소득은 69.6% 늘었고더욱 심각한 것은 평균가계소득은 경제성장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1.8%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경제 성장 증가추이를 가계소득이 따라가지 못해 구매력이 크게 줄었고결국 소비시장 위축으로 가계소득이 다시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점을 상기시킨 셈이다.

실제로 장 실장은 "가계소득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소비가 줄고기업소득 비중과 기업저축은 증가했지만 기업투자는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현재 구조"라며 "경제성장의 성과가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국내수요가 정체되고 기업투자가 기업저축보다 작아지면서 성장잠재력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가 파탄났다는 야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도 감추지 않았다.

장 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작년 5월 출범 이후 경제구조를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가계소득을 높여 총수요기반을 넓히고대기업수출기업 위주에서 중소혁신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하며불공정한 경제구조거래관행을 해소해야 함을 국민들께 호소했다"고 환기시켰다.

한편 장 실장은 올해 초부터 불거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불협화음'에 대해서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 실장은 "당연히 서로 다른 의견 나오는 건 부부간에도 피할 수 없다"며 "그러나 국민에 책임지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의견이 달라도 토론 통해 하나로 만들어내고 그걸 정책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과정 거쳐야 한다의견과 생각이 완전히 같다면 오히려 위험한 거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언론은 매우 부정적 의미로 해석했던데 김 부총리 말씀이 정확하다저는 스탭"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김 부총리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고용대란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장 실장은 청와대 안에 계신 스태프다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답한 것을 지목한 셈이다.

장 실장은 "(청와대비서실에서는 정책을 맡고 있고김 부총리는 그 정책 집행의 수장이니의견이 다를 땐 분명히 밝히고 토론하고 정책 선택을 이어가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도 했다.(노컷뉴스;2018-08-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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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5일 토요일

민주당 이해찬 신임 대표 이력서



이해찬 민주당 신임 대표 전력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1988년 13대 국회를 통해 첫 등원되자마자 5공 청문회를 통해 통일민주당의 노무현이인제 당시 의원과 함께 송곳 질의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어 스타로 빛났던 이해찬(1952~ ) 7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원이 2018년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됐다는 뉴스다.
청년 시절 그의 달변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40대 국무총리까지 올랐었다.
그는 선거의 귀재라는 단어도 따라다니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순탄하지만 않았다고 보는 눈이 많다.
그는 철새 정치꾼 같이 당적을 많이 옮겨 다녔던 것 같지만 실상은 그가 속했던 당들이 당명을 수시로 바꿨기 때문이라고 나무위키는 적고 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그가 속한 정당은 야당이었으니 그러했다고 말하기는 또 못마땅한 면도 없지 않다.
독재자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야권이 단합을 해야 하는데 정치꾼들은 서로 자신들의 의견만 옳다고 한 때문에 독재정권시대 야권 정치꾼들의 이권 다툼도 난장판이 될 때가 종종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추잡한 정치의 단면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어찌됐건 이해한 민주당 대표의 정치 歷程(역정)도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역군이라는 점은 틀리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해찬 대표의 생애를 나무위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면(현 청양읍)에서 아버지 이인용과 어머니 박양순 슬하 5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참고로 이해찬의 조상은 덕흥대원군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시절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해찬은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부친인 이인용 씨가 청양면 면장 출신이기 때문이인용 씨는 광복 후에 32살의 나이로 청양면장을 맡아 4.19 혁명 때까지 면장을 지냈을 정도로 마을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말기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나서 면장에 당선 되었다고 하니지역 주민들의 신망이 투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덕수중학교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입학한다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를 다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하였고이듬해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주로 운동권에서 활동했는데,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어 약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이 사건 후 무역회사를 다니기도 했고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차린 번역실에서 번역을 하기도 했으며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일하는 등 재야 인사로 지냈다. 1979년에는 돌배개출판사를 창업했다.

그러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이 되었다가 해금 조치되면서 1980년 복학하여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다참고로 재밌는 에피소드가이 때 이해찬과 유시민이 멱살잡이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당시 1학년생들의 병영집체훈련 응소 문제를 두고 운동권 내부에서도 총학생회측과 복학생협의회 사이에 의견이 달라 노선 싸움이 있었다이 문제에 대한 집회에서 총학생회 간부였던 유시민이 사회를 봤는데 복학생협의회측에 발언권을 주지 않고 집회를 끝내려 하자 복학생협의회장이었던 이해찬이 달려들어 유시민의 멱살을 잡은 뒤 욕설을 했고 이어서 주먹을 날리려던 찰나에 사람들이 말려서 다행히 주먹다짐으로 번지진 않았다고 한다그 뒤로 둘은 화해를 했고 절친한 운동권 선후배 사이로 남게 되었으며훗날 잘 알려졌다시피 이해찬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 유시민을 보좌관으로 영입하게 된다.

그해 6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이해찬은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되었다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되었다군사 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1985년에 처음 서울대를 입학한 지 14년 만에 졸업하였다. 1987년 말에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나무위키)


이해찬 대표의 부친 때부터 대를 이어 야권 정치인으로 독재자들과 맞서는 정치활동을 한 집안으로 이어왔으나 이제는 여당 대표가 된 그의 소감은 남다르지 않을까싶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고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주의에 대해 成熟(성숙)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보고 있는 중이다.
고무신 한 켤레 막걸리 한 잔에 반해 민주주의의 꽃인 귀중한 한 표를 독재자에게 던지던 우리의 관습에서 벗어난 그 대가를 이해찬 대표도 맛보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잘 알겠지만 20대 총선에서 이 대표는 무수속으로 세종시에서 당선됐다.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 의해 이해찬 19대 세종시 지역구 국회의원은 당 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김종인(당시 전두환 노태우가 이끌던 민주정의당의 후보자)이 13대 총선의 관악을 지역에서 애송이 정치인이던 이해찬(당시 평화민주당)에게 패한 대가를 비겁하게 복수한 것은 아이었던가?
그러고 보면 민주당도 참으로 많은 역경을 딛고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비대위 대표를 김종인으로 세울 때 여론이 빗발쳤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비겁하게 상대를 꺾어야만 했던 한국 정치꾼들의 野史(야사)를 보면 추잡스러운 점도 적잖으니까!
그 때문에 정치인들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외면하는 국민은 되지 말아야 국가는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셔는 안 된다.
비겁하고 추잡하고 악랄하며 더러운 정치적 문제는 결국 역사에게 맡기면 된다.


이 대표는 과거 민주통합당 대표도 한 경력이 있으니 당 화합을 위해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특히 21대 총선이 1년 후에 치러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민주당도 새롭게 변신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이다.
물론 이 대표가 잘 처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왕 최고의 자리에 서있으니 독재자들의 후예들이 더 이상 난무하지 않게 처음부터 깔끔하게 잘라내면서 日就月將(일취월장)의 민주당이 될 수 있게 이끌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성공을 빈다.

 

국민일보는
‘‘7전 전승’ ‘버럭 총리’ 민주당 신임 당 대표 이해찬은 누구?
이해찬 신임 당대표(66)는 더불어민주당의 최다선 현역 의원이자 국무총리까지 지낸 잔뼈 굵은 정치인이다.

1952년생인 이 대표는 충남 청양군에서 태어났다하지만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중학교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그 과정에서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두 번 옥살이를 했다대학을 졸업하기까진 무려 14년이 걸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 대표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첫 발을 들였다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17대 국회의원까지 5번 연속 당선됐다.
 
그는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정권 교체에 공을 세웠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통일민주당의 노무현이인제 의원과 함께 송곳’ 질의로 스타정치인으로 발돋움 했으며, DJP 연합 당시 정책 공조 협상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선거 전략가로도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 대표는 정부에서도 요직을 두루 거쳤다김대중정부에선 교육부 장관노무현정부에선 국무총리를 각각 역임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엔 강한 권한을 가진 책임총리로 일했다이 대표는 총리 시절 국회 질의에서 야당과 공개 설전을 마다하지 않아 버럭 총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대 총선 때 국무총리 시절 세종시 건설을 직접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 출마해 당선됐다.
 
민주통합당 첫 지도부였던 한명숙 지도부가 19대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2012년 당대표로 당선되기도 했지만, 18대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당대표 대행을 맡기고 사퇴했다.

이 대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지도부가 세종시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다하지만 20대 총선에서도 당선되면서 그는 7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전승한 국회의원이 됐다.

이 대표는 이후 같은 해 9월 민주당에 복당했으며당내에서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을 맡았다.

지난해 대선에선 문재인 대선후보 선대위원장으로, 6·13 지방선거에선 추 대표와 함께 수석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다.(국민일보; 2018-08-2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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