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0일 월요일

김수영의 '풀'과 그 민중의 삶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金洙暎

 

 


 

김수영의 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해설은

작자의 말기를 대표하는 시작품으로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것이다.

318행으로 된 이 작품은 바람이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다.

 

바람의 반복적인 구조와 효음(效音)을 제외하고 문맥상으로는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한다. 단순히 눕다’·‘일어나다’·‘울다’·‘웃다라는 4개의 동사가 반복되어 시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시의 핵심어인 바람의 상징성의 해석에 대하여 어떤 이는 을 가난하고 억눌려 사는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은 민중을 억누르는 지배세력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를 부정하고 포괄적으로 생()의 깊이와 관련된 어떠한 감동을 맛보게 하는 상징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자인 김수영의 강렬한 현실의식과 저항정신이 뿌리 박힌 참여파 시인의 전위적(前衛的) 역할을 감안하여 보면, 오히려 전자의 해석이 온당할 것 같다. 처음에는 바람에 의하여 풀이 누웠다가 일어나지만, 나중에는 바람보다 먼저 풀이 누웠다가 일어나는 현상을 볼 수가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에서는 이 눕고 울다가 또 눕는 것은 흐린 날 비를 몰아오는 바람때문이라 하고 있다. 어두운 현실에서 억눌리며 사는 민중의 삶을 에다 비유한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울고 일어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바, 이는 지배세력에 눌려 사는 민중의 굴욕적인 삶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셋째 연에서도 날은 흐리고 이 눕고 일어나고 웃고 우는 것이 바람과는 무관하게 엇갈린 모순율(矛盾律)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발밑까지 눕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이 발밑까지 짓밟힌다는 것으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의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노래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2월 19일 일요일

그 날이 오면 - 沈 熏(심 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 훈(沈熏)

 

 


 

* 불행하게도 이 작품은 1930년에 지어졌지만,

일제 탄압을 이겨내지 못해,

광복 후 1949년에나 세상에 알려지게 된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가냘프고 외로웠던 ()이다.

 

나라를 잃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웁고 안타까운 일인지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누가 냉정하게 대답 할 수 있단 말인가!

 

 

2023년 2월 18일 토요일

불 사루자 - 春城(춘성) 노자영


 불 사루자

 

 

, 빨간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피, 나의 뼈, 나의 살!

<전적(全的)>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 강한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애착, 모든 인습

그리고 모든 설움 모든 아픔을

<전적>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 햇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버리자

나의 몸에 숨겨 있는 모든 거짓, 모든 가면을

오 그러면 나는 불이 되리라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그리하여 불로 만든 새로운 자아에 살아 보리라

 

 

불타는 불, 나는 영원히 불나라에 살겠다.

모든 것을 사루고, 모든 것을 녹이는 불나라에 살겠다.

 

 

- 노자영(盧子泳)





 

 

2023년 2월 17일 금요일

낙화 - 조지훈


 낙화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 하노리*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조지훈

 

 


 

* 주렴(珠簾)

<유의어> 구슬발. 옥렴. 주박.

 

*귀촉도(歸蜀道)-

두견과의 새. 편 날개의 길이는 15~17cm, 꽁지는 12~15cm, 부리는 2cm 정도이다. 등은 회갈색이고 배는 어두운 푸른빛이 나는 흰색에 검은 가로줄 무늬가 있다. 여름새로 스스로 집을 짓지 않고 휘파람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휘파람새가 새끼를 키우게 한다.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 우련 (優憐)-

특별히 가엾게 여김

 

* 저어하다

형용사

1. 익숙하지 아니하여 서름서름하다.

2. 뜻이 맞지 아니하여 조금 서먹하다.

<네이버 국어사전>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말세의 欷歎(희탄)' - 이상화 독립운동가


 말세의 *희탄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

, 밑 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거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몸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 이상화






 欷歎(희탄)

흐느껴 통곡하다

欷 흐느낄 희
歎 탄식할 탄


 

 

2023년 2월 15일 수요일

윤곤강의 나비


 나비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 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의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 윤곤강




2023년 2월 14일 화요일

이방원의 何如歌(하여가)라도 없었다면...


 何如歌(하여가)만 없었다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칡넝쿨이 얽혀진들 ....

 

- 이방원


 

이조 3대 왕 태종 李芳遠(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를 앞세워 이씨 조선을 세우기 위해 정도전 등이 주축이 되는 일에 가담하며,

고려 충신 鄭夢周(정몽주)의 의지를 자신들 쪽으로 돌려야하는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냐!

그로 인해 나온 () 何如歌(하여가).

 


정말 마땅치 않은 - ()라고도 할 수도 없는 짧은 글 -

난 그 ()를 처음부터 제대로 외우고 싶지도 않았고 기억했던 적도 드물지만,

아이들이 열심히 외우던 소리가 자연스럽게 귀로 들어와 자리하고 있다.




정몽주 의 단심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그런 게 싫었다.

아니, 그냥 싫었다.

욕심이 지독히도 많은 그 作者(작자)가 싫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로 인해 위대한 聖君(성군)이 나왔단 것에도 싫었었다.

그런 그의 하여가처럼 돌아가는 세상이 싫어서 이었을지 지금은 생각한다.

역사는 없던 것도 꾸며진다는 데

있었던 何如歌(하여가)를 버릴 수는 없었을 테니

그런 능청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백성들이 싫어서 일까만,

이제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다만 그 시가 만들어져서는 안 됐을 역사를 가진 나라에 한탄할 뿐이다.

이방원이 아주 조금만이라도 욕심을 버릴 수 있었던 위인이었다면?...



*** 하여가 사진을 넣었다는 게 내게 있어 너무 짐이 돼,

지금(2.16.2023.) 그 사진을 내리고,

정몽주의 단심가를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