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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가장 성공했으나 가장 안쓰러운 분?

가장 성공하셨지만 가장 안쓰러운 분?

"모두 구출하라"…세월호와 빅토리호의 명암

理念(이념)이란 놈이 무엇이기에 한반도를 완전하게 가르는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同族相殘(동족상잔)의 비극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됐던 한국전쟁 당시 어른들의 깊고도 슬픈 苦惱(고뇌)를 상상하며 자연적 안쓰러움이 ()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인간끼리 상대가 힘들고 괴로워 할 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써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동정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인데 한반도를 책임지겠다던 남북의 두 지도자는 서로를 할퀴고 끌어내지 못해 군중을 선동하여 이념이 맞부딪는 일까지 하다못해 총부리를 마주대고 형제를 살해하는 6.25한국전쟁으로 변하게 만들고 만다.
누가 먼저 남침을 했느냐고 따지기 전 충분히 화해까지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출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남북에 들어선 지도자는 어림도 없는 인물들이란 것이 확실했지 않나?
그래도 상통할 수 있는 김구 선생께서만 남쪽의 대권을 잡았더라면 가능성은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미국은 "대한민국 건국에 협조하고, 지켜준 初心" 으로 돌아가야
[편집의눈]베트남 북미정상회담도 김정은의 '러키나인' 날짜에 맞췄네?

38세 청년 김일성(1912.4.15.~1994.7.8.)
75세 노옹 이승만(1875.3.26.~1965.7.19.)의 세대 간 차이부터 맞지 않아 虛心坦懷(허심탄회)할 수 없었던 것도 문제 아니었던가?
더구나 이념까지 뒤얽힌 두 사람 간 화합은커녕 서로를 못 할퀴어 안달이 난 두 사람 간 이념의 권력욕이 더 컸던 것 때문에 남북 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결국 전 세계로 이어지며 젊은 수백만의 청춘들을 散華(산화)시키고 말았으니 참으로 비극 중 비극의 나라임에 틀리지 않다.
그 원인을 만든 것은 분명 일제와 미국의 密約(밀약)에 의해 자행된 사실이지만
김일성과 이승만이 권력욕을 억제할 수 있는 대화만이라도 할 수 있는 여유만 있었다면 지금의 한반도는 아니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마약보다 더 진한 권력욕 때문에 한반도는 남북으로 완전하게 갈라지게 된 것이다.
국민 모두 얼마나 애통할 일인가?

외신이 본 한국전쟁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입영열차를 타다
미군 손 잡는 한국인 소녀…한국전쟁 흑백사진, 컬러로 부활

치열한 전쟁 1(2년은 휴전협상 기간으로 낭비)의 결과 남북에 남은 것은 폐허가 된 도시와 전쟁참화에서 채 묻지 못해 나뒹굴고 있는 이름 모를 해골들로 더렵혀진 산하.
그리고
71만여 명[총인구 대비 1.5%, 이 중 북한출신은 16만 명2005 인구주택총조사(통계청 참조)]의 이산가족을 만들어 논 것 외에 무엇이 있었던가?
결국 한반도는 남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원인과 결과만 되풀이되고 있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념타령하며 세상을 어둡게 하고 있잖은가?
公正(공정)한 正義(정의)를 찾지 못하는 정치꾼들의 가슴속에 검은 연기 같은 마음속이 새까맣기 때문이다.
권력이 그렇게 좋다는 것을 느끼는 욕심에 찬 이들이 다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권력만 잡으면 驕慢(교만)하고 體面(체면)不通(불통)의 權威(권위)만을 앞세워 국민을 딛고 일어서려고 하는 권력의 힘을 과시하는 어리석은 정치꾼들의 도도함 때문에 세상은 어지럽게 되고 있지 않았던가?
결국 독재자들의 세상으로 변해 자신들을 비평하는 인물들은 肅淸(숙청)의 대상으로 삼고 재거하는 작업으로 물들었던 피비린내는 계속되고 있었다.
진정 국민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X돼지로 인정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 아니던가?
그런 사정의 역사를 너무나 잘 아는 자유한국당(자한당)의 선대가 전두환이고 그 위가 박정희이었으며 그 위로 올라가면 이승만으로 이어지는
때문에 대한민국 정치 역사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김일성도 이념을 반찬삼아 씹어가며 자신 영화만을 위해 북한 인민들을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으니 남북 간 국민들의 치욕을 누가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단지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이 국민에게 자유는 주었다고 하는데 그게 다 올바른 자유였느냐 하면 자신들의 민낯을 위한 국제적인 허울에 불과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 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의 미국과 국제연합의 굴레에 있었을 뿐 실제적인 면에서는 국민의 억압이 분명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밝혀내고 있잖은가?

 文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사 별세…향년 92세

그래도 북한에 살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너무 고마워 한숨 소리가 절로나지만,
인간 대접 제대로 받고 있는 국민의 실상은 지금 문재인 정부가 최고 아닌가?
문재인을 이 땅에서 태어나게 해준 그 모친이 他界(타계)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 말 속에 나오는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이라는 그분도 북한 이산가족 중 한 분이다.
문 대통령 위 누나를 등에 업고 흥남부두를 떠나 거제도로 피난을 온 강한옥 여사가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도망가고 싶을 정도의 심정인데 친정붙이가 하나도 없는 남한 사회에서 갈 곳이 없었다는 그 말이 참으로 안쓰럽게 들려지고 있다.
시집을 갔던 안 갔던 여성들에게는 친정이 얼마나 포근한 보금자리인데 그 걸 북한에 두고 왔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만 않지 않는가?
그만큼 타향살이 고생이 극심했다는 말 아닌가?
그러나 그는 위대한 어머니가 됐으니 피난민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분 아닌가?

[속보]문 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사 별세…향년 92세

큰 아드님이 대통령이 됐으면 청와대에서 같이 살아도 좋으련만 굳이 부산 영도를 떠나지 못한 것도 아는 사람들이 모두 그 주위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니,
피난 생활 중 얼마나 외로웠기에 잘 알고 사는 사람들과 두 번 다시 헤어지기 싫었다는 뜻인가?
흥남에서 태어나 거제로 와 고생 끝에 찾아 낸 마지막 영도,
그곳에서 말년생활 하면서 고향이 얼마나 그리웠을 것인가?
남성과 달리 여성은 자신의 고향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인데 어찌 참고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남북 간 화해가 곧 돼 남북 간 왕래가 될 것만 같았던 게 차일피일 밀리면서 이제는 또 期約(기약)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마는 상황이 돼가는 것에 안타까움이 적잖다.
그 아드님이 지난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할 때는 곧 남북왕래가 될 것만 같아 이산가족들과 탈북민들에게 꿈이 이뤄질 것 같아 좋아했건만 북미 간 대화는 정말 쉽지 않게 질질 끌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머님을 모시고 어머니 고향을 한 번 찾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지 않았을까만 이산가족 전체가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더 바랐을 것이니 참으로 안쓰러운 일 아닌가?
또한 어머니 살아 계실 때 효도 한 번 크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늘의 부르심[召天(소천)]을 그 누가 拒逆(거역)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더더욱 안쓰럽지 않을 수 없는 일!
그래도 대한민국에 가장 양심적인 대통령을 국민에게 선물해주셨으니 강 여사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그 분은 가장 안쓰럽고 가장 성공한 어머니이다.
永眠(영면)하소서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29일 소천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문 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시절이던 2016년 12월25일 부산 영도구의 모친 강한옥 여사의 자택에서 모친을 부축해 성당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 공식 블로그 제공) 2019.10.29/뉴스1

2018년 8월 20일 월요일

한반도에 위험을 던진 현대 인물들은?



한반도에 태어나서는 안 될 인물들은?

너무 너무 긴 세월이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물들 때문에 남북 간 국민의 상처는 지금껏 아물지 못하고 벌어진 그대로 65년을 이어오고 있다.
한반도가 찢어진 원인은 일본 제국주의자(일제)들의 작품이라고 결론은 났지만,
미국과 구 소련의 이념이 찢어진 생살을 더 가르고 말았다면 그 갈라진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더 벌려 논 장본인들은 김일성과 독재자 박정희의 邪慾(사욕때문이라고 보는 눈들이 더 크다.
일제가 망해 문드러져 쌓인 해는 73년이 넘었고 소련의 스탈린이 김일성을 시켜 同族相殘(동족상잔)의 정책을 인정한지도 68년의 긴 세월을 뒤로 보내고 말았는데 한반도는 아직도 戰時(전시)의 砲火(포화)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민족의 한 결을 굳게 하고자 하는 진정한 偉人(위인)이 단 한 명이라도 한반도의 남쪽에 있었더라면 아픈 상처를 그대로 두고만 보고 있었을까?
북한 공산주의 체제를 이용하여 남쪽에서 권력을 잡고 독재를 할 수 있었던 패거리들만 없었다면 한반도가 이처럼 긴 세월을 갈라지게 놔뒀을까?
남측 정치꾼들이 북한 체제를 이용하려고만 하지 않았다면 남북 이산가족들이 서신 한 장 왕래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올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정권을 잡은 자들의 私慾(사욕때문에 국민이 그들의 눈에 들어 있었을 것인가!
북한 체제가 凍土(동토)의 땅 속에서 얼음덩이 돼 얼어버리게 된 것이 남측의 책임은 절대 없다고만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북한 체제를 두고 남측에선 상대할 수 없다고 그냥 내던져놓고 방치하는 것처럼 방법을 써가며 한 쪽으로는 북한 체제를 베낀 그대로 활용하며 37년의 긴 세월 동안 독재자를 위한답시고 같이 말아먹었던 정치꾼들의 후예들이 없었다면 북한 땅이 온전하게 동토의 땅으로 이어져 왔을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박정희는 젊은 학도들과 온전한 정치인들을 18년 동안 묶어놓고 제 욕심 채우기에만 심혈을 기울이며 色魔(색마)의 짓거리까지 열심히 해 가며 200여 명의 여성을 울리고 웃겼다.
중국의 왕권 독재자 ()나라 始皇(시황)과 다른 것이 있다면 秦始皇(진시황)은 중국국민의 눈에 보여 가며 못된 짓을 했다면 박정희는 국민의 눈을 피해가며 못된 짓을 한 것이 다를 뿐이다.
박정희가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張勉(장면정부가 이끌던 민주당 정부가 북한을 그대로 두었을까?
민주당은 金九(김구선생의 (=한반도 통일)에 대해 방치하는 정치를 해왔을 것인가 말이다.
깊은 思索(사색)이 필요한 아침이다.


1990년 11월 15일 고르바초프가 신연방조약안이라는 것을 내놓았을 때
북한의 김일성의 굴욕적인 사고를 분명 노태우도 알고 있었을 것인데,
대한민국은 북한을 방치한 채 뒷짐만 쥐고 있었다.
?
박정희 독재정권이 이어올 수 있었던 정책을 깡그리 파기시키지 않으면 북한을 떠안아야 한다는 難關(난관)이 닥칠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을까?
물렁한 노태우는 그럴만한 위인이 되지 못했을 것으로 안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에 政治家(정치가)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말이다.
4년 뒤 1994년 김일성이 사망(78)하던 해 7월에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회동이 성사만 될 수 있었다면 하는 사람들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크지만 될 수 없었던 것은 박정희 정권이 북한과 철저하게 담을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남북 간 회동은 남북 相通(상통)하기 위한 회동이라고 하기에는 어쭙잖은 데가 너무 크지 않았을까?
단지 국민의 눈을 속여 가며 자신들의 사욕을 위한 方策(방책)의 수단에 불과했을 것이다.
박정희가 남북 간 대화를 터서 최소한의 남북 간 서신 왕래만이라도 시켜놓는 일이 벌어졌다면 대한민국의 이산가족은 피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았을 것으로 思料(사료)되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박정희는 북한과 대화는커녕 더 벌어지게 했다.
그래야만 박정희 독재왕국이 영원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니까!


북한은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후 급격한 경제타격을 받았다.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권한을 주고 뒤로 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 때가 1994년 김일성이 죽는 해다.
김정일은 김일성과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을 방해하기 위해 김일성이 죽게 만든다.
총을 쏘지 않은 암살인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일정의 3일 전 사건이다.
한반도에 태어나서는 안 될 인물 중 한 명이 김정일이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욕심이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한 元兇(원흉)이고
박정희는 남한을 독재의 도가니에 넣기 위해 북한을 정책적으로 이용한 邪惡(사악)한 인간이며
김정일은 남북 화해를 막아선 惡鬼(악귀)인 것이다.
이들의 작품이 70년 긴 세월 속에서 한반도를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 것이다.
그 후유증은 오늘도 이어지면서 금강산을 통곡의 계곡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이 된 서러움에 금강산의 울음바다는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가 주축이 된 정권의 후예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을 이어가고 있다.
그 뿌리를 온전히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또 그런 인물이 나오게 될지 모른다.
대한민국 국회를 확실하게 청소해나가지 않으면 말이다.

 

세월이 가면서 젊은이들이 남북 이산가족상봉 그 자체를 잊고만 싶어 하지만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70년 세월만큼 늙고 또 늙어서 얼굴은 온통 깊고 깊은 주름으로 쭈글쭈글 거리고 있지만 혈육의 정은 그 주름만큼 깊어져 있는 것이다.
어찌 같은 민족으로서 저들의 슬픔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언제부터 이런 말이 나왔던가?
1985년 전두환 정권이 독재자의 탈을 벗어보자고 시작한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시작될 때부터이다.
하지만 남북은 수시로 휴전선에서 충돌하며 이산가족들은 33년 동안 그런 꿈을 꾸기만 했다.
33년 동안 겨우 21번째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동안 서신왕래조차 하지 못한 실정!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행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가능성은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이기만 하지 가까이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가 얼마나 가까이 와있는지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일 듯이 보일 듯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하지 않는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쉽지 않은 연례행사에 불과 했다.
1985년부터 시행된 이 행사를 북한은 마지못해 만나게 했다.
남쪽에서 돈을 듬뿍 지워줄 때 가까스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북한이다.
남북 경제의 구도가 너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안 북한은 북한주민을 해외로 빼놓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쓸 때이다.
북한 사회주의의 비참한 현실이 들어나고 있던 1990대 초반(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기아선상의 북한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허둥대고 있었다.
이 시기를 잘 이용하려고 한 남쪽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노태우의 무능을 보여주는 정권이 북한까지 챙길 형편이 되지 않아서 이었을까?
북한을 감당할 수 없는 경제 때문이었을까?
박정희 독재시대부터 내려오던 정책을 차마 뒤집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을 매체로 한 방공과 안보정치로 이어온 정책 말이다.
결국 박정희 시대에 이루지 못한 남북 화해는 무능한 정권들(노태우 김영삼 정권)에서 걸림돌만 됐을 뿐 남북평화를 위한 정책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김영삼 정권은 끝내 IMF의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빈약한 나라로 만들고 말았지 않는가!
어찌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 할 수 있는 기반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10년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들어 남북은 끈끈해지고 있었으나 지나치고 말았다.
그 당시를 떠올린다는 것은 또 난감한 시대였다.


국민은 북한에 너무 퍼준다고 난리를 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북한 김정일은 그 돈으로 핵시험과 미사일을 개발해 나갔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웠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5.16군사정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 달라지고 있었을 것 아닌가?
민주당 정부가 북한 김일성의 고집을 어떻게 요리를 했을지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다.
역사는 이미 이만큼 지나와 있으니까!
어찌됐건 대한민국과 한반도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야 할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렇게 슬픔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고,
아름다운 금강산에 울음소리 울려 퍼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반도는 서글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땅이 된 것 아닌가!
청춘들이여!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그리고 착실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다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보지 않을 수 없는 서러운 이산가족의 슬픈 사연의 뉴스이다.
저들의 사연을 보자!
경향신문은
‘[이산가족 상봉]딸이 있었다니아버지는 눈물만 흘렸다는 제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