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6일 수요일

살충제계란과 계란공포증 & 순리

 
살충제계란과 계란공포증 & 순리
 
 
Phobia(포비아; 恐怖症(공포증))
- 특정한 물건,
환경,
또는 상황에 대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불안장애의 일종?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는
공포증[Phobia]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국한되어 발생하는 공포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공포는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이고,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두려움이 유발된다.
공포자극에 노출되면 예외 없이 즉각적인 불안 반응이 유발되며,
심하면 공황발작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공포증 [phobi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동물보호단체 "동물복지농장 '예방적' 살처분을 중단하라!" 공동성명

‘에그포비아(Eggphobia; 달걀공포증)?’란
단어가 등장했다.
지난겨울부터 조류독감[AI] 때문에 유난하게 겪어온
닭과 계란파동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말?
달걀을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지 않은 이들이 드물지 않았나?
겨울철이 다 지난 늦은 봄에도
겨울 철새들은 다 날아가고 없는데,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AI=Avian influenza virus)는
한국 땅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니,
또 한 차례 닭과 오리 그리고 달걀들의 먹을거리를 두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땐 안 먹으면 되는데 그럴 수 없는 것이 계란 아닌가?
심지어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에도 달걀이 들어가고 있으니
계란의 활용 범위는 지대하고 지대하다?
 
닭 진드기  해결 방법은 오존???

더해서
닭의 진드기(국내산 닭의 진드기 감염률은 94.2%p?)를
죽이기 위해 써야하는 살충제사건까지 터지고 말았다.
사람이나 가축에는 저독성이라고 알려진 ‘피프로닐 세립제(Fipronil)’는
쓸 수 없다고 한다.
이 제품은 사용한 이들은 고초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최고 10년 징역을 살든지 1억 원 벌금?
비펜트린 유제(Bifenthrin)도 적절한 양의 7배까지 사용한 농가도 있다?
이들도 그 양에 따라 조사를 받겠지만,
톡톡한 고통을 받을 것 같다.
먼저 그들의 달걀 팔로가 당자 막힐 것 아닌가?
 
'살충제 계란' 추가적발 농장은 철원 '지현'·양주 '신선2'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처지의 사람들이 생긴 것 같다.
왜?
이들이 이런 짓을 했을까?
농약사용방법을 몰라서?
남이 써보라고 해서?
일하기가 귀찮아서?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갖지 않아서?
인간윤리의 범죄란 간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
하면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그 순간에는 망각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까지 농가를 완전 망가뜨릴 수 있는가?
단 하루 적발된 7 곳 중  6 곳이 친환경농업이라는 거짓탈을 쓰고 있었으니 통탄할 일?

 닭 진드기 7~8월 극성부리는데 검사는 3월에 한 정부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짓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독재정치꾼들만 국민을 공포에 직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는 중이다.
사람을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짓보다 더 두렵게 만든다는 것을!
앞으로 한 동안은
계란이 들어간 음식들을 쉽게 먹으려고 할 것이다.
결국 달걀 값이 떨어져야 할 텐데
일부 언론사는 더 오를 것으로 예측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달걀이 좋다는 말인가?
고로
이들이 한 짓이 얼마나 무거운 범죄를 범했다는 말인가!
 
유럽발 '살충제 달걀' 사태 일파만파…한국·홍콩까지 19개국

16일 전국적으로 일제히 살충제 검사를 하여,
20%p 농가에 불과하고,
전체 계란 생산량의 60%p의 양에 불과!
앞으로 살충제계란 농가는 더 나올 확률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를 통과한 사업체나 양계업자들은
국민 식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판매를 시작했단다.
잘 알려진 업체들 중 휘파람을 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불합격판정을 받아 덜어내야 만하는 업체도 있고,
완전히 팔 수 없어 한숨을 쉬는 업체들도 있는 것으로 나온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확인해보고
최고의 품질만 팔겠다는 철학이 있었다면
고통을 받을 일 있었을 것인가?
 
 [살충제 계란 파동]AI 공포 두배…'생계' 걱정에 피눈물 흘리는 영세업자

장사도 ‘順理(순리=자연의 이치에 순종)를 지키라’고 했다.
 
라이프성경사전은
‘순리[順理, natural]’라 적으며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순조로운 이치.
도리에 순종함.
헬라어로 ‘퓌시케’인데, ‘퓌시스’(자연)에서 파생된 말로
‘자연의 질서’를 뜻한다.
하나님이 자연계 즉 동식물계에 세우신 ‘질서’를 말하는데,
특히 남녀 관계나 부부 사이에 주신 결혼 질서나 사회 질서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로마에서는 동성애나 수간 등의 성 범죄로 인해 인륜이 파괴되고 결혼 질서가
무너져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특별한 경각심이 요구되었다(롬 1:26-27).
[네이버 지식백과] 순리 [順理, natural]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생명의말씀사)
 
 

원불교대사전은
순리(順理)를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1) 순조로운 이치.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 순서 있게 바뀌는 것이라든가,
우주의 *성주괴공이나
인생의 생로병사가 순서 있게 진행되는 것 등이 순리이다.
《정전》
‘천지팔도’의 ‘순리자연(順理自然)한 도’에서는 자연과 우주가
언제나 순리로써 운행되므로 만물의 생육되는 큰 덕이 나타난다고 했다.
(2) 도리에 순종하고 이치에 따르는 것.
생로병사의 이치나 길흉화복에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것이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리 [順理] (원불교대사전,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성주괴공(成住壞空)은
불교의 4겁으로,
세계가 성립되는 지극히 긴 기간인 성겁(成劫),
머무르는 기간인 주겁(住劫), 파괴되어 가는 기간인 괴겁(壞劫),
파괴되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지속되는 기간인 공겁(空劫)을 말함.
 
 한비자

韓非(한비)가 상상하며 적어놓았던,
<韓非子(한비자)>에 나와 있는 글 중에서 본 逆鱗(역린)!
그 누구든
順理(순리)만 잘 지키며 살아간다면!
용의 목에 붙어 있는 逆鱗(역린)은 건드리지 않을 것 아닌가?
지금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용이다.
그 용의 목에 붙어있는 역린을 건드린 자!
어찌 편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각자 서로서로 깊이 있게 생각하고 행동해가야 할 때가 아닌가?

대한민국의 지도 &#x2014; 스톡 사진 #881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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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5일 화요일

자유한국당은 왜 건국절을 원하나?

 


1919년 건국과 1948년 건국의 차이
 
 
두산백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두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다.
6월 11일 임시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한편 내각을 개편하였다.
9월 6일에는 *노령정부와 통합하고
제1차 개헌을 거쳐 대통령중심제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1926년 9월 임시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원제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의원내각제가 정부형태의 주류를 이루었다.
 
1945년 8·15광복까지
상하이(1919)·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1937]·
광저우[廣州,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1939]·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한민국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두산백과)
 

*한성임시정부
상해 임시정부에 통합한 시기를
두산백과는 1919년 4월13일로 했는데,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행정분야>는
1919년 9월 6일에 3개 단체가 통합된 것으로 나온다.
단언컨대 전체 통합은 9월6일이지만,
일부의 한성임시정부 요원들이 1919년 4월 13일에
통합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다.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
1919년 2월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한 임시정부로,
대통령에 손병희, 부통령에 박영효, 국무총리에 이승만, 군무총장(軍務總長)에
이동휘 등 임시정부 체제의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가 설립됐으나,
1919년 9월6일 한성임시정부(서울주재 1919년 4월 23일 설립)와 함께
상해임시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통합됨.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왜 상하이에 세웠을까?
 
 
노령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 외에도 7개 임시정부가 있었으나
그 규모가 확실치 않았으며,
결국에는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교통 및 외교활동이 편리한 상해임시정부로
몰려들고 말았다.
상해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3일 탄생하면서 최초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쓰기 시작했기에
4월 13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여타 역사가들은 한성임시정부가 설립된 4월 23일을 쓰기도 하고,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가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된 9월 6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로 인정하고 있는 역사가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선포해서 지금까지 이르게 한
상해임시정부 수립일(4월13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해야 이론이 맞지 않은가?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절이 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물 마시는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류석춘은
“(1948년 건국을)너무 당연한 일을
牽强附會(견강부회)해서 1919년을 건국일로 건국해로 삼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큰 억지를 쓰고 있다.
그는
대통령의 기수에 대한 것까지 들춰가며 억지도 쓴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으로 1948년부터 시작된 것을 논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임정 당시에는
집정관총재 제도를 들여왔으나,
이승만이 영어해석에서 'President(대통령)'으로 쓰면서
대통령제(1919~1925)부터 시작해서 내각책임제(1925~1927)를 거쳐,
집단지도체제(국무위원제;1927~1940)로 이어갔으며,
해방직전 주석제(1940~!945)까지 이어왔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하고,
건국 과도기의 헌법개헌을 5번에 걸치며 매끄럽지 않았을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가 아닐까싶어진다.
더욱이
해방이 돼 처음 시작한 정부이지만
이승만의 고집에 따라 대통령제를 처음 시작하면서
자신이 독립을 주도한 것처럼 과장된 사고
- 독립이 아닌 타국의 세력에 의한 해방인 것을 혼돈하게 만든 사고 - 와
망상에 치우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하며 스스로를 제1이라는 자세를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렇게도 독재자 이승만을 국부로 삼고 싶다는 말인가?
이게
대한민국 안에 기생하고 있는 가짜 보수주의자들의 극우세력?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

JTBC 오대영 기자는
“이게 지금으로부터 98년 전에 작성된 1919년의 건국 통보문입니다.
참고로 출처는 우당기념관입니다.
당시에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이 일왕에게 보낸 문건인데요.
대한민국이 독립국가임을 일본에게 알리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임을
공식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약상의 약속들은
무효로 간주될 것이다.’이렇게 얘기하고 있고요.
"1919년 4월 23일 한국이 완전히 조직된 자주통치국가가 됐음을 당신,
그러니까 일왕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열흘 만에 4500여부 팔려나간 '금서'

“1919년의 또 다른 문건도 있습니다.
일단 이 기록부터 보시죠.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임시 의정원이 열렸는데요.”
“당시에 첫 회기를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원년, 1919년으로 뚜렷하게 밝혔던 내용입니다.”
 
“이것 외에도 광복 이후의 자료도 있습니다.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는데,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이렇게 밝혔습니다.”
“1948년을 대한민국이 30년 된 해로 인식을 한 겁니다.
같은 해 9월 1일에는 최초의 관보가 나왔습니다.”
“보시다시피 발행 일자가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입니다.
역시 1919년을 원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대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독립운동유적 클러스터도 조성

앵커는 자유한국당의 억지주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시키고 있다.
“사실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승만 국부론을 함께 주장을 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19년을 계속해서 (건국은 1919년을) 말해 왔던 거군요.
 
오대영 기자는 계속해서
“가장 명백한 건 그리고 대한민국 제헌 헌법을 보면 전문에 나와 있습니다.”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
이렇게 명백하게 밝혀뒀는데요.
기미년인 1919년을 대한민국의 건립의 해로,
1948년을 재건의 해로 말하고 있습니다.”
 
뚜렷한 근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48년을 건국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오대영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
“그 주장도 근거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가 국가의 3요소를 다 갖추지 못해서
그래서 실효적으로 지배를 하지 못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국민, 영토 그리고 주권을 모두 갖춰야 국가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건데,
하지만 국제법 전문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독립을 선언하고 투쟁을 했던 점,
또 자체적으로 정통성을 스스로 밝혔던 점.
이것들로 볼 때 3요소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분석을 했습니다.
들어보시죠.”
 
&quot;오늘은 조국 독립운동에 앞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입니다&quot;

오승진 단국대 국재법 교수는
“(국가의 3요소가)
모두 일시적으로 처음부터 완전히 갖추어진 경우는 드물고요.
식민지배에서부터 독립하는 경우에는
정부의 수립을 선포하고
무장투쟁을 통해서 독립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충분히 국제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충분히 국제법적 의미가 있다라는 건데,
실제로 미국은 영국의 지배로 영토와 주권이 없었던
1776년에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런 국기까지 내세웠죠.
7년 뒤에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을 받았고요.
그리고 다시 6년 뒤에 정부가 수립이 됐고 그때 초대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미국은 독립선언일을 건국시점으로 삼고 있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결국 국제법으로 인정되느냐에 앞서서
국내적 또 헌법적으로 정통성이 있느냐를 봐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결론입니다.”
 
류석춘 위원장에게 임명장 수여하는 홍준표

국가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없지 않을 것?
하지만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사고에 비춰보았을 때도 그렇고,
전 대통령 이승만의 사고에 비춰보았을 때도 건국년도는 1919년!
굳이 건국절을 두려고 하는
- 광복절 외에 굳이 건국절이라는 것을 두어
일제강점기의 치욕의 역사를 희석시키려는 의지와 지우려고 하는 - 자세!
즉 역사를 왜곡시키고자 잔머리를 쓰는
극우적인 인물들의 잔꾀가 무섭다는 것이다.
극우세력들의 과격한 생각
牽强附會(견강부회)
- 아주 다른 이론을 자신의 주장에 근거로 쓰기 위해 강제로 부합시키며
옳다고 우기는 작태 - 는 자유한국당 같은 이들이 할 소리인가?
그 스스로가 그런 짓을 하면서!
 
누가 저런 이들로 만들고 말았는가?
억지를 쓸 것을 써야 할 것 아닌가?
국가와 국민을 저울질하며 제 살 길만 찾아 나서겠다는 것인가?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를 비롯해서 혁신위원장 류석춘!
민족의 최악인 이완용과 견줄만하지 않을지?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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