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금요일

안희정에게 검찰 4년 구형 적절한가?



안희정 威力(위력)의 성폭력 4년 구형 너무 약해!


모든 행동이 능동적이게 만들어 준 조물주에게 남성들은 고마워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이는 그 때문에 항상 고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면 남성으로써 최선을 다해 能動的(능동적)이고 自發的(자발적)으로 사회에 獻身(헌신)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좋고 세상에서 龜鑑(귀감)의 標本(표본)이 될 것으로 본다.
남을 돕고 남을 위해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도와주고 보살펴 줘 보았던 그 사람만이 뿌듯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싶다.
모든 일에 능동적인 그런 偉力(위력)을 조물주가 주었기 때문에 남성들이 앞서 가는 것을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남녀 할 것 없이 평등한 인권과 편견 없는 인격을 갖춰주기 위해 다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해방되지 않는 것은 조물주의 근본사상이 남성에게 더 많은 능동성을 준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남녀 동등한 인권과 인격의 권능을 동시에 인정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성생활이다.
여성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남성이 싫어하면 남녀 성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은 首肯(수긍)하고 있다.
남성의 威力(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다.
그 偉力(위력)을 신성하게 잘 쓰면 세상은 평안 할 것인데 남성의 성욕은 제멋대로 터져버리려고 하니 이 또한 위험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고로 法治國家(법치국가)가 아닌 시대에서는 힘이 센 남성이 수많은 여성을 籠絡(농락)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마치 동물의 세계처럼!
아니 동물의 세계는 인간보단 別個(별개()을 이해하며 산다고 한다.
돌물은 오직 同種(동종)의 번식만을 위한 성생활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거 정치에서 여성이 최고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시대는 남성 치하에 비한다면 아주 짤막한 세월이 있었을 뿐 모든 시대의 정치를 남성들이 주물러 온 것도 성적 욕구와 지배력 물욕과도 거의 ()을 같이 하고 있었다.
결국 낭성들이 제멋대로 모든 법규를 정하고 만들어 그 시대에 맞는 제도와 문화를 이끌어오고 있었던 셈이다.
사회 基盤(기반)의 문화 형성에 따라 법규를 정하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족장들의 회의에서 결정하여 이끌었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남성에 맞춰 왔으니 세상이 수없이 바뀌어 지금껏 왔어도 男性(남성優越(우월)주의 때문에 여성들이 男性(남성嫌惡(혐오)주의를 내세우는 것 아닌가?
그건 종교에서 먼저 수없이 널려 있다.
오죽하면 WOMAD(워마드)가 가톨릭 성체를 불태우기도 하며-그들이 결코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종교에 대한 反抗(반항)으로 치닫고 있을 것인가?
'가슴은 우리 무기'를 외치는 FEMEN(페멘)이라는 단체가 가톨릭을 상대로 여성을 혐오한다며 웃옷을 벗어던지며 난동을 부릴 것인가?
여성들이 오죽하면 말도 안 되는 언행을 보일까만,
그동안 지구촌을 장악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기에 남성 편견에 따라 지나친 치우침이 원인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은 변해가지만 근본적인 성질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린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은 물이고 불은 불이지 불이 물이 되지 않고 물이 불로 변할 수 없는 성질과 다르지 않는 ()에 대해 억지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과거처럼 전쟁으로 얼룩지고 말 것이다.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성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천했다고 말하지만 그 또한 남성 위주로 만들어져 왔다.
결국 남성들의 그 능동적인 행태와 誠力(성력)을 우선하여 만들어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사회는 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남성우위로 하여 편견적인 법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편견을 뜯어고치자고 한다면 여성들이 정치 참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입법부에 여성 의원이 소수인데 여성적 법률이 형성될 수 있겠는가?
자식을 낳고 가사에 더 치우쳐야 한다지만 이젠 세상을 균등하게 하려면 법의 骨格(골격)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좀 더 정확한 法治(법치)로 변해가야 한다는 말이다.
色魔(색마중의 색마였던 朴正熙(박정희시대 같은 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말만 법치주의라고 했던 그런 시대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법치국가가 아닌 때는 위력이 큰 사람이 많은 여성을 차지하고 살았다.
그땐 성문화도 없던 때다.
권력이 센 왕은 노골적으로 거대한 궁전을 짓고 수많은 여성을 울렸다.
현대에 와서 박정희는 국민의 눈을 피하기 위해 청와대 근처에 '안가'라는 작은 궁전을 마련하여 200여 여성을 울린 것이다.
언론에서 언급한 여성 숫자가 200여 명이지 그 숫자의 정확성은 박정희 그 색마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威力(위력)이 지금껏 지탱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에게!


박정희의 이름 두 자 '정희'를 뒤집어 지은 안 희정(53)도 그 이름만큼 정욕이 좋았던가?
여러 여성 중 오직 한 여성(김지은, 33)만 괴로움을 씹고 세상 눈치를 보며 절규하고 있다.
?
안희정의 성폭력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웃기는 것이 여성도 여성 편에 서지 않고 김지은 만 욕하고 있는 여성도 많다고 한다.
김지은이 不倫(불륜)의 사랑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김지은은 안희정의 권력에 의한 위력에 33세의 처녀가 53세의 유부남에게 짓밟힌 것인데도 안희정의 부인 쪽만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게다.
결국 27일 결심을 하고 김지은이 법정에 나와 피해자 최후 진술을 45분 동안하며 嗚咽(오열)했다는 뉴스다.

 
33세의 여성이 아버지뻘의 위력자에게 영혼까지 빼앗겼는데 서럽지 않을 여성이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상을 너무 잘 하는 게 문제 아니던가?
김지은이 좋아 그렇게 했다는 게다.
안희정의 부인도 그런 식으로 증언했다.
남편이 형무소에 들어가면 그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될 것을 감안한 때문일까?
애들 아버지 구출 작전을 세우면서 한 여성이 한 여성의 아픔을 꽃뱀으로만 몰아갈 형국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易地思之(역지사지~처리를 서로 바꿔 생각함)할 여지가 없는 여인?
안희정은 김지은의 말처럼 '안희정은 괴물'인 것이다.


그 怪物(괴물)을 처단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지금도 숨어 숨 쉬고 있는 괴물들은 수없이 터져 나올 것이다.
검찰은 안희정에게 4년 懲役刑(징역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건 너무 초라한 구형 같다
김지은이 죽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검찰이 4년만 구형?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다.
하지만 법규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입법부가 법규를 고치지 않는데 검찰이 더 많은 형량을 매길 것인가?
안희정에게 4년 구형은 정말 적은 형량이다.
검찰 구형이 그렇다면 법정 宣告(선고)가 더 올라갈 확률은 아주 극소수 일 건데 이것으로 만족하라고?
안희정은 정말 잘 못한 사람인데 검찰조차 봐주고 있다는 심정이다.
ME TOO?
KBS조차 미투’ 6개월정말로 변한 게 있나요?”라고 묻는 보도를 하고 있다.
조금은 변한 것 같은데 여전하다는 보도 내용이다.
안희정은 더 이상 지도자의 자격은 없다.
그의 지도력은 크게 상실됐다.
대권어림도 없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까워 하지만 그는 대권을 이을 자격이 없는 도덕적으로 파괴된 인물이다.
박정희와 다를 수 없는 괴물이 大權(대권)을 꿰찬다?
끔직한 생각을 하고 있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섬세하고 능동적이며 희생정신이 투철하여 사회에 헌신할 인물은 수없이 많다고 본다.
힘없는 한 여성을 비서라는 직책에 앉혀 줘놓고 그 영혼을 깡그리 짓밟은 위인을 누가 믿을 것인가!
박정희 시대는 여성에 대해서는 법치가 아닌 無法天地(무법천지)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그 때와 조금은 다르지 않은가?
신성하게 부인과 성생활을 하지 않고 불륜이든 성폭행이든 제멋대로 남성의 爲力(위력)만을 내세우는 괴물이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인가?
스스로를 자제하는 것도 忍耐(인내)의 바탕 아닌가?


세상은 크게 변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본다.
다음 달 재판에서 어떤 선고를 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검찰의 4년 구형만 볼 때 빈약하기 그지없는 罰則(벌칙)이다.
남성위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를 이해시킬 수 있는 사회가 돼야 세상은 조용해지지 않을까?
남성의 能動性(능동성)은 오직 사회에 헌신하는 爲力(위력)에 쓸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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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6일 목요일

박정희와 연계된 기무사란?



대한민국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한민국 정치를 반세기 후퇴시킨 책임을 묻는다면 그대는 누구를 지목할 것인가?
그 답은 쉽게 말해 독재정치를 한 정치꾼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으로 가장 먼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간단하다.
헌법 제 1조를 정확하게 찾아먹지 못한 사람들 책임 아닌가싶어진다.
헌법은 정치꾼들이 만들어 놓고 정치꾼들이 생색을 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 때문이다.
그렇게 생색을 낼 수 있게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없지 않았다.
대한민국 독재정치의 旗手(기수)라면 이승만이 아닌 박정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은 정치똘마니들이 그들의 이득을 위해 이승만을 앞세워 놓고 政治(정치搾取(착취)를 위해 이승만 앞에서 갖은 애교를 떨며 한 자리를 노린 비굴한 독재라고 한다면,
박정희는 露骨的(노골적)으로 최전방에 있어야 할 戰車(전차)부대까지 광화문 번화가에 옮겨놓고 국민을 감시하며 억압을 했으니 입은 먹기만 하는데 쓸 수 있었지 말을 할 수 없었으니 독재자의 기수는 단연코 박정희인 것이다.
원래 독재자는 주위 동료들까지 의심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린 잘 안다.
박정희도 그랬다.
자신을 잘 따르지 않을 것 같으면 즉각 처단해서 閒職(한직)으로 보내든지 없애버리곤 했다.
북한 김일성만 정치의 적을 肅淸(숙청)을 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도 다르지 않았다.


독재자들은 두 다리를 잘 뻗고 잘 수 없는 인물이다.
언제 어떻게 누가 총과 칼을 들이댈지 모르니 두 눈은 四隣(사린=사방의 이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항상 반짝거린다.
박정희를 만난 사람들 중 그 두 눈이 빛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머리가 明晳(명석)하여 눈빛이 청명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결국 자신이 없으면 대한민국에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심어주기 시작한다.
북한이 선전선동대를 이용하여 김일성 자신을 위해 충성하기를 바랐던 것 같이 박정희도 다를 바 없이 不撤晝夜(불철주야국민들 교육을 위해 새마을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은 북한과 차원을 달리하여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모할 정도로 나빴다고만 할 수 없게 철저한 검증을 걸쳐 정부가 국민을 감싸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차원을 달리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새마을 운동은 북한의 샛별보기운동과 흡사했고 북한 샛별보기운동이란 천리마 운동에서 그 말의 유래를 따온 것에다 박정희 판으로 각색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배고픈 시절인지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새마을 운동에 아주 잘 따라갔다.
결국 박정희 독재시대 정책에 국민들이 호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 대가는 적지 않았지만 박정희는 그 재력을 재벌들과 나누는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한 기업을 성장시켜 국가기업으로 하던 북한 공산당 경제와 별 차이는 없지만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입각한 경제라고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그 결과 가장 두드러진 기업이 삼성그룹인 것이다.
물론 삼성도 박정희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만-자유민주주의 경제 제도로 일으킨 기업적인 법리를 이용하여 빠져나올 틈을 삼성은 스스로 만들어 왔지만-강력한 독재력에 항거하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삼성 이병철도 큰 아들 이맹희를 뒤로 미루고 이건희에게 재력을 더 넘겨주었지 않았던가?
알고 보면 이맹희가 박정희 보단 국민의 편에 붙었는지 모른다.
이건희는 국가권력과 한 통속이 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은 이제 三尺童子(삼척동자)들도 머리를 끄덕이지 않는가?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이해한다.
그래서 아쉬우면 돈을 벌라고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돈은 알 까는 재주가 있는지라 아무에게나 그런 혜택을 넘겨주지 않는다.
두뇌도 있어야지만 어느 정도 재력의 뒷받침이 없어가지곤 어림도 없다.
물론 타고난 처세술도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때는 재벌들에게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경향신문 김용민 그림마당은 대한민국 주권은 기무사와 대법관에 있다는 그림으로 풍자하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1991년 노태우 정권이 1977년 박정희 독재시절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불리던 군사단체의 이름을 바꿔 부른 것이 지금껏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원래는 해방이후 미군정부터 내려온 역사적인 단체이다.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각 군대의 대대급 이상이면 그들이 지휘관들의 신상을 주물럭거리게 했다.
그 세력이 가장 왕성할 때는 박정희 독재시절이다.
박정희 그가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켰으니 군대 조직을 감시시켰던 것이다.
세상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만들어 논 박정희 아닌가?
그가 군대조직을 개인 사조직처럼 강력하게 만들어 논 단체 기무사는 박정희 독재자를 옹호하기 위한 국군보안사로 박정희가 義士(의사)김재규의 총탄에 죽을 당시 전두환이 그 사령관에 있었으니 전두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만 하지 않은가?


기무사 전의 명칭인 보안사 의 권력은 대단했다.
그 역사를 잠시 들춰보면
1968년에는 육군보안사령부
1960년 4·19혁명 이후 육군방첩부대로 이름을 바꿔지며,
그 이전에는
1950년 10월에는 제2(방첩과)를 정보국에서 분리하여,
육군본부 직할부대로서 특무부대(Special Operation Unit) 본부가 설치한다.
이 군사 단체는
1948년 5월 27일 조선경비대총사령부 정보처의 특별조사과(Special Investigation Section)로 창설되어이후 특별정보대를 거쳐방첩대로 개편되었고나중에는 특무대라는 명칭이었던 기무사!
기무사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박정희 독재시대인 것이다.


기무사의 원천은
이승만 시절 정보와 첩보를 다루던 부대를 박정희는 자신의 榮達(영달)을 영원히 누리기 위해 육군보안사령부로 명칭을 개정해 육군에서 지휘권의 힘을 죽이기 위해 지휘자 감시체제를 둔 박정희의 직속부하들이 그 역사의 중간에 있었다.
그 체제가 아직도 살아있으니 박정희가 만든 헌법과 그에 따른 부수의 법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박정희 적폐는 영원한 것?
박정희가 아직도 대한민국 현충원에 조용히 잘 누워있는 것도 그가 심어놓은 그 씨앗들이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 세력의 가장 큰 부분인 자유한국당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어찌 적폐척결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은 제 밥은 찾아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 아닌가?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우린 이제껏 정치꾼들의 정치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독재자만 욕할 것만은 아닌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더 새롭게 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영원한 민주주의의 羨望(선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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