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6일 목요일

박정희와 연계된 기무사란?



대한민국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한민국 정치를 반세기 후퇴시킨 책임을 묻는다면 그대는 누구를 지목할 것인가?
그 답은 쉽게 말해 독재정치를 한 정치꾼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으로 가장 먼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간단하다.
헌법 제 1조를 정확하게 찾아먹지 못한 사람들 책임 아닌가싶어진다.
헌법은 정치꾼들이 만들어 놓고 정치꾼들이 생색을 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 때문이다.
그렇게 생색을 낼 수 있게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없지 않았다.
대한민국 독재정치의 旗手(기수)라면 이승만이 아닌 박정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은 정치똘마니들이 그들의 이득을 위해 이승만을 앞세워 놓고 政治(정치搾取(착취)를 위해 이승만 앞에서 갖은 애교를 떨며 한 자리를 노린 비굴한 독재라고 한다면,
박정희는 露骨的(노골적)으로 최전방에 있어야 할 戰車(전차)부대까지 광화문 번화가에 옮겨놓고 국민을 감시하며 억압을 했으니 입은 먹기만 하는데 쓸 수 있었지 말을 할 수 없었으니 독재자의 기수는 단연코 박정희인 것이다.
원래 독재자는 주위 동료들까지 의심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린 잘 안다.
박정희도 그랬다.
자신을 잘 따르지 않을 것 같으면 즉각 처단해서 閒職(한직)으로 보내든지 없애버리곤 했다.
북한 김일성만 정치의 적을 肅淸(숙청)을 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도 다르지 않았다.


독재자들은 두 다리를 잘 뻗고 잘 수 없는 인물이다.
언제 어떻게 누가 총과 칼을 들이댈지 모르니 두 눈은 四隣(사린=사방의 이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항상 반짝거린다.
박정희를 만난 사람들 중 그 두 눈이 빛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머리가 明晳(명석)하여 눈빛이 청명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결국 자신이 없으면 대한민국에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심어주기 시작한다.
북한이 선전선동대를 이용하여 김일성 자신을 위해 충성하기를 바랐던 것 같이 박정희도 다를 바 없이 不撤晝夜(불철주야국민들 교육을 위해 새마을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은 북한과 차원을 달리하여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모할 정도로 나빴다고만 할 수 없게 철저한 검증을 걸쳐 정부가 국민을 감싸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차원을 달리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새마을 운동은 북한의 샛별보기운동과 흡사했고 북한 샛별보기운동이란 천리마 운동에서 그 말의 유래를 따온 것에다 박정희 판으로 각색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배고픈 시절인지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새마을 운동에 아주 잘 따라갔다.
결국 박정희 독재시대 정책에 국민들이 호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 대가는 적지 않았지만 박정희는 그 재력을 재벌들과 나누는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한 기업을 성장시켜 국가기업으로 하던 북한 공산당 경제와 별 차이는 없지만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입각한 경제라고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그 결과 가장 두드러진 기업이 삼성그룹인 것이다.
물론 삼성도 박정희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만-자유민주주의 경제 제도로 일으킨 기업적인 법리를 이용하여 빠져나올 틈을 삼성은 스스로 만들어 왔지만-강력한 독재력에 항거하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삼성 이병철도 큰 아들 이맹희를 뒤로 미루고 이건희에게 재력을 더 넘겨주었지 않았던가?
알고 보면 이맹희가 박정희 보단 국민의 편에 붙었는지 모른다.
이건희는 국가권력과 한 통속이 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은 이제 三尺童子(삼척동자)들도 머리를 끄덕이지 않는가?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이해한다.
그래서 아쉬우면 돈을 벌라고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돈은 알 까는 재주가 있는지라 아무에게나 그런 혜택을 넘겨주지 않는다.
두뇌도 있어야지만 어느 정도 재력의 뒷받침이 없어가지곤 어림도 없다.
물론 타고난 처세술도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때는 재벌들에게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경향신문 김용민 그림마당은 대한민국 주권은 기무사와 대법관에 있다는 그림으로 풍자하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1991년 노태우 정권이 1977년 박정희 독재시절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불리던 군사단체의 이름을 바꿔 부른 것이 지금껏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원래는 해방이후 미군정부터 내려온 역사적인 단체이다.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각 군대의 대대급 이상이면 그들이 지휘관들의 신상을 주물럭거리게 했다.
그 세력이 가장 왕성할 때는 박정희 독재시절이다.
박정희 그가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켰으니 군대 조직을 감시시켰던 것이다.
세상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만들어 논 박정희 아닌가?
그가 군대조직을 개인 사조직처럼 강력하게 만들어 논 단체 기무사는 박정희 독재자를 옹호하기 위한 국군보안사로 박정희가 義士(의사)김재규의 총탄에 죽을 당시 전두환이 그 사령관에 있었으니 전두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만 하지 않은가?


기무사 전의 명칭인 보안사 의 권력은 대단했다.
그 역사를 잠시 들춰보면
1968년에는 육군보안사령부
1960년 4·19혁명 이후 육군방첩부대로 이름을 바꿔지며,
그 이전에는
1950년 10월에는 제2(방첩과)를 정보국에서 분리하여,
육군본부 직할부대로서 특무부대(Special Operation Unit) 본부가 설치한다.
이 군사 단체는
1948년 5월 27일 조선경비대총사령부 정보처의 특별조사과(Special Investigation Section)로 창설되어이후 특별정보대를 거쳐방첩대로 개편되었고나중에는 특무대라는 명칭이었던 기무사!
기무사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박정희 독재시대인 것이다.


기무사의 원천은
이승만 시절 정보와 첩보를 다루던 부대를 박정희는 자신의 榮達(영달)을 영원히 누리기 위해 육군보안사령부로 명칭을 개정해 육군에서 지휘권의 힘을 죽이기 위해 지휘자 감시체제를 둔 박정희의 직속부하들이 그 역사의 중간에 있었다.
그 체제가 아직도 살아있으니 박정희가 만든 헌법과 그에 따른 부수의 법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박정희 적폐는 영원한 것?
박정희가 아직도 대한민국 현충원에 조용히 잘 누워있는 것도 그가 심어놓은 그 씨앗들이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 세력의 가장 큰 부분인 자유한국당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어찌 적폐척결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은 제 밥은 찾아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 아닌가?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우린 이제껏 정치꾼들의 정치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독재자만 욕할 것만은 아닌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더 새롭게 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영원한 민주주의의 羨望(선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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