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2일 월요일

숙명여고 쌍둥이 부녀와 전두환



숙명여고 쌍둥이 부녀의 否定(부정)은 언제 끝날지!

2018년 7월 숙명여자고등학교(이하 숙명여고)에서 시험지 유출에 대한 기사가 올라올 때부터 과거 정권이 내세운 교교 내신 성적을 대학입시에 반영한 그 자체가 문제였다는 警鐘(경종)이 울리고 있음을 많은 국민은 눈치체고 있지 않았나?
내신에 따라 대학은 수시입학이 가능해졌고 부정의 싹이 트기 시작했던 것 아닌가?
수시입학에 대해 부정하는 여론도 깊었지만 문교부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그 제도도 다시 들여다 볼 여지를 만든 숙명여고 쌍둥이 아버지(53) 시험문제 유출은 차라리 터질 것이 터진 것 같은 느낌이다.
자그마치 74일 간의 긴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사실의 실마리를 힘들게 찾았다는 것도 미지근한 경찰수사의 斷面(단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쌍둥이 아버지의 학문에 대한 歪曲(왜곡)된 가치관이 자신까지 囹圄(영어)의 몸이 된 것도 모자라 쌍둥이를 퇴학까지 시키게 만든 것 아닌가!
굳이 좋은 대학만 선호하는 사회(人性(인성)을 팽개치면서까지 학교 간판만을 선호하는 사회)의 祭物(제물)이 돼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을 졸업해야만 인정받는 대한민국 사회도 문제는 더 큰 문제였다.
결국 대학교를 진학한다는 말은 간판 따기로 말을 바꾸는 사회가 되고 말았던 것만 봐도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강했다기보다 출세만을 위한 욕심을 배우는 교육의 시장판이 아니었나싶은 것이 서글퍼진다.
제발 교육부는 100년 大計(대계)의 1,000년을 향하는 교육의 守護(수호)자가 구실 좀 하기 바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입맛에 맞출 생각하지 말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국가 교육부가 되길 바란다.

 ìš©ì‚°êµ¬, 숙명여대 앞 ‘순헌황귀비길’ 명예도로명 부여

1960년대 우리 세대 당시 숙명여고는 꾀나 괜찮은 학교로 알려졌다.
순위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지만 세상은 스스로 순서를 정하기 때문에 하는 말일 뿐이다.
경기여고(공립)와 이화여고(사립)를 꼽고 난 다음 숙명여고(사립)를 꼽을 정도로 순탄한 교육의 전당이었다고 할까?
교복 자체도 경기여고는 조금이나마 여성의 허리를 기준으로 했고 이화는 배꽃처럼 화사함을 상징 했다면 숙명은 얌전하고 순수하여 貞淑(정숙)해 보였던 것 같다.
해마다 그 형태가 바뀌지는 않지만 조금씩 변형되고 있었으니 이 사람 기억이 확실하다고 말은 않겠다.
학교명 淑明(숙명)처럼 맑고 밝음을 강조한 때문일까만,
숙명이라는 단어는 개교(1906년 5월 22일 당시는 명신여학교이후 6년 가까이 지났을 때 1912년 1월에 숙명학원이 설립되면서 그 단어가 들어갔고,
1951년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6년제 숙명여자중학교에서 분리)시켰다고 한다.
대한제국 高宗(고종)皇帝(황제)의 貴妃(귀비)인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엄씨가 평민가문에서 태어난 때문에 皇后(황후)의 ()까지 오르지 못했던 것에 자책이라도 했는지 엄씨는 교육열이 강해 숙명여학교(숙명여자대학교 포함)는 물론 진명여학교와 양정의숙(양정중고등학교)의 설립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도 후원금을 보냈다고 위키백과는 적고 있다.
英親王(영친왕)의 어머니이기도 한 엄씨는 고종의 寵愛(총애)를 받아 乙未事變(을미사변)으로 明成皇后(명성황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따로 황후를 맞이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들 영친왕을 일본에 볼모처럼 보내놓고 후학들에게 학문을 배우게 했던 것은 나라의 인재가 없음을 미리 터득한 순수한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특히 여성들에게 신문명을 배우게 하기 위해 애쓴 순헌황귀비의 정성은 갸륵하다 할 것이다.

경찰 "숙명여고 쌍둥이 5차례 문제 유출"

숙명여고의 역사에서 강남권이 발달하자
1981년 3월 강남구 도곡동 91번지 현 부지로 교사 이전하여 새 시대를 열고 있기 전까지는 명문 고등학교답게 이어오지 않았을까싶다.
하지만 세월에 따라 사상까지 급변했을까?
쌍둥이 자매 사건에서 교장과 교감까지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 아닌가!
굳이 사법부 재판까지 해야 할 것인가?
쌍둥이 아버지와 자매는 지금껏 시험지 유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쌍둥이 자매의 학교 시험 점수는 “0”점 처리와 함께 퇴학의 징계처리 되지만 아버지는 재판장에서 결론을 내고 말겠다고 한다.
고로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은 아직 종결된 상태가 아닌 것이다.
이런 때는 교육부의 판단이 시급하다 할 것으로 본다.
학교 내신 성적을 굳이 대학입시의 한 축으로 할 것인가?
대학 당국의 참고로만 삼게 할 것인가?
국민들이 크게 요구하는 것은 폐지다.

2019학년도 수능일 날짜 16일 수능 시간표, 준비물, 유의사항, 수능 도시락

대학수학능력시험만이라도 나누어 정성스럽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시급하지 않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걸 보게 하면서 왜 내신에 매달리게 하여 비굴한 인간이 나오게 하는 것인가?
12.12군사반란의 魁首(괴수전두환 정권이 1981년부터 교교 내신성적이 대학입시에 반영케 한 이유는 간단하지만 증거는 없으니 입을 봉할 수밖에 없다.
독재자들은 자식들까지 독재의 혜택을 보았으니 말해 뭘 할까?
5.16군사쿠데타의 首魁(수괴박정희 독재자는 그 아들을 위해 뺑뺑이 중학교 입시를 만들었다면 전두환은 고교 내신성적을 왜 반영했을 것인가?
언론은 대학입시가 없어지고 과외가 근절되는 것으로 도배를 했다.
하지만 그해뿐이었고 2년이 지난 다음부터 한원 가는 강남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뺑뺑이 고등학교가 등장하고 강북에 있는 명문고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게 했다.
자연 강남 8학군에는 과거 유명 고교들이 자리를 잡게 됐고 강남은 아파트를 증축하면서 강남의 집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고 말았다.
독재자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하지 않나?
고로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경기도 광주 고등 내신 절대평가 수학학원 수학과외 수학은꼼수다

내신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 따지기만 30여 년을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그 제도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것이 웃기지 않나?
금년에만
7월 10일 서울 강북 자율형사립고 문제유출에 아어
13일 광주 사립고
15일 부산 특목고
24일 숙명여고
10월 12일 목포 사립고 등이 도마에 올라있는 상태이다.
물론 과거 정권에서는 언론이 눈을 감아주었는지 권력이 입을 막았는지 올해처럼 요란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따금 언론에 올라 국민의 혀를 차게 했다.
학문은 실력 대 실력의 善意(선의)의 경쟁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 대학교는 권력과 금전에 무릎을 꿇고 그 자제들을 받아들이며 학생들의 嚬蹙(빈축)을 사게 했는데,
작금의 시대에는 전 국민의 눈살까지 찌푸리게 하는 것은 문명이 그만큼 발달한 때문이다.
문교부는 피가 맑은 학생들까지 더럽게 변하게 하지 말고 맑고 깨끗한 정의의 사회가 될 수 있게 하루 빨리 정책을 바꿔야 할 것이다.
문교부가 정책을 빨리 바꾸면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사건 같은 문제유출에 대해 쉽게 머리를 숙이고 인정할 것 아닌가!
시험문제는 국가차원에서 아주 엄밀히 진행하는 수능이 나름 인정받고 있지 않나?
모든 것 다 평준화돼야 한다.



원문 보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5203&cid=43667&categoryId=43667
https://namu.wiki/w/%EC%88%99%EB%AA%85%EC%97%AC%EC%9E%90%EA%B3%A0%EB%93%B1%ED%95%99%EA%B5%90
https://news.v.daum.net/v/20181112201500248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22&aid=0003318074&date=20181112&type=1&rankingSeq=3&rankingSectionId=10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52&aid=0001215677
https://pictoman743.blog.me/220505573924
http://www.ohmynews.com/NWS_Web/Tenman/report_last.aspx?CNTN_CD=A0002360104&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2018년 11월 11일 일요일

BTS 지민 군 원폭 장면 T의 원인은?



방탄소년단 지민의 T셔츠를 탓하기 전 일본은 반성해야!

1941년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미국도 난감하게 만든 태평양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은 일본에 뒤이어[人類(인류)滅亡(멸망)을 위해 원자탄 개발은 일본이 세계 최초로 착수함]원자탄을 먼저 성공시킨다.
미국은 원자탄실험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세계최초로 투하시키고 만다.
그 위력이 얼마나 될지 가늠이나 했을 것인가?
그 장면을 사진까지 찍어둔다.
일본은 그때까지도 帝國主義(제국주의)적 思考(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戰爭(전쟁)의 미치광이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3일 뒤 미국은 나가사키에 또 한 방을 투하하고 만다.
상공에서 찍은 사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건물이 파괴된 것만 봐도 잔혹상을 알았으련만 일본인들의 전쟁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쐬기를 박은 나가사키 원자탄 투하는 일본 戰爭(전쟁)狂信者(광신자)들에게 致命打(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작금에 와서 미국이 못된 짓을 했다고 반성을 한 것이지 그 당시에는 미국 군인들도 狂的(광적증상에 휩싸여 시행하지 않았을까싶다.


하늘은 그래도 미국이 일본을 앞질러 원자폭탄을 갖게 한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한다.
만일 일본이 원자탄을 먼저 개발하여 미국 본토에 투하를 했다면 지금쯤 세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일본민족들의 전쟁기질은 너무 잘 알지 않는가!
수많은 인류를 살해하고도 반성조차 하지 않는 그들이다.
반성은커녕 전쟁 승리에 도취돼 펄펄 뛸 민족이다.
老子(노자)께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葬事(장사)의 예절로서 대처하라.”
[戰勝 以喪禮處之(전승 이상례처지)]고 했다.
전쟁 이전에 무기를 다루지 말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으면 마음을 가다듬고 죄의식 속에서 해맑은 마음으로 무기를 잡으라 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도 관망만 하고 있었으며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무차별 공격하자 대응을 했지 않은가!
물론 미국도 제국주의 사고는 팽배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미국이 승리를 했기에 일본인들을 한반도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대한민국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세상을 잘 살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약소국을 이용해서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챙기는 끈덕진 근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대한민국은 미국으로부터 덕을 받은 것도 없지 않으니 다음 기회로 미루고 BTS[방탄소년단]과 일본에 대해 이어간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원폭 당시 상황장면이 들어간 T를 제작한 이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일본 정부가 전쟁광신에 대한 無反省(무반성)한 태도에 얼마나 厭症(염증)이 났으면 비참한 사진까지 집어넣어 사람들의 視線(시선)을 끌려고 했을까!
지난 2017년 광복절 기념으로 찍어낸 T가 얼마나 될까만,
방탄소년단의 지민 군도 Fan이 선물을 해서 받은 것이라고 한다.
2018년 3월 행사에서 단 2초 동안 그 화면이 나간 것을 일본 극우단체가 발견하여 분노한다는 뉴스다.
일본인들로 볼 때 원폭의 피해를 생각하면 영원할 것이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그들의 후손이 반성조차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상상해보건대 일본이 먼저 원자탄을 성공시켰다면 미국의 최대도시인 New York이나 首都(수도)인 Washington D. C.에 투하했을 것이라고 추측도 해본다.
일본민족의 전쟁 광적 기질을 보았을 때!
그게 섬나라 사람들의 기질인 것이다.
과거사를 보면 일본민족은 殘忍(잔인)했고 凶暴(흉포)했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치를 떨었다.


세계 2차 대전 때만 해도 중국과 소련은 미국과 친교는 좋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공산주의 국가로 바뀌어가자 동북아에 기점을 마련키 위해 일본과 한국에 미군 기지를 두려고 심혈을 기울이면서 한일조약을 성사시키려 할 때 일본 정부는 그 틈을 이용해서 청구권을 역으로 하여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인들의 재산부터 가치를 따지고 나온 위인들이었다,
미군이 일본군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것 그대로 한반도에 남게 된 것을 일본은 한반도를 개발해준 대가를 논하며 일본 정가는 들끓고 있었다.
미국이 나서서 배상은 없다고 하며 윽박지르게 한 미일관계를 이승만 정권은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의 首魁(수괴박정희를 이용해서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게 한다.
정치자금이 필요했던 박정희와 김종필은 김-오히라 메모라는 밀약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영원히 기만하면서 울리고 말았다.
무상 3억 달러를 10년 상환으로 받아낸 것이 대단한 액수라며 언론에 떠벌렸다.
자유당 이승만 시절부터 7,000만 달러만 준다고 일본이 한 것에 비하면 대단한 액수라고 할 테지!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최소한 8억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는 기획 안이 있었으니 5억 달러는 증발되고 만 셈 아닌가?
1951년부터 시작된 한일회담은 14년 간 긴 세월이 흐른 것부터 일본은 한민족을 凌蔑(능멸)하는 짓에 이골이 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그 모든 것을 감쪽같이 欺瞞(기만)하고 한일기본조약(韓日基本條約)을 1965년 6월 22일에 체결하고 만다.
어림도 없는 금액으로 국가와 국민의 권리를 일본에 헐값으로 팔아버리고 만다.

 

독도문제를 일본이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그 속내도 박정희와 김종필의 책임이 있을 것인데 일본 정부는 그 내막을 확실하게 밝히지 못하고 측면으로만 공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중앙시사매거진은 적고 있다.
독도(다케시마)에 관한 비밀협정(일명 독도밀약)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따라서 한일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解決せざるをもって解決したとみなすって條約ではれない).” 부속조항 : (1) 독도(다케시마)는 앞으로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4)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중앙시사매거진; 200704호 (2007.04.01)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각 정부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없다.

 

결국 색마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남한 땅을 가지고 일본과 弄奸(농간)을 부렸다는 결론이다.
국가 紀綱(기강)을 세운다는 말은 박정희 입으로 수없이 갈겨대고 있었지만 속내는 일본 좋은 일에 앞장을 섰기 때문에 일본 정권들이 수긍하지 않고 계속 씹고 되씹는 것이다.
국민의 公憤(공분)을 자아내게 한 박정희 정권이 있었기에 일본 정권들이 지금껏 머리를 숙이지 못하고 서로를 嫌惡(혐오)하게 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酒色(주색)에 광분한 박정희는 자신의 육신만 즐겁게 취해 있었다는 증거로 한국 국민들은 일본 국민과 모든 면에서 대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됐다.
결론은 일본인들의 반성도 할 줄 모르는 鐵面皮(철면피같은 사고가 가장 큰 문제이고,
독재자 박정희가 그 사이에 들어있어 문제를 더 키웠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을 두 번 찢기게 한 문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도 국정농단에 의해 탄핵당한 박근혜가 저지른 짓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그 아버지의 그 딸인데 아직도 철모르는 정치꾼들은 박정희와 박근혜를 찬양하기에 급급한 인물들이 국회 안에 득시글거리고 있으니 한심한 일 아닌가?


박정희 그 시대에 다른 인물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정치를 했다면 일본 정권들이 지금처럼 반항적인 태도로 한국 국민을 대할 것인가?
대통령 한 사람만 잘 들어서면 국민은 그의 동향을 살피며 그의 마음과 같이 한다는 것을 배웠지 않나?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배웠지 않나!
대한민국 현 경제상황이 굶어죽을 정도로 가난한가?
모든 국민들이 먹고는 살 수 있지 않나?
간혹 힘들게 살다 자살하는 인물들도 없지 않지만 보편적으로 먹고는 살지 않나?
시장이든 마켓에만 나가면 먹을 것 입을 것들이 산더미처럼 싸여있지 않나?
3D직업이라도 일만 하면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이 없을 진데 이것저것 가리다보면 일터를 찾지 못해 고통 속으로 헤매는 경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움직이면 밥술은 뜨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된 국가 인데 왜 경제타령만 하면서 불만만을 늘어놓고 사는 것인가?
지나친 욕심 때문 아닌가?


박정희 독재시대는 정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여건도 있었다.
직업도 다양하지 못했다.
기술을 배우고 싶어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는데 그 때가 좋았다고 하는 인물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만큼 투기를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것 때문인가?
公務(공무)적인 문제들과 규범의 범위가 제각각으로 변해 있다 보니 생활에 불편을 겪기 때문 아닌가?
질 좋은 상품들은 즐비한데 소비는 촉진이 안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 잘 갖추고 살기 때문 아닌가?
필요한 물건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이처럼 힘든 것은 18대까지 이어온 대통령들의 책임도 크다.
특히 박정희 18년의 긴 세월이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있어서 더 힘들었던 시기이다.
그 시절만 올바르게 정치가 이어지고 있었다면 한일 간이 지금처럼 혐오하지는 않을 것이다.
BTS의 지민 군이 입었다는 일본 원폭그림 T도 등장할 일 있었을까?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지만 일제 36년과 18년의 박정희 독재정권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그 두 기간이 가장 길었고 가장 극심한 타격을 받은 세월이기에 도저히 지울 수 없다.
다시는 그런 과오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국민 모두 항상 깨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