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가 (召燕歌)
꽃 향(香)이 밤그늘의 품에 안겨
끝이 없는 넓은 지역을
돌고 돌며 펼쳐와
슬픔이 남아 있는 먼 추억을 건드리면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만다.
새 주둥이 같은 입술이
빨간 열매를 쫓으려던 유혹에
너도 여인이므로
타박타박 고개 숙인 채 걸어간 것을
지금은 다시 돌아오렴
열린 창 앞을 쫓는 제비같이
너도 나를 찾아오렴.
- 김수돈 金洙敦
<경남대학보>는
“김수돈은 꽃과 술과 여인을 절절히 사랑한 낭만적 시인이다. 일제 말기와 해방기, 전쟁기로 이어지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길에서 그의 삶을 이끌어 간 것은 순정한 시와 깊은 우수와 방만한 취기와 열정적인 사랑이었다. 이러한 삶의 우수와 낭만성은 그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꽃과 여인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김수돈은 ‘화인(花人)’이라는 아호 그대로 남달리 꽃을 사랑한 시인이다. 그가 남겨놓은 거의 모든 시에 은은한 꽃향기가 감돌고 있다.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꽃을 다루는 재주가 특별나서, 화병에 꽂을 꽂아놓으면 그대로 예술적 향취를 풍겨 뭇 사람들을 감탄시켰다고 전해진다.
시인에게 있어 꽃은 여인의 상징이다. 시인은 꽃의 모습에서 여인을 보고, 여인에게서 꽃향기를 맡는다. 이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리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향기는 더욱 가슴에 사무쳐 시인을 잠 못 들게 한다. 그럴 때마다 시인은 지독한 술로 외로움을 달래거나, 꽃을 잃은 벌처럼 세상을 방황하고 살았다.
그의 시심 깊은 곳엔 늘 고독한 정서가 들끓고 있고, 마르지 않는 눈물의 샘이 있다. 그는 시에서 굳이 삶의 센티멘털한 심경을 절제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와 정서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이 문학적 성취에선 한계가 되었지만, 그는 불안하고 우울한 시대의 한가운데에 아름답고 관능적인 한 다발 낭만의 꽃을 던져 놓았다.
암울한 세상을 술로 달래며 수많은 일탈의 이야기를 남기고 간 시인의 삶에는 여러 견해들이 따를 일이지만, 꽃과 여인과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며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낭만주의의 세계를 추구해 간 문학 혼은 그가 남긴 시집의 제목처럼 ‘우수의 황제’ 그대로다.”라고 그를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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