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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4일 토요일

북한 김영철 방남 반대자들께 고함



김영철 방남을 반대하는 인물들에게

북한이 우리에게 나쁜 짓을 참으로 많이 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뿌리를 캔다면
아마도 이념을 앞세운 독선적이고 독재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들이
인류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그들의 노예로 써먹기 위해 펼친 정책에 넘어간
어리석은 인류 때문일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공산주의를 창시한 이들의 두뇌에 녹아난 인류는 무궁하다.
그 방법을 조금씩 바꿔가며 자국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을 농락했다.
레닌의 스탈린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이들이 그 혜택을 본
인물들일 것이다.
물론 쿠바를 비롯해서 동독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등 등 공산주의 사상을
보급 받아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써먹은 공산주의 분자들도 수없이 많다.
그래도 공산주의로 성공한 사람이라면
스탈린을 비롯해서 김일성 그리고 마오쩌둥이라는 생각이 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인물이 한반도 북쪽을 섭렵했던
김일성이 최고의 공산주의에 의해 권력을 잡아 3대 세습까지 써먹고 있으니
김일성 一家(일가)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다고 본다.
하필이면 한반도에서 韓民族(한민족)에게
끔직한 일이 벌어지게 했다는 말인가?
그 후면에는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도 한 몫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조금만이라도 남북통일의 자세를 확고하게 했다면
지금까지 한반도가 분단될 수 없는 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처음부터 남북통일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본다.
단지 6.25 한국전쟁이 터져 휴전이 성립되려고 할 때가 돼서
완전하게 남북을 다 장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이승만이 휴전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크나크게 관심조차 갖지 않았고
남한만이라도 자기가 장악하게 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국가의 미래보단 자신의 미래만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12년 독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남북회담을 위해 노력한 역사가 없다.
무조건 북한과 결별을 선언하고 공산주의는 주적이라고 발표하고 만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관심이 없던 인물이다.
고로 남북 이산가족 서신왕래는 말도 꺼낼 수 없게 해버리고 만다.
우리와 비슷하게 분단된 국가인 동서독은 서신이 왕래를 하고 있을 때,
남북한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심심하면 소규모 교전만 있었을 뿐이다.

극비리에 박정희 前대통령 예방한 박성철 북한 부수상(서울=연합뉴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앞둔 5월31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극비리에 방한해 박정희 前대통령을 예방한 사진이 공개됐다. 박 대통령 왼편이 박 부수상, 오른편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통일부가 1일 판문점 '자유의집'에 문을 연 판문점 갤러리에는 남북회담 등 미공개 사진이 대거 전시됐다. 2014.9.1. <<통일부 제공>> ljungberg@yna.co.kr


박정희도 마찬가지 정책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1972년 5월 북한에 보내 2차례 김일성을 만난 이후
그해 7.4공동성명이 채택이 됐으나,
박정희와 김일성은 국민의 안위에는 별 관심 없이
자신들 권력욕에 남북 공동성명의 성공을 이용해 먹었을 뿐이다.
박정희는 이 때를 이용해 독재를 확장하며 유신헌법으로 국민을 옥죄고 만다.
그해 5월과 6월 사이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김영주를 대신해
박성철 제 부수상의 서울방문이 실현된다.
남북한 간의 정치적 의견 교환이 처음 이루어졌다.
이때가 남북한 GNP가 거의 비슷할 시기이다.


1972년 6월 29일 이후락과 김영주는 그 동안의 회담내용에 합의한 후 서명하고,
7월 4일 마침내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된다
그 성명내용은 통일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외세(外勢)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남북한이 분단 27년 만에 처음으로 합의한 당시의 3대 원칙은
이후 남북한 간에 이뤄진 모든 접촉과 대화의 기본지침이 됐다고 하지만
6.15 남북공동선언에는 미치지 못해 지금은 완전 뒤로 밀려 있는 상황이다.

 

색마이자 독재자인 박정희는 남북한 간 회담을 이용해 먹으면서
국민을 옥죄고 있었다.
그리고 7년 후 1979년 10월 26일 세상과 영원히 등지고 만다.
문제는
독재자가 독재를 확고히 하기 위해 북한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국민은 그런 기만에 응해주고 있었을 뿐 국민 스스로 이익을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 박정희가 저 당시 조금만이라도 국민을 위할 생각이 있었다면
남북 이산가족 서신왕래를 주선했을 것이고
소련이 붕괴될 당시 북한도 같이 붕괴되지 않았을까?
박정희 그 시대에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고통을 받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는 말이다.
박정희가 그 발판만 만들어 놨었다면
1988~89년 우리도 남북화해를 하던지 합의를 했든,
남북 간 의견 충돌이 없었을 것인데 참으로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말이다.
?
독재정권이 독재 권력을 확장시킬 것만 탐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2년 북한 박성철이 올 때 국민은 완전 몰랐다.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은 서울을 방문하여 독재자 박정희와 청와대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도 내려와서 박정희를 만났다.
색마이자 독재자인 박정희 독재 정권을 돈독하게 해주기 위해서 아니었나?
이들은 독재 권력을 위해 살고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박성철과 김영철의 방남을 어떻게 비교해야 할 것인가?
북한 권력체계로 볼 때 거의 비슷한 체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1972년 당시 박성철은 비밀리에 독재자 박정희를 위해 다녀갔고
김영철은 공개리에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가함과 동시 평화를 위해
방남하는 것으로 생각이 미치고 있다.
북한 체제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남쪽에 죄를 짓지 않은 관료가 없다고 본다.
단지 세월이 지나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뿐 북한 체제 속의 인물들은
많은 죄를 안고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후일 어떻게 사과를 하고 죄의 대가를 받을지는 아직 모른다.
동독의 호네커(Erich Honecker)처럼 말이다.
죄를 졌으면 죄의 대가도 받아야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문재인 정부도 딱히 할 일이 없지 않은가?
단지
저들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들어보자고 할 뿐이다.
그것까지 국민들이 방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를 완전히 뒤집고 다니던 테러 집단의 대명사 알 카에다의 首長(수장?)
평화를 위해 백악관을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만나지 않겠다고 해야 옳을까?
평화를 위해 만나겠다면 막을 일이 없지 않나?
왜 자유한국당은 김영철을 막으려고만 하는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최소한 북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라고 해야하지 않나?
김영철과 천안함을 연결시켜 천안함 유족까지 부추겨 논
자한당의 소행이 참으로 밉다.
물론 천안함 전사자들의 유족에게는 미안하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만,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실을 잘 분석해본다면
남북한은 어제든 한번은 확실한 대화를 해야 한다.
그 대화조차 하지 말라고 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나?
거듭 강조하지만 잘 못이 있으면 사과도 받아야하고
대화를 해서 풀어야지 막기만 하고 말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정말 어리석은 짓 아니겠는가?
제발 뒤에 가서 후회할 일은 하지 말고 살아가자!
북에서 내려올 김영철도 남한 자한당의 완강한 태도를 보고 느낀 점은
없지 않겠으나,
무슨 일이든 易地思之(역지사지)해야 하고
過猶不及(과유불급)하는 일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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