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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30일 수요일

양승태 재판거래 눈감은 대법관들 사퇴하라?




"양승태 '재판거래눈감은 대법관들 사퇴하라"?

세계일보 단독으로
'현직 교수 "양승태 '재판거래눈감은 대법관들 사퇴하라"'는 보도이다.

현직 로스쿨 교수가 대법원 산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결과로 드러난 양승태 사법부의 부당재판 및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대법원을 구성해 재판을 함께 해온 현직 대법관들의 사퇴를 촉구해 파장이 예상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법조계 인사가 현직 대법관들의 사퇴를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법원 사법농단의 최종 책임자는 양승태이지만 그와 함께 대법원을 구성해 문제의 재판을 한 대법관들도 책임이 있다며 사법의 신뢰를 위해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교수는 나는 이제까지 그 대법원에서 양승태의 대법원 운영에 저항한 대법관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며 그런 대법관들 다수가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앞서 지난 28일에는 양승태 사법부의 부당재판 및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요구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김주대 시인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에 어떠한 개입도 없었다고 대법관들이 반박 성명을 발표한 것에 대해 장시 형태의 격문을 올려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와 관련법원 내부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물론 관련 단체 등이 일제히 반발하는 등 사법부에 대한 불신 움직임이 일자 이날 오후 법원행정처 간담회를 열고 행정처 내부 의견을 수렴하는 등 사태 수습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세계일보;2018.5.30.)

 

대한민국 내에 수많은 대학교 교수 중 단 한 명의 교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거 사법부의 최고 수장이던 양승태 대법원장의 '상고법원신설 기획을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양승태의 상고법원 사법개혁 사고 속에는 대법관들의 영욕이 숨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노후를 더 평안하게 보낼 수 있는 안락함이 상고법원 안 권좌에 놓일 수 있는 기획이라고 보는 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사회로 나가 전관예우를 받게 된다면 그 직위보다 더 많은 예우를 받게 될 수도 있겠지만,
상고법원에서 영예를 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땅 집고 헤엄치기를 상상한 것은 아닐 런지?

 

분명 양승태의 思考(사고)에 박수를 보냈던 인물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앉자있으면서 품위를 지킨다면 사법부 신뢰가 정화될 수 있을까?
대법관들의 한순간 잘못된 생각에 의해 한국고속철도[KTX] 전 승무원이던 삶에 수천 일 동안 불행을 안겨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한 어린아이의 엄마가 사법부의 농단에 의해 목숨까지 내던지게 만들고 말았다면,
세월호 판결을 박근혜 정권 편으로 이끌게 하기 위해 판사까지 바꿔가면서 捏造(날조)시켰다면,
한 정당까지 법의 圈域(권역)을 억지로 넓혀가면서 파괴하여 독선적인 정권에 아부하려고 갖은 아양을 떨면서 애를 썼다면,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법조인으로서 아주 최소한의 양심은 갖추며 살아가고 있다할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싫지만 양승태라는 인물은 아주 오래 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올 때부터 비굴한 길로 들어선 것으로 나온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지적한 내용들이다.
양승태 전 대법관은 지난 197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관으로 임용되어
1975년 11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그는 박정희 유신정권시절인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면서 12건의 긴급조치 재판에 관여하였다.

특히 그는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재직 중인 지난 1976년 재일교포간첩조작 사건인 김동휘 사건이원이 사건장영식 사건조득훈 사건에 배석판사로 참여하여 유죄판결을 내렸다그러나 이 네 사건은 후에 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이 조작간첩사건이 어떻게 무고한 재일교포 청년들의 삶을 파괴했고그 과정에서 양승태 판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
 
1970년대와 1980년대 판사 양승태가 판결한 6건의 조작간첩사건에서 이미 2(강희철 사건김동휘 사건)에 대해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고다른 4건의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도 지금 재심을 준비 중이다.

김동휘 사건은 1975년 10월에 일어난 사건으그는 1954년 일본에서 출생성장하였다그는 1973년 3월 모국 유학차 입국하여 서울대학교에서 2년간 한국어교육을 받고, 1975년 3월 서울 가톨릭 의과대학에 입학,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5년 10월 13일 중앙정보부 남산분실에 연행되어 야만적인 고문을 통한 조사를 받고 그해 11월 20일 서울지검에 송치되어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죄로 기소되었다.

그 다음해인 1976년 4월 30일 1심인 서울지법에서 김동휘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같은 해 8월 31일 서울고법에서 김씨는 1년이 감형된 징역 4년을 받고 상고하였다그러나 그해 12월 14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고 결국 그는 억울하게 4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재일교포 이원이 사건은 지난 1975년 부산대학교에서 발생한 반유신 데모 사건유인물 살포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부산대에서 발생한 반유신 유인물 살포 사건을 추적하던 경찰은 재일교포 김오자씨와 이원이씨가 이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학생들의 반유신 운동을 넘어서 북한재일조총련과 관련된 간첩사건으로 조작했다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은 단순한 반정부 유인물 살포 사건을 부산대학생 박준건김오자김정미이원이철학과 교수 하일민 등 모두 24명이 관련된 대형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해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이원이씨는 당시 서울형사지방법원의 판결에서 5년형을 받았다. 5년 징역형을 마치고 지난 1981 출소 한 이원이씨는 불법구금과 고문 등 후유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그리고 지난 1999년 11월 대장암으로 그는 비극에 찬 생애를 마쳤다.
 
장영식씨는 1949년 5월 12일 일본에서 출생일본 주오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1974년 모국에 유학와 서울대에서 1년간 공부한 뒤 1975년 4월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다그해 9월 일본에 갔다 한국에 돌아온 장씨는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재일조선인유학생동맹 활동 및 조총련 공작원으로부터 정보수집 지령 등 간첩활동 혐의로 모진 고문수사를 받은 후 서울지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1976년 5월 7일 장영식씨는 서울형사지법(재판장 심훈종판사 조용무·양승태)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3년 6월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장영식씨은 같은 해 9월 6일 서울고법에서 일부무죄를 받고 상고하였다그리고 1976년 12월 28일 대법원에서는 무죄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파기 환송하였다. 1979년 1월 14일 장영식씨는 서울고법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그러나 1심에서 3년 6월형의 유죄를 선고 받은 것에 대해 장영식씨는 양승태를 포함한 판사들에게 아무런 사과를 받지 못했다.

조득훈씨는 1951년 12월 29일 일본에서 출생 1971년 4월 오카야마 대학교 전자공학부에 입학, 1975년 3월 졸업하자마자 모국으로 유학와 서울대학교 재외국민교육연구소에 입소해 그해 12월 10일 수료했다조득훈씨는 일본에 있을 때 대학 재학 중 조총련계 인물들과 만나 북한관련 학습을 함으로써 반국가단체 성원들과 회합 통신하고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등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보안대에 체포돼 무자비한 고문과 조사를 받은 후 서울지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1976년 6월 8일 조득훈씨는 1심인 서울지방법원(재판장 심훈종판사 조용무·양승태)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각 10년씩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그리고 그해 10월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각 7년을 선고받았다조득훈씨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77년 2월 8일 대법원에 의해 상고가 기각되어 7년형을 확정 받고 징역을 살다가 지난 1981년 8월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석방 후 조득훈씨는 재심청구를 하여 38년 만인 지난 2014년 9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당시 김종근 판사는 "조씨가 혐의를 인정한 진술서는 15일간에 걸친 불법감금 중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게 하는 등 고문과 협박에서 비롯된 허위자백 요구의 결과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또한 "다른 증거도 없다"며 "범죄사실이 날조됐다"고 인정했다.(오마이뉴스;2018.5.29.)
[더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하세요]

양승태 혼자 처리는 하지 않았지만 색마이자 독재자에 조작간첩의 元兇(원흉)인 박정희 시대에 성공을 위해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서 충성맹세를 한 것보다도 더 비굴하게 박정희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지독하게 荒唐(황당)하다는 것이다.
그 여파를 이용하여 양승태는 박근혜에게도 충성을 할 것이니 자기가 기획한 상고법원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며 수많은 국민을 울게 했다는 것 아닌가?
그 이면 속에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물밑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것으로 본다.
자그마치 410건의 사법부 부당재판 의혹 건수 중 겨우 몇 가지만 살짝 내보인 것인데,
그 인물과 같이 했던 법관들은 지금 그 자리가 너무나 벅차고 황홀한 자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더 많은 교수와 학생들의 怨聲(원성)이 이어지면서 결국은 전 국민이 聲討(성토)할 때까지 숨어 기다릴 것인가?



원문 보기;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사법부는 왜 김명수 대법원장이어야 하나?

 
 
사법부 개혁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현재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는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사법개혁 논의 세미나를
저지한 사실이 드러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일선 판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경향신문은 적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400여 판사들이 모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유엔 국제인권법 매뉴얼’ 한국어판을 첫 발간한 법원 내 학술단체다.
이 상황으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세밀히 관찰하고 있던 사법부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뚜렷해지고 있다?
사법부 개혁만을 바라던 이들에게는
오랜 괴로움을 겪은 이후 즐거운 행운을 맞는 상황 아닌가싶다.
久旱逢甘雨(구한봉감우)
-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격 -
아닌가?
 
 '민사·인권 판사' 김명수 제46대 춘천지방법원장 취임

그러나 이제부터라고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에 대해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하여 막아설 야권 세력도 적지 않다?
많은 국민은
자유한국당이 나서서 설치는 일이라면
무조건 국가를 해치는 일이라며 그들이 반대를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단다.
얼마나 국회 청문회에서 횡포를 부릴지는 두고 봐야 할 일?
경향신문은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논평에서
“문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로 편향된 정치판사를 지명했다”며
“사법부의 이념화를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파격과 코드만 강조된 김 지명자가
정치적 중립성과 경륜이 요구되는 사법부 최고 수장으로서
역할을 잘해나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다.
이 때문에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가 돼야 하는 것!

 무거운 표정의 양승태 대법원장

현 대법원장 양승태(69; 연수원 2기) 판사와
김명수(58; 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후보자와의 기수나 연령의 차이가
큰 것부터 시작해서 성향관계도 적잖다는 평이다.
11년의 세월의 차와 연수원도 13기나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대법원장 임기 6년을 감안했을 때
연수원 8기 전후의 판사 중에서 지명을 예측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사법부 3000여 명의 판사와 전 직원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이는
김명수 후보자 단 한 사람 뿐?
그만큼
사법부가 가짜 보수화되고 적폐적인 요소가 담긴 상황라고 이해해도 될 것?
이 때문에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가 돼야 하는 이유다!
 
[위기의 법률시장] ‘잘 나가는 로펌’은 옛말…로펌 파트너 변호사 월급 20% 깎였다

세상은 단체의 힘을 더 선호하고 있는지,
변호인들도 단합을 해서
‘전문변호사들로 구성된 법률회사[law firm 로펌]’를 만들어가고 있다.
법무법인 또는 종합법률회사라고도 부르는 이 단체는
변호사들이 전문분야별로 나뉘어 조직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며,
단 한 번에 좋은 성과를 올려서 상대를 단번에 제압하는[One stop 원스톱]
변호인단이 선진국을 비롯해서 형성돼왔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선진국처럼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했는가?
그 문제에 대해 사회 여론은 인정할 수 없다는 상황 아닌가?
사법부의 전관예우가 따르며 금력을 지닌 이들에게 로펌의 힘은 강해졌다?
결국
금력은 법원까지 흔들고 있다는 사회 인식이 굳게 박혀 있으니 그게 문제?
이 상황을 사법부 수장이 어떻게 원활하게 꾸려갈 수 있을 것인가?
왜?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가 돼야 하는 것인가!

불 밝힌 광화문 광장
 
촛불혁명은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었다.
촛불의 힘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더 큰 힘을 집중했고 의지했다?
그 힘의 세세함이 나라 전체로 퍼져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하나둘 그 약속을 지키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중?
적폐청산 중 사법부 개혁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국민의 뜻?
문재인 정부는 차기 대법원장에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 추천했다.
그는 지난 정권 중에 대법관에 후보에 올랐으나 탈락된 인물이다.
그가 대법관에 오르게 되면 가짜 보수 정치 집행에 불리해서 이었을까?
때문에
고등법원장이나 대법관 중 지명이 아니라,
지방법원장에서 대법원장 지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개혁을 위해
윤석열 서울 지방검찰청장(지검장)을 획기적으로 지명했던 방법과 흡사?
이런 획기적인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왜?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가 돼야 하는 것인가!
 
대법관 13명중 9명이 선배…“김명수 지명은 상상 그 이상”

김명수 후보자는
진보성향으로서 소탈한 성품?
춘천지검장을 하며 지난해에는 소년원을 찾아 배식 담당도 했단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상대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
문재인 대통령과 성격상 무엇인가 통하는 면이 있다?
김 후보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하기 이전 우리법연구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노태우가 전두환 정권에서 대법원장을 한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판사 430여명이 서명운동에 나섰던
‘제2차 사법파동’ 후 설립된 법관 모임.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박시환 전 대법관이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이었다.

 군 시설물 둘러보는 김명수 춘천지법원장

김 후보자는
또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첫 학술대회도 개최한 인물이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도 인정한바 있다.
이로 인해 자유한국당과 야권에서 더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까?
대법원 재판연구관 민사조장을 역임하고
민사실무제요 발간위원으로서 원고를 집필하는 등 법원 내 민사재판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특허법원 재판장을 2년 역임해 특허사건에도 일가견!
왜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이어야 할 것인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명수 춘천지법원장

김 후보자는
서울고법 행정부 재판장 시절,
군무원이 근무시간 중 동료 여직원에게 음란 동영상을 보여준 사건에서 상대방이 곧바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한 일도 있단다.
그의 학력은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9월 24일로 임기 만료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뒤를 잇는다.
국가 百年大計(백년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뚜렷하고 철두철미한 이가 사법부 수장에 들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여소 야대 정국이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완강한 힘이 또 필요할 때가 아닌가싶다.
왜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가 돼야 하는 것인가!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 "보호소년 인문치료위해 법원의 책임 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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