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5일 화요일

자유한국당은 왜 건국절을 원하나?

 


1919년 건국과 1948년 건국의 차이
 
 
두산백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두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다.
6월 11일 임시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한편 내각을 개편하였다.
9월 6일에는 *노령정부와 통합하고
제1차 개헌을 거쳐 대통령중심제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1926년 9월 임시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원제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의원내각제가 정부형태의 주류를 이루었다.
 
1945년 8·15광복까지
상하이(1919)·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1937]·
광저우[廣州,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1939]·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한민국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두산백과)
 

*한성임시정부
상해 임시정부에 통합한 시기를
두산백과는 1919년 4월13일로 했는데,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행정분야>는
1919년 9월 6일에 3개 단체가 통합된 것으로 나온다.
단언컨대 전체 통합은 9월6일이지만,
일부의 한성임시정부 요원들이 1919년 4월 13일에
통합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다.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
1919년 2월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한 임시정부로,
대통령에 손병희, 부통령에 박영효, 국무총리에 이승만, 군무총장(軍務總長)에
이동휘 등 임시정부 체제의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가 설립됐으나,
1919년 9월6일 한성임시정부(서울주재 1919년 4월 23일 설립)와 함께
상해임시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통합됨.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왜 상하이에 세웠을까?
 
 
노령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 외에도 7개 임시정부가 있었으나
그 규모가 확실치 않았으며,
결국에는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교통 및 외교활동이 편리한 상해임시정부로
몰려들고 말았다.
상해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3일 탄생하면서 최초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쓰기 시작했기에
4월 13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여타 역사가들은 한성임시정부가 설립된 4월 23일을 쓰기도 하고,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가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된 9월 6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로 인정하고 있는 역사가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선포해서 지금까지 이르게 한
상해임시정부 수립일(4월13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해야 이론이 맞지 않은가?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절이 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물 마시는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류석춘은
“(1948년 건국을)너무 당연한 일을
牽强附會(견강부회)해서 1919년을 건국일로 건국해로 삼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큰 억지를 쓰고 있다.
그는
대통령의 기수에 대한 것까지 들춰가며 억지도 쓴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으로 1948년부터 시작된 것을 논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임정 당시에는
집정관총재 제도를 들여왔으나,
이승만이 영어해석에서 'President(대통령)'으로 쓰면서
대통령제(1919~1925)부터 시작해서 내각책임제(1925~1927)를 거쳐,
집단지도체제(국무위원제;1927~1940)로 이어갔으며,
해방직전 주석제(1940~!945)까지 이어왔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하고,
건국 과도기의 헌법개헌을 5번에 걸치며 매끄럽지 않았을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가 아닐까싶어진다.
더욱이
해방이 돼 처음 시작한 정부이지만
이승만의 고집에 따라 대통령제를 처음 시작하면서
자신이 독립을 주도한 것처럼 과장된 사고
- 독립이 아닌 타국의 세력에 의한 해방인 것을 혼돈하게 만든 사고 - 와
망상에 치우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하며 스스로를 제1이라는 자세를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렇게도 독재자 이승만을 국부로 삼고 싶다는 말인가?
이게
대한민국 안에 기생하고 있는 가짜 보수주의자들의 극우세력?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

JTBC 오대영 기자는
“이게 지금으로부터 98년 전에 작성된 1919년의 건국 통보문입니다.
참고로 출처는 우당기념관입니다.
당시에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이 일왕에게 보낸 문건인데요.
대한민국이 독립국가임을 일본에게 알리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임을
공식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약상의 약속들은
무효로 간주될 것이다.’이렇게 얘기하고 있고요.
"1919년 4월 23일 한국이 완전히 조직된 자주통치국가가 됐음을 당신,
그러니까 일왕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열흘 만에 4500여부 팔려나간 '금서'

“1919년의 또 다른 문건도 있습니다.
일단 이 기록부터 보시죠.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임시 의정원이 열렸는데요.”
“당시에 첫 회기를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원년, 1919년으로 뚜렷하게 밝혔던 내용입니다.”
 
“이것 외에도 광복 이후의 자료도 있습니다.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는데,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이렇게 밝혔습니다.”
“1948년을 대한민국이 30년 된 해로 인식을 한 겁니다.
같은 해 9월 1일에는 최초의 관보가 나왔습니다.”
“보시다시피 발행 일자가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입니다.
역시 1919년을 원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대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독립운동유적 클러스터도 조성

앵커는 자유한국당의 억지주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시키고 있다.
“사실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승만 국부론을 함께 주장을 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19년을 계속해서 (건국은 1919년을) 말해 왔던 거군요.
 
오대영 기자는 계속해서
“가장 명백한 건 그리고 대한민국 제헌 헌법을 보면 전문에 나와 있습니다.”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
이렇게 명백하게 밝혀뒀는데요.
기미년인 1919년을 대한민국의 건립의 해로,
1948년을 재건의 해로 말하고 있습니다.”
 
뚜렷한 근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48년을 건국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오대영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
“그 주장도 근거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가 국가의 3요소를 다 갖추지 못해서
그래서 실효적으로 지배를 하지 못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국민, 영토 그리고 주권을 모두 갖춰야 국가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건데,
하지만 국제법 전문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독립을 선언하고 투쟁을 했던 점,
또 자체적으로 정통성을 스스로 밝혔던 점.
이것들로 볼 때 3요소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분석을 했습니다.
들어보시죠.”
 
&quot;오늘은 조국 독립운동에 앞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입니다&quot;

오승진 단국대 국재법 교수는
“(국가의 3요소가)
모두 일시적으로 처음부터 완전히 갖추어진 경우는 드물고요.
식민지배에서부터 독립하는 경우에는
정부의 수립을 선포하고
무장투쟁을 통해서 독립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충분히 국제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충분히 국제법적 의미가 있다라는 건데,
실제로 미국은 영국의 지배로 영토와 주권이 없었던
1776년에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런 국기까지 내세웠죠.
7년 뒤에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을 받았고요.
그리고 다시 6년 뒤에 정부가 수립이 됐고 그때 초대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미국은 독립선언일을 건국시점으로 삼고 있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결국 국제법으로 인정되느냐에 앞서서
국내적 또 헌법적으로 정통성이 있느냐를 봐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결론입니다.”
 
류석춘 위원장에게 임명장 수여하는 홍준표

국가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없지 않을 것?
하지만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사고에 비춰보았을 때도 그렇고,
전 대통령 이승만의 사고에 비춰보았을 때도 건국년도는 1919년!
굳이 건국절을 두려고 하는
- 광복절 외에 굳이 건국절이라는 것을 두어
일제강점기의 치욕의 역사를 희석시키려는 의지와 지우려고 하는 - 자세!
즉 역사를 왜곡시키고자 잔머리를 쓰는
극우적인 인물들의 잔꾀가 무섭다는 것이다.
극우세력들의 과격한 생각
牽强附會(견강부회)
- 아주 다른 이론을 자신의 주장에 근거로 쓰기 위해 강제로 부합시키며
옳다고 우기는 작태 - 는 자유한국당 같은 이들이 할 소리인가?
그 스스로가 그런 짓을 하면서!
 
누가 저런 이들로 만들고 말았는가?
억지를 쓸 것을 써야 할 것 아닌가?
국가와 국민을 저울질하며 제 살 길만 찾아 나서겠다는 것인가?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를 비롯해서 혁신위원장 류석춘!
민족의 최악인 이완용과 견줄만하지 않을지?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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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4일 월요일

종교인 과세, 한국교회연합 반발?

 
 
종교인과세 개신교 반발 & 종교인 양심
 
 
종교인 과세는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1968년부터 과세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제기하면서 공론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 원칙에 따른 것!
조세 정책의 근간을 이루기 위한다는 말은 나왔으나,
근 반세기 동안
종교계의 거두들은 정치꾼들을 잘도 매수하지 않았나?
신자들의 선거권을 이용하면서 말이다.
근 반세기 동안 세금을 걷는다는 말은 있었지만
실천 단계에 들어가는 것은 2018년부터?
하지만
지금도 국회의원들 중에서는
아직은 아니라며 2년을 더 미루자고 한다.
세상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반기문 &quot;성소수자 차별 말아야&quot; - 한기총 &quot;공감한다&quot;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장서영 목사(오른쪽)

한국교회연합(개신교 협의체?)의 대표회장인 장서영 목사는
14일 오후 발표한 논평에서
“미비한 문제점들을 그대로 둔 채 과세당국이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으로
시행에 들어갈 경우,
국민과의 소통을 국정 운영의 제1 순위로 삼고 있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암초에 부딪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라고
소견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발의한 유예법안에 대해선 “환영” 입장?
 
종교계, 종교인과세 앞두고 대응 분주

한국일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종교인소득에 전면 비과세를 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그 바람에 연기된 정의는 공평과세 원칙뿐이 아니다.
적잖은 교회와 사찰 재정은
“귀한 곳에 쓰였다”는 미사여구 속에 봉인돼 있고,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재정비리 사건으로 내홍도 끊이지 않는다.
 
이 모두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가 마침내 첫 발을 떼려는 찰나에
투명사회라는 대의보다도,
‘광야로 돌아가라’는 성경 말씀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손익 계산에만 분주한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신앙인을 비롯한 국민들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종교계에서는 사업장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니라
영적인 일을 하는 성직자로서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
번번이 과세는 무산돼 왔다.(한국일보;2017.8.14.)
 
[기재부24시]'종교세 유예, 경유세 인상' 김진표는 X맨인가

가톨릭은 1983년 납세논의를 시작해,
1994년부터 모든 성직자 월급에서 소득세를 원천 징수해왔다고 한다.
신자들의 기부액은 모두 국세청에 통보하고,
2011년부터는 미사 예물 등 사제의 모든 소득을 납세 기준에 포함했다.
불교계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도
2015년부터 과세에 찬성하고 시행 계획을 준비해왔다.
같은 해 개신교 대표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도 자진납세를 결의했단다.
일찌감치 세금을 내왔거나 찬성의사를 밝힌 종교인들은,
이쯤 되니 당장이라도 시행하면 그만인 ‘종교인 납세’가
또 다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눈치란다.
하지만
항상 반대를 위한 반대로 세월을 보내는 인물과 단체가 있는 것?

 '종교인 과세 유예' 김진표,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상' 수상

김진표를 주축으로 25명의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종교인 소득세법 개정안을 지난 9일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종교인 과세가
2020년 1월로 미뤄진다?
그걸 받쳐주기로 한
한국교회연합(개신교 협의체?)의 대표회장인 장서영 목사가
14일 앞장 선 것으로 보인다.
 
개신교 단체 중 유명 목사들의 심정은 어떨지 확실한 변명은 없으나,
바로 그들이 국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것 아닐까?
가난하고 힘든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그들의 삶을 같이 가게 한다면 있는 목사들이 앞장서서
종교계를 이끌어 가야 하지 않을까?

김동연 &quot;종부세 강화 검토 안해…종교인 과세 내년 시행 준비&quot;
정부도 자신 있게 밀고 가야 할 것이다.
첫 발 뛰기가 어렵지 앞으로 전진 할수록
그 보행에 힘이 실리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만 종교인들의 세금을 걷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은 다 세금을 내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제부터라고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정치꾼들로부터 혜택을 누렸으면,
자진해서 가장 양심적으로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김진표 등 25인 의원들이 착한 신자라 할 것인가?
이왕 준비하고 있는 성직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면
이 역시
죄를 짓고 있는지도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목회자든 성직자든 사찰의 스님이든
종교인들은 최소한의 양심 앞에 서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2년 더 뒤로 미룬다고 무엇이 크게 달라질 것인가!
스스로의 양심을 뒤로 물리려고 한다는 것이 더 두려운 일?
사심을 버리는 것이 가슴을 틔우게 하는 일 아닌가!
굳이 이런 소리와 글을 듣고 보야 할 것인가!
종교인들이!

9일 개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진 이후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전재수·백혜련 의원이
공동발의를 철회해 발의 의원 수는 25명으로 줄었다. [출처=기획재정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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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3일 일요일

패군장불가이언용과 꼴불견들

 
 
패군장불가이언용과 견강부회


敗軍將不可以言勇(패군장불가이언용)
- 싸움에 진 장수는 武勇(무용)을 언급할 수 없다 -
곧 “실패한 사람은 그 일에 관해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의역할 수 있다.
이 말은
<史記사기>의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의 광무군이좌거(廣武君李左車)에
나오는 말이다.
 
《사기》 - 사마천

敗=패할, 지다, 무너지다, 부수다 (패)
軍=군사, 군인, 진(陳)을 치다 (군)
將=장수, 인솔하다, 장차, 문득 (장)
不=아니, 아닐, 못하다 (불, 부)
可=옳을, 허락하다, 듣다, ~할 수 있다 (가)
以=~써, ~을 가지고, ~따라, ~대로, ~ 때문에, ~까닭에 (이)
言=말(씀), 견해, 의견, 글 (언)
勇=날랠, 용감할, 용기, 과감하다 (용)
 
漢(한)나라 高祖(고조)의 명을 받은 名將(명장) 韓信(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趙(조)나라 군대와 한판을 벌여야 할 판이다.
먼저 魏(위)나라와 한판승을 했기에,
군사들의 사기는 충천돼있지만 지치지 않을 수 없는 상태!
허베이성[河北城(하북성)]의 징싱[井陘정형]까지 진격한 한신은
적잖은 난관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징싱의 峽谷(협곡)을 통과할 때는
분명 조나라의 유명 전략가인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要塞(요새)를 이용하여 매복을 서 있겠다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협곡을 벗어날 때까지 조나라 군대는 단 한 명도 가로막지를 않았으니
쉽사리 빠져나와 조나라 군사와 붙어 가볍게 격파를 하고 만다.
이좌거까지 생포했다.
아주 어마마한 대어를 낚은 셈?
후일 알아보니 조나라 成安君(성안군)이 이좌거의 계책을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협곡의 위험에서 벗어난 행운을 더해
대승까지 했으니 하늘이 한신을 도왔다고 했다.
한신은
부하들을 시켜
이좌거를 잘 모시라고 신신당부!
 
《사기》 - 대역사가 사마천

燕(연)나라와 齊(제)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한신은 부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계책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도저히 획기적인 계략이 나오지 않는다.
한신은 이좌거를 방문했다.
이좌거를 보자 깍듯이 대하며 그의 처지를 살핀다.
그리고 넌지시 그의 뜻을 이야기 했다.
이좌거가 하는 말은
“싸움에 진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않는다.”
- 敗軍之將 不語兵(패군지장 불어병) -란
말 한 마디만 하고 입을 다물고 만다.
 
한신은 설득한다.
“내가 아는바 百里奚(백리해)는 虞(우)나라에 기거할 땐
우나라에서 그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아, 우나라가 망했소이다.
하지만
그가 秦(진)나라로 망명한 다음 그의 말대로 성사시켜
秦(진)이 승전하면서 밝혀지지 않았소?
백리해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진나라가 그를 믿고 그 전략을 따른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요.”
“만일 성안군이 그대의 전략대로 따랐다면,
나는 조나라의 군사에 의해 죽지 않았겠소?
아니면
지금쯤 포로가 돼 그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오.”
“청하옵건대,
그대로부터 전략을 배우고자하니 진심어린 내 뜻을 받아주어,
한 수 가르쳐주시구려.”라고 했다.
 
진심에 찬 한신의 눈을 보고 이좌거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한신의 참모가 되기로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이좌거는 연과 제를 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하였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유명한 전략가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
 
홍준표 '눈물의 퇴임식'

전쟁에 진 장수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좌거 같은 양심가가 있었기에 중국 역사가 지금껏 이어오지 않을까?
양심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데
올바른 양심과 비뚤어진 양심 그리고 뒤집어진 양심이 있는 것.
그러나
대체적으로 올바른 양심의 수가 많아 지금 세계가 잘 돌아가지 않는가?
물론
비뚤어지고 뒤집힌 양심이 있어도
올바른 양심이 굳세게 걷어차며 나가고 있으니 어림도 없다.
 
[‘성완종 리스트’ 홍준표 실형]추락하는 홍준표 “저승 가서 성 회장에 물어보고 싶다”

牽强附會(견강부회)
- 아주 다른 이론을 자신의 주장에 근거로 쓰기 위해 강제로 부합시키며
옳다고 우기는 작태 - 의 인물들까지 있는 작금
꼴불견들은 적잖으니 슬프고 괴로운 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타고난 구설수의 명가?
오는 16일부터 전국을 돌며 대국민 토크 콘서트를 열 예정?
어떤 지역은 장소나 콘서트 집행자 섭외도 여의치 않다고?
그 탓을 야당이라서?
최근에도
바른정당을 향해 “첩”이란 단어로 困惑(곤혹)의 대상에서 살더니,
공관병 갑질의 육군대장 박찬주를 끌어안다가 엎어지고 있다.
여성비하발언은 타고 났고,
그가 입만 열면 썩을 소리들이 온통 사회를 진동!
그와 같이 말과 말을 할 국민들은 도대체 어떤 인물들일까?
 
안철수 &quot;탄핵인용 때부터 대선 시작…'미래대비'가 평가기준&quot;

국민의당 전 대표 안철수는 또 어떻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만 패한 것이 아니라,
홍준표에게까지 밀리고 만 인사?
무슨 개혁을 하자고
또 국민 앞에 서겠다는 것인가?
패한 이는 꼭 들어가야만 한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최소한의 양심적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안철수 스스로 자기가 나서면 국민의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어쭙잖다는 것!
홍준표나 안철수 두 인물을
국민들은 도대체 얼마나 인정하고 있을 것인가?
그런 인물들과 같은 인물들이 과거에 수두룩했다면 틀리라고 할 것인가?
결국 사회를 진흙탕으로 변하게 한 장본인들?
어찌 용서할 수 있다할 것인가!
그 두 인물을 인정하는 것을 두고
牽强附會(견강부회)라 하지 않을까?
敗軍之將 不語兵(패군지장 불어병)해야 하고,
牽强附會(견강부회)는 말아야 사회가 바르게 가지 않을까?

홍준표 경남지사, 지방재정 ‘채무 제로’ 선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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