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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5일 일요일

윤석열 총장을 따르는 나경원과 자한당 모순의 역사는?



모순된 독재정치사회가 만든 모순된 자유한국당

장하림 감독이 적은 글에서 박정희를 비롯해서 백선엽과 정일권 등이 어떻게 더러운 친일부역자를 탈출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는
빨갱이 취급동북항일연군여전히 일제식민치하’(2018.03.20.일자)라는 제하에
친일부역자들의 사고에는 그들의 祖國(조국)은 없고 오직 자신만의 名聲(명성)과 好衣好食(호의호식)을 얻어내기 위해 일본 만주군 장교가 된 이들의 欲情(욕정)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 것을 본다.

일본 관동군 군관 출신 백선엽(사진 왼쪽) 대장이 관동군 간도특설대 출신 박정희(왼쪽에서 세번째) 5사단장등 
예하 부대장들의 보직신고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서기1961.05.16. 반란으로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백선엽을 서기1969.10. 교통부장관으로 임명한다(편집자 주).

일본 관동군 만주군관 육군중령 정일권은 조선인으로는 당시 최고 높은 장교였다백선엽은 한중항일 연합군 유격대 토벌에 앞장섰다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작전지휘부 참모였다그는 해방 이후 독립군으로 위장해 해방 조국에 돌아온다.

백선엽은 재빠르게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위장했고 박정희는 광복군 지청천김원봉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는다정일권은 장개석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군 흉내를 내다 여운형 건국준비위원회에 들어가려하지만 과거가 드러나 다시 만주로가 소련군에 들어간다정일권은 소련군에서 더러운 친일의 실체가 드러나 철장신세가 되지만 가까스로 탈출해 조만식의 비서백선엽의 도움으로 서울에 무사 귀환한다그리고 이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과거를 묻지않는 멋진 분’, 이승만이었다친일 부역자 처단위해 설치된 반민특위도 막아주고 김창룡노덕술 친일 악질 경찰들을 다시 경찰로 복귀시켜주니 이들은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 만난 격이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56주기 추모식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지청천(1888년 - 1957장군은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냈으며동아혈성동맹(東亞血成同盟)의 간부로서 각지의 항일단체를 규합하는 데 힘썼다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항일전을 수행하다가 광복 후 귀국대동청년단을 창설했다제헌국회의원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로서,
배재학당과 한국무관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는 게 박정희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결국 박정희는 자신만의 榮達(영달)을 위해서는 일본 ()에게 血書(혈서)로서 忠誠(충성)盟誓(맹서)도 했고 해방이 된 이후에는 광복군 때려잡던 일제 앞잡이를 감추고 3.1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선 지청천의 품으로 기어들어가 자신의 과오를 덮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자한당=박정희 후예들의 전당)이 적극적으로 싫어하는 약산 김원봉(1898-1958)의 밑으로 들어가 있었던 박정희의 약삭빠른 출세작전의 처세를 본다면 참으로 矛盾(모순)된 대한민국 정치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박정희를 죽게 좋아하는 자한당 의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중앙당 사무실에 걸려있는 박정희 초상화에 깊이 고개 숙여 찬양하고 있는 모순된 정치사회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보고 있잖은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헌정유린, 위선자 조국 사퇴 국민서명운동 광화문본부' 개소식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9.15/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뉴스1
나경원 "윤석열 교체 막아야"..황교안 "대통령 끌어내려야"’라는 제하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5일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관련 "(조 장관이법무부 장관이 되자마자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사에서 배제하려 했다"며 "3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교체하는 그런 사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국회인사청문회에서 윤석열은 검찰총장이 돼서는 안 된다며 얼마나 폭언을 한 자한당 국회의원들인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 대한 위증까지 끌고 간 자한당은 결코 청문조사서조차 청와대로 보내지 않고 끝까지 윤석열 총장 반대를 외쳐대든 나경원이 왜 윤석열 교체는 안 되는 것인데?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쉽고 가볍게 인사처리를 할 일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나라 정치와 검찰 발전에 적극적이지 않는 총장이 된다면 단호하게 교체할 수도 왜 없을 것인가?
조국 가족 밀어붙이기 수사(20~30 곳 압수수색)와 수사조차 하지 않고 기소부터 한 정경심 교수 건에 대한 정치검찰이 활발하게 움직이자 이제와선 윤석열을 지켜야 한다고?
이처럼 모순된 정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이승만 12년 친일파 옹호 독재정치와 5.16군사정변의 독재자 박정희 18년 모순의 참담한 일제 유신의 독재정치역사는 군화발로 짓밟는 악마의 정치로 전두환에게 이어지며 1979년 12.12군사반란을 일으켰고 이듬해 5.18광주학살을 자행하는 모순의 역사로 모순은 모순을 탄생시키는 군사독재 7년이 계속돼가면서 대통령의 절대권력 앞에서는 그 누구도 고개를 들 수 없게 권위정치만 해왔기 때문에 그 후예들인 자한당과 그 지도부가 계속 矛盾(모순)의 정치를 이어가려 하고 또한 국민의 30%는 그런 과정이 한국의 전통정치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문재인 정부는 가상화폐 재난을 이렇게 막았다 - 홍보 도우미 조선일보

이제 문재인 정부도 자한당의 모순을 깨버리자고 한다면,
올바른 법리의 법치를 이용하여 새로운 굴레를 씌워서 모순된 정치를 저지하며 똑바로 잡아가야 할 것 아닌가?
識見(식견)이 있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을 꾀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이들도 있으니 하는 말이다.
검찰을 감찰하는 나라가 된다면 검찰의 권위와 권한을 줄일 수 있는 것처럼!
팽창만 돼가던 권력을 좁혀 국민의 편의와 번영을 위해 애쓰는 나라와 국민들이 될 수 있는 법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본다.
법도 강력할 때는 강력해야 권력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처럼
검찰도 강력할 때와 유연할 때를 알아 처리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본다.
국회의원 특권만 바라보던 과거 독재시대정치를 이젠 떠나야 할 것이다.
고로 수사 없는 기소를 위해 정경심 교수에게 적용했던 것처럼,
국회패스트트랙 반대만을 위한 자한당 국회의원 57명 전원에게 적용하여 수사 없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확인해도 충분히 기소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 총장이 이것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정치검찰인지 아닌지 확실한 판별도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윤석열 총장이 좋아 죽을지 자한당과 나경원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말과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으면 矛盾(모순)이 되는 것이다.
자한당의 전통적인 모순도 이번 기회에 다잡았으면 한다.

패스트트랙 극한대치…주말 비상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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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요일

박근혜 때문에 부역자가 될 이유?

   JTBC 손석희 앵커(anchor)는 “박 대통령은 친박단체가 보내준 편지에 대해 어제(28일) 감사 메시지를 단체 측에 보냈습니다. 친박단체가 편지를 보낸 건 지난 달 초였는데 삼일절 집회를 딱 하루 앞두고 입장을 전달한 겁니다. 당연히 대통령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전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본인을 지지하는 단체에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고 입을 땠다. 마치 박근혜가 탄핵반대집회를 선동하고 있다는 말 같아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상황을 본다.

    박근혜는 정규재TV 보도(1월 25일) 중에서 “촛불시위 두 배도 넘는 정도로 열성을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듣고 있는데, 이렇게 나오신단 걸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란 허위를 말한 적도 있다. 어떻게 하던지 대통령직을 그대로 꿰찰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물론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것은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직에 앉아야 할 사람의 자세에 있어, 거짓말까지 하면서 국민을 선동하려는 의지는 쉽게 이해할 수 없어서다.


    박근혜가 18대 대선 당시 여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후보로 지명이 되는 순간, 아니 그 이전 - 여당에서 대선주자로 지정하고 있는 순간 - 부터 수많은 이들이 국가 미래를 위할 때, 그녀는 위험한 인물로 단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 출생 -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독재자 처단) 군화 발 독재정치의 정경유착은 물론이거니와, 박정희 젊은 시절의 파행(跛行)적인 명예욕(名譽慾)을 참고했을 때 분명 그녀에게도 그런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꾼(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선거에만 이기려는 사람)에게 혼이 빠진 수많은 국민들은 박정희 18년의 기나긴 독재시대에 형성된 경제발전 - 그저 먹고 살만한 생활 - 에만 만족한 나머지, 朴 씨 일가에 미쳐 날뛰고 있었으니, 올바른 말과 참된 글 내용들이 먹혀들어갈 수 있었을 것인가? 그 어떤 정치꾼이라고 하더라도 18년의 긴 세월만 집권했다면 형성시킬 수 있는 먹고 살만한 생활일 것인데, 박정희 독재시대에 세뇌(洗腦)당해 고칠 줄 모르는 아둔한 인물들이 산재하고 있었으니, 박정희 독재가 대한민국에 끼친 지대한 영향은 한(恨)이 서려 있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던가!

    그 恨이 박정희 딸 박근혜가 억지를 부려가며 대통령직에 있는 지금, 한반도 남쪽에 봇물처럼 터져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그런가?
    박정희 18년 독재시대에서 국민의 恨은 정말로 컸다. 시시때때로 국민은 궐기(蹶起)하고자 했지만, 총칼을 앞세운 군화 발 독재정치에 질려버렸으니, 국민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4·19보다 더 큰 함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나 국민을 옥죈 박정희 독재는 국민의 입과 글을 쇠사슬로 봉합시키고 있었으니 어찌 분통한 일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일제로부터 36년의 기나긴 강제점령기(강점기)도 모자라, 그 절반에 해당하는 세월을 박정희 독재자 친일파로부터 제2의 강제점령을 당했으니 하는 말이다.

    


    보시라! 박정희가 대한민국 국민 탄압을 하기 위해 얼마나 지독한 준비를 한 인물이었는지 말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구국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반해, 박정희는 일제 앞잡이가 되기 위해, 후배양성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뿌리치고 - 문경 훈도(교사) 직을 뿌리치고 - 만주로 올라가, 당시 일본의 국왕이었던 쇼와 덴노에게 일본인으로서 개와 말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혈서 -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 박정희] - 를 쓴 끝에 만주국육군군관학교에 2기로 입학하여 예과(1942년)를 우등으로 졸업했으니 그의 친일은 그 어떤 친일파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라며 자발적인 창씨개명을 하고, 당시 만주군관학교 예과 상위 성적학생에게만 주어지는 관행에 따라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2년)에 진학해 졸업하고 현역 만주군 육군 소위로 전역하였으니 ‘친일파 중에 친일파’가 아니란 말인가?


      파일:박정희.jpg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게는 친일파의 피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일본 육군 소위가 된 박정희는 일본이 패망하자 소련군 포로가 되어 고투 끝에 간신히 도망한다. 가까스로 귀국한 박정희는 남조선국방경비대(육군사관하교 전신)에 들어가서 포병 소위 계급을 부여받는다. 복무 도중에 셋째 형인 박상희가 대구 10.1 사건으로 경찰에게 사살되자, 남조선로동당(남로당)에 들어가서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들의 군사총책으로 활동하게 된다.
     남로당 활동 당시 박정희는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에서 감행했던 작전 중에 가장 큰 규모였으며 가장 성공에 가까웠던 정부전복 기도사건(대한민국 국방경비대 침투사건)을 지도했다. 소령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던 1948년 11월에는, 김창룡이 주도한 숙군 작업 도중에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연루돼 체포됐으며, 결국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당시 동거녀 이현란은 공산주의가 싫어서 월남한 사람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박정희에게 실망하고 만다. 게다가 박정희가 딸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사실까지 이현란에게 들통이 나자 1950년 2월 헤어진다.

    
    


    박정희 어머니 백남의는 셋째 아들 박상희가 경찰로부터 총살당하고, 박정희마저 사형선고를 받자, 그 충격으로 세상을 저버린다. 바람 앞 촛불 같던 박정희의 목숨은, 한 때 만주에서 같이 근무했던 만주국 출신의 당시 육본정보국장이던 백선엽 대령의 구명에 의해 힘겹게 사형은 면하여 민간인 신분의 군속으로 일하게 된다. 6·25가 발발한 덕에 박정희는 육군에 재편되고 포병소령이 된 이후 군 생활을 영유하기 시작하여 육군 소장(별 둘)까지 오른다. 4·19이후 장면 정부가 들어서자 과거 남로당 사건이 알려지면서, 더 이상 진급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앙심을 품고,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군화발로 대한민국을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기회주의자 박정희는 18년을 대한민국 국민을 옥죄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를 비평하는 인물들은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었다. 남산 중앙정보부에는 선량한 시민들이 잡혀와 줄을 서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병신이 되지 않으면 죽어서 나와야 했으니 국민을 처참한 지경에 다다르게 한 장본인 아닌가! 어찌 언론의 자유가 있었으며 집회를 함부로 할 수 있었는가? 그런 전철을 박근혜는 그대로 시행하려하고 있었다. 누구와 같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고로 김기춘 쪽 대리인단은 문화예술인의 블랙리스트를 당연한 과정으로 인정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의 집권은 아버지 박정희를 잇는 독재의 과정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둔한 두뇌로는 아버지 박정희만큼 철저하지 못해 결국은 최순실이 개입되는 국정농단이 되고 만 것 아닌가? 이런 것을 뒤집으려고 박근혜를 감싸고 도는 국가 부역자들과 그 일행들이 갖은 애를 쓰며 탄핵반대집회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그 탄핵반대 집회를 더 열렬히 할 수 있도록 박근혜가 3·1절 하루 전날 감사메시지를 보내 더욱 증가시키려는 기세란다.
     


     3·1절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국회와 헌법재판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물론, 언론까지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있단다. 또한 어김없는 색깔론도 나왔다. 이들은 “국회 해산” “언론 해체” “종북 척결”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국가 죄인이자 친일 중 친일의 수괴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감싸 돌고 있는 중이다. 경향신문은 “안모씨(30)는 “박 대통령은 지인(최순실씨)에게 믿고 맡겼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라며 “좌파들이 나라를 완전히 삼키려는 것 같아 탄핵에 반대하게 됐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이라는 문구가 담긴 보자기를 몸에 두르고,. ‘공산주의 싫어요!!’라는 손 팻말을 든 참가자도 보였다는 뉴스다.
     이들이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와 삼촌 박상희가 남로당 출신(빨갱이)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인지, 아니면 무식한 결론을 아무데서나 표현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박정희 독재정권 18년 동안 세뇌(洗腦)를 당했으면 진짜 빨갱이는 모르고, 올바르고 진실한 소리를 하는 이 - 촛불 탄핵 집회 - 를 몰아간다는 것인가!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박정희 국화 발 독재자의 거짓 정책의 입김이 한반도에 서리고 있다는 것인가! 박정희가 정말로 빨갱이였으며, 그 딸이 박근혜인 것이다. 확실하게 알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감사메시지에 정신줄까지 놀 것인가!!! 박근혜는 국민을 선동할 자격도 없다. 만일 그녀의 말을 믿고, 그렇게 쫓는 이가 있다면, 그들은 곧 국가 부역자(附逆者) -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이 - 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박근혜를 가까이 하다보면 결국 국가 부역자도 될 수 있다는 말이 형성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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