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6일 화요일

남북철도협력과 한반도 철도 연결의 의의



남북철도분과협력 회담과 공동보도문과 한반도 철도의 의의

경향신문은
경의선·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 내달 남북 공동조사 들어간다는 제하에,
남북은 26일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에 대한 현지 공동조사를 다음달 24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다북측 철로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는 2007년 이후 11년 만이다경의선·동해선 도로 및 철도 연결·현대화는 4·27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이 명시한 남북 협력사업이다.

남북은 이날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철도협력 분과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동해선·경의선 철도협력 문제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앞으로 이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남북은 오는 724일 경의선 북측 구간(개성~신의주)에 대한 공동조사를 실시한 후 동해선 북측 구간(금강산~두만강)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키로 했다이를 위해 공동연구조사단이 구성된다.

남북은 또 7월 중순 경의선 철도 연결구간(문산~개성)에 이어 동해선 철도 연결구간(제진~금강산)에 대한 공동점검을 진행하며그 결과를 토대로 역사 주변 공사와 신호·통신 개설 등 필요한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경향신문;2018.6.26.)

 

두산백과는 鐵道(철도, railway)를 요약해서
일련의 토지 위에 강제(鋼製궤조(軌條)를 부설하고 그 위에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설비 및 수송체제를 말하는데, 1814년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하여 동력이 기계화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었다철도의 시작은 교통수단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으며, 1825년 영국이 철도 건설을 시작하자 모든 나라에서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고 요약설명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한 문장만 더 가져온다.
철도 선로를 한국과 일본에서는 철도’, 중국에서는 철로(鐵路)’, 영국에서는 레일웨이(railway)’ 독일에서는 아이젠반(Eisenbahn)’, 프랑스에서는 슈맹 드 페르(chemin de fer)’ 등으로 불리고 있듯이그 어원이 철의 길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철도 [railway, 鐵道] (두산백과)

 

한국이 일본과 같이 鐵道(철도)’라고 쓰기 시작한 이유는 일본이 한반도를 만주와 중국의 광활한 대륙을 침범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한반도 식민지 철도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설할 때부터 쓰던 단어이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일제 강제점령기(강점기) 36년의 긴 역사가 주고 간 선물의 단어일까?
아니면 친일파들이 장악한 한국 역사는 일본역사를 그대로 답습한 73년의 긴 세월동안에도 계속 이어지게 한 때문인가?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 중에 우리 고유의 단어가 얼마일까만,
10월 9일 한글날에도 이제는 영어도 아닌 영어가 대한민국 속에서
중국어도 아닌 중국말들이 대한민국 속에서
일본어도 아닌 일본어가 대한민국 속에서 쉴 사이 없이 지껄이며 살고 있으니 自主(자주)적인 국민이랄 수 있을까!
남북 경협을 하지 않으면 고립된 북한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대한민국 국민 중에는 북한과 손을 잡는다고만 하면 미리부터 방정을 떠는 사람들이 많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心情(심정)의 사람인가?

 

일본인들이 섬나라를 떠나 대륙으로 가기위해 얼마나 계략적이었던가?
일본의 대륙에 대한 谿壑之慾(계학지욕)
-시내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물릴 줄 모르는 끝없는 慾心(욕심)-
그래도 (投資(투자(搾取(착취방식을 취했다.
한국 철도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이 韓末(한말)의 철도 부설 과정에서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신속한 군사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앞세웠다.
일본은 군사 행동상의 이유를 들어 서울부산 간서울인천 간의 군사철도 부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그 해 8월 20일 이른바 한일잠정합동조관(韓日暫定合同條款)을 강요할 때 경부선·경인선 간의 철도 수축 공사는 한국 정부가 재정이 아직 충분하지 못함을 고려하여 일본 정부 또는 일본의 한 회사와 체결하고시기를 보아서 이를 기공시킴을 희망한다.”는 조항을 포함시킴으로써 철도부설권을 확보하였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적고 있다.
그리고 1899년 9월 18일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33.2km의 경인선 철도가 국내 처음으로 개통된다.
1900년 7월 7일에 노량진에서 남대문역까지 구간이 개통되었고,
1901년 8월 20일에는 서울의 영등포와 부산의 초량에서 경부선 기공식이 거행된다.
1905년 을사늑약(을사조약)의 체결을 전후하여 1월 1일에 경부선 서울초량 간 445.6㎞ 구간이 개통되었고,
이듬해 4월 3일에 서울문산 간 46.0㎞ 구간이 개통되어 일제의 식민지 정책수행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1908년 4월에 초량부산 구간이 완성됨으로써 경부선 전구간이 개통되었고, 1909년 4월 3일에 문산신의주 구간이 완공되어 경의선 또한 전 구간을 개통하게 된다.
일본의 야망인 만주와 중국으로 가는 관문을 연 것이다.


인천항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경인선,
부산 초량을 통해 대구 대전 등을 거쳐 서울까지 올라오는 경부선의 열차는
일본군을 대량으로 실어 나를 수 있었으며 군수물자 보급로의 順行(순행)의 길이었다.
한양을 장악한 일본은 거칠 것이 없어진다.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던 그 과거를 이해한다면,
우리도 북한을 해방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만도 할 텐데 남북철도 공동점검만 한다고 해도 네이버 뉴스의 댓글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지독한 악풀을 계속 난발하고 있다.
지독하게 착한 나머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국민을 糊塗(호도欺瞞(기만)하는 가짜 보수들의 작전의 일환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네이버를 구독하는 사람들 중에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철도가 일제 당시 한반도에 미친 意義(의의)을 이해한다면 우리 정부가 남북 간 철도 개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남북 간 공동점검을 하고 起工(기공)을 할 때까지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
미국이 북한 제재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퍼 줄 것도 없지만 퍼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데 어떤 이는 지금 마구 퍼주고 있다며 발악적인 상태까지 가고 있다.
미국 트럼프는 북한이 비핵화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미루고,
북한 김정은은 확실한 체제보장을 받을 수 있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비핵화를 할 바에는 강력하게 밀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 한데 북한과 미국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남북 간 통신도 통관 절차도 통행을 위한 교통수단의 철길도 뚫을 준비를 미루지 않겠다며 남북이 만나 합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물 중 남북철도협력분과회담 공동보도문을 26일 작성 발표한 것이다.
청년 일자리는 물론 남북 경협을 하게 되면 만사가 다 풀릴 수 있을 것인데 북미의 줄다리기가 길어지면서 기획된 일들의 進陟(진척도가 더디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다음은
남북철도협력분과회담 공동보도문 전문 내용이다.

남과 북은 2018년 6월 26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철도협력분과회담을 진행하고동해선경의선 철도의 연결 및 현대화와 활용에서 제기되는 실천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

1. 남과 북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에 따라 진행하는 동해선경의선 철도협력 문제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앞으로 이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동해선경의선 철도 현대화를 위한 선행사업으로서 북측구간(금강산-두만강개성-신의주)에 대한 현지 공동조사를 빠른 시일내에 진행하기로 하였다.
① 남북철도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공동연구조사단을 먼저 구성하기로 하였다.
② 현지 공동조사를 7월 24일에 경의선부터 시작하고이어서 동해선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우선 7월 중순에 경의선 철도 연결구간(문산-개성), 이어서 동해선 철도 연결구간(제진-금강산)에 대한 공동점검을 진행하며그 결과를 토대로 역사주변 공사와 신호·통신 개설 등 필요한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과 현대화를 높은 수준에서 진행하기로 하고이를 위해 철도 현대화를 위한 설계공사방법 등 실무적 대책들을 구체적으로 세워 나가기로 하였으며그 결과에 따라 착공식은 조속한 시일내에 개최하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번 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추진하는 데서 제기되는 실무적인 문제들을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하여 문서교환 방식으로 계속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018년 6월 26
판 문 점

 


원문 보기;

2018년 6월 25일 월요일

김종필에게 역사는 어떻게 쓸까?



역사는 김종필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도 전 국무총리 고 김종필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25일 확정했다는 뉴스다.
경향신문은 2018년 6월 25일 자에
시민훈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 요구라는 제목을 걸고
일단 정부는 김 전 총리에 대한 서훈 결정 근거로 관행을 들었다최근 타계한 전직 총리들 중 이영덕·남덕우 전 총리에게 무궁화장이 추서됐고박태준 전 총리에게 청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는 것이다김 전 총리 훈장 추서는 전직 총리에 대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예우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들도 모조리 독재자 박정희를 도와 독재정치를 하게 만든 사람들인데 지난 정권에서 훈장을 주었다고 같이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떫다.
분명 독재정치를 도와 자신만의 영광을 누린 인물들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일당(一堂이완용(李完用, 1858 ~ 1926)은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어서 안 된다는 것인가?


우리가 판단하는 이완용을 일본은 어떻게 보며 생각하고 있는데?
 또 일본이 김종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김종필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었다.
아베는 23일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게 돼 깊은 슬픔을 견디기 힘들다.
김종필 전 총리는 일-한 국교 정상화에 직접 참여해 오늘의 일-한 관계의 기초를 놓은 분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김종필은
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고 했던 인물이다.
굴욕외교의 장본인인 김종필을 바라보는 일본은 남다르지 않은가?
잘 알다시피 이완용이 일본과 수교를 위해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한반도에 철도가 놓아지며 발전이 될 수 있었다는 일본인들의 사고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들은 한반도를 짓밟아 대륙을 저들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목적으로 철도를 놓았다는 생각은 뒤로 미루고,
일본으로 인해 한국이 퀴퀴 묵은 구시대에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는 망상 속에서 역사를 왜곡하며 살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것인가?
지난 정부에서 관행적으로 부패한 짓들을 한 것들이 쌓여 積弊(적폐)로 된 것을 청산하자고 하는 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가관이다.
이완용에게 日帝(일제)가 훈장을 수여했으니 김종필에게 대한민국 무궁화장을 줘야 마땅하다는 의도인가?
문재인 정부가 이제부터 하향 곡선으로 지지도가 내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부겸 행정안전부(행안부장관의 본성이 들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다.
김 장관 본인은 아무리 진보적인 사고를 지녔지만,
김종필을 박정희 독재자를 도와 국가재건에 이바지 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앞서가고 있다는 것인가?



경향신문은 김종필 평가를 박정희 독재 시대 1기와
1987년 민주화시대부터 김영삼 김대중 시대까지 2기로 구분하여 2기에서는 김종필이 민주화 이후 정치에 참여한 것으로 나누고 있는 구절이다.
김 전 총리의 정치 생애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주역으로 시작해 박정희 정권의 영원한 2인자로 매김한 유신 말기까지(1)와 1987년부터 2004년까지 이어진민주화 이후 보수정당 당수 시절(2)로 나뉜다김 전 총리에 대한 호의적 평가는 상당 부분 2기 삶에 근거를 두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1997년 김대중·김종필 연합(DJP연합)을 통해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것이다일종의 정치적 평가다.(경향신문)
솔직히 김종필의 2기 정치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독재 잔재 정치꾼들을 그대로 같이 이어오며 그 세력으로 김영삼 김대중의 힘을 갈라 지역정치로 나라를 3등분 한 주역 중 주역 아닌가?
그 세력으로 인해 민주화가 또 얼마나 뒤로 물러났었던가?
결국 이명박근혜까지 이어지면서 積弊(적폐國家(국가)를 만들어버린 것이 누구의 짓이던가?
역사는 김종필을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가?


김종필이 박근혜를 가운데 두고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에게 붙었다가,
박근혜 탄핵이 시작되자 최태민과의 관계를 털어놓으면서 右往左往(우왕좌왕)의 節槪(절개)도 없는 언행으로 국민들을 混沌(혼돈)으로 빠져버리게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자신의 野慾(야욕)을 위해 한평생 2인자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서 민주화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을 죽은 다음에 무궁화장을 追敍(추서)하면 문재인 정부를 국민들이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는가?
행안부 김부겸 장관의 뜻에 이낙연 총리가 한 발 뒤로 물러나고 말았던가?
기자들의 질문에 이 총리는 김종필 훈장 추서에 관한 발언은 평소와 다르게 차분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떨리며 언변이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고 김종필 장례식장을 방문하지 않을 때는 그 의미가 분명 있는데 그대로 넘어갈 것인가?
눈을 감아 줄 것을 감아야 하고 正義(정의)가 바탕 하지 않는 일은 꼭 뒤탈이 나게 돼있다.
잘 파악하고 다져나가기 바란다.


전 총리 이영덕과 남덕우에게 준 무궁화장도 박태준 전 총리에게 준 청조근정훈장도 생각 같아서는 모조리 회수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김종필에게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종필의 공훈이 있었다면 김종필이 92세까지 살고 있었을 때 주지 왜 죽은 다음에 추서하려고 했나?
추서는 어쩔 수 없었을 때 즉 전사를 했다거나 상훈자가 살아생전 받을 수 없을 만큼 시간적으로 부여할 수 없을 때 추서돼야 올바른 것이지,
이 나라는 꼭 죽고 난 다음에 훈장추서가 있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는
이완용 총리에게도 한반도 발전을 시킨 공훈을 밝혀 무궁화장을 줘야 하고,
친일파들도 모조리 索出(색출)해서 훈장을 추서하라!
전두환 노태우에게도 또 줘야 한다.
하기야 그들은 대통령 취임하면서 무궁화대훈장을 부부동반으로 미리 가져갔지!
이들 훈장도 벌써 회수했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독재정치를 해도 대한민국은 죽은 다음에는 훈장을 받을 수 있는 나라에 속하게 됐으니 노태우 전두환도 각별히 모시는 나라로 遁甲(둔갑)시켜야 하지 않은가?
왜 적폐청산은 하자고 하는가!
적폐의 사람에게 훈장을 주면서 적폐청산은 왜 해야 한다는 말인가!
모조리 다 내다 던져버려라!
한심한 지고!
역사가들이 역사를 어떻게 적어야 올바르게 적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원문 보기;
 "제2의 이완용되더라도.." 다시보는 '달변가' JP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