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4일 목요일

손석희 앵커와 손혜원 의원의 공통점



언론은 왜 손 씨들을 겨루고 있나?

손혜원(1955~ 숙명여 중 고홍익대 시각 디자인 학사 석사무소속 서울 마포 을의원을 SBS가 정초부터 끌어내어 마구잡이로 흔들어데더니 이번에는 Jtbc 손석희(1956~ 서울 출생휘문고국민대 국어 국문과 학사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저널리즘 석사대표이사 앵커가 폭행을 했다며 경찰 고소를 당했다는 뉴스다.

댓글에는 보수계와 조중동 그리고 SBS까지 의심하면서 탓하는 글들이 즐비하다.

자유한국당(자한당세력이 국회를 떠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가짜 보수로 인해 이념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세상은 과거로 回歸(회귀)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연일 이어지는 당쟁도 모자라 이번에는 언론사 앵커까지 끌어내고 있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손석희 앵커와 같이 한 A라는 기자는 4년 전부터 알고 지낸 적이 있을 뿐 말도 되지 않게 취직부탁을 한 것에 가볍게 톡톡 친 것을 두고 폭행당했다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을 오기를 부린 것인지 A의 뒤에 정말 누가 있는지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문재인 정부를 위해 최선을 다한 두 손 씨 아닌가!

'투기 의혹' 손혜원, 오전 11시 기자회견

손혜원 의원은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 캠프 홍보를 담당했고,

손석희 앵커는 박근혜 탄핵을 위해 최순실(최서원)의 태블릿PC를 공개하면서 촛불 혁명의 단초(端初)를 이루게 한 공로자 아닌가?
더불어 정의의 편에 서는 뉴스를 하기 위해 형평을 맞추려 노력하는 손 앵커에게 있어,
가짜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눈엣가시라 아니할 수 있을까? 
손 석희 대표에게 怏心(앙심)을 품고 있는 가짜 보수들이 한둘일까 하는 생각까지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 태블릿PC가 아니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다 끝내 감옥행이 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있어 그를 둘러싼 그 어떤 挑戰(도전)도 언제든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도 한 적이 없지 않았으며 손석희 대표를 끌어내려고 하는 가짜 보수의 虎視耽耽(호시탐탐)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A라는 그도 의심치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태우 전 수사관이 자신의 잘 못은 뒤로한 채 보수 언론에 휩싸여 마치 영웅처럼 문재인 청와대를 困惑(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현실에서 손혜원 의원의 구설과 손석희 앵커의 폭행이 국민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을 것인가?

경찰 “손석희 JTBC 대표이사 폭행 혐의 내사 중”

동내 건달이 사람을 때린 것은 뉴스거리가 될 수 없지만,
사회적으로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알려진 이가 폭행을 했다면 대단한 Hot issue가 돼가면서 사회를 흔들 수 있는 것이다.

손혜원 의원의 예술가적 발언으로 볼 때는 당연하게 수긍도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도,
정치인으로 보았을 때는 대단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대략 90분간 손혜원 의원의 기자간담회(1.23. 목포 나전칠기박물관 예정의 낙후된 건물에서 열림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기자들이 손혜원 의원 목포 투자의 건이 '투기'라는 단어가 없어져야 한다고 인정되는 다음부터 이해충돌(김영란 전 대법관은 김영란법에 이해충돌 법까지 제안했는데 자한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당시 반발하면서 삭제되고 없어진 소중한 법)로 말을 바꿔 손혜원 의원을 휘말리게 하려고 유도한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손 의원은 결국 지치다 못해 이해충돌 더는 질문 받지 않겠다는 말까지 나오게 한 다음 입맛에 맞는 것만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한다는 기사를 쓰고 있었다.

진심이 묻어난 손 의원의 말은 묻어버리고 기레기들의 기사만 포털에 올라오고 있는 현실이 언론에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나?

언론의 자유도 사실을 벗어난 언론은 자유에서 빗나간 왜곡된 언론이 되는 것이다.

포털사이트도 보수들의 금전만능 권리에서 블로그 글들까지 막아버리고 있으니 진정한 사람들의 글은 묻히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돈에 눈이 어두워져 목포조차 귀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권력이 강했거나 능숙한 언변에 밀린 나머지 진심이 바닥에 깔려버렸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손석희 앵커의 일도 어떻게 변하게 될지 의문이지만 정의는 항상 살아나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싶다.
 2017.04.23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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