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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6일 금요일

제 버릇 개 못 주는 2023 윤가네 1탄!


 김병주 의원이 결국 세상에 우뚝 서게 됐구나!

 

참 사람은 말을 어눌하게 한다는 통계적인 思考(사고)는 역사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孔子(공자)의 어눌한 말솜씨부터 우린 쉽게 전해 받고 있다.

수천의 제자를 배출한 그의 덕행은 오직 실행에 있었다.

단지 그 당시 세상이 그를 인정하려하지 않았다는 게 중국 역사에 가장 큰 실수였을지 모른다.

예상컨대 공자의 어눌한 발음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의심도 해보지만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듣는 쪽에서는 신뢰가 들지 않을 때도 종종 있는 법이니까!

공자께서 얼마나 말을 어눌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따금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의 언행을 볼 때마다 그와 想像的(상상적) 비교하는 버릇도 내게 생겼는지 모른다.

 

 

노자께서도 達辯(달변)자를 좋게 보지 않았다.

道德經(도덕경) 마지막 81장에서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善者不辯 辯者不善 (선자불변 변자불선)[착한 이는 달변이 아니고 달변인 자는 선하지 않다].”라고 노골적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 중에서 자신은 아니라며 헛소리라고 할지 모른다만,

혼자 곰곰이 생각하면 그 해답은 나온다고 알만 한 사람들은 인정했다.

좌우간 말 잘하는 사람치고 말 수가 적은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게 돼있다는 것은 진리라고 해도 되지 않을지.

노자께서도 多言數窮(다언삭궁) [말 많으면 자주 곤경에 빠진다].”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정치꾼(달변가로 선거에선 승리하고 당선되면 제 욕구 채우기 바쁜 인간)들 중에 달변가들이 많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따금 김병주 의원이 나오는 방송을 들을 때마다 발음도 한국인 발음이 아닌 것 같고,

말도 더듬는 것을 보며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키도 크지 않고 작은 키에 인물도 썩 잘 생겼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항상 단정하게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볼 때마다 고맙게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비례초선의원이지만 4성 장군 출신답게 씩씩하게 일처리를 잘하고 있음을 본다.

국민의 알 권리를 책임감 있게 정리 정돈하여 방송해주는 그에게 감사한다.

그런 이를 간첩으로 취급하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란 말인가?

 

 

윤석열이 또 떼 똥을 싸질렀다는 말 아닌가!

 

군미필자가 4성 장군 출신을 간첩으로 몰았다면 대한민국의 위상에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 아닌가!

그것도 현직 국회의원을!

이것도 사과하지 않는다면 윤석열(인간이 덜돼도 지극히 덜된 인생)과 그 일당들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할 게 빤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변해도 윤석열의 바닥 철학은 변할 수 없다는 것 이젠 다 알잖은가?

 

 



연합뉴스는

국방위 국민의힘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 글에서 "민주당이 우리 군보다 북 무인기 항적을 먼저 알았다면 북한과 내통하고 있다고 자백하는 것 아니냐""그 내용을 누구로부터 어떤 경로로 받았는지 국민 앞에 설득력 있게 해명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는 보도를 냈다.

간첩으로 보지 않고서야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윤가네(정권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찌그러진 양아치 집단)와 국민의힘(국짐;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의 짐 당) 합작으로 三人成虎(삼인성호)하고 있으니 나라꼴 잘 돌아가겠구나!

확실하게 국회 민주당은 원인을 밝혀야 한다.

이 기회에 인간 김병주가 어떤 인물인지 세상은 확실하게 알 것 같구나!

 

 


 

* 착한 사람이 불의에 의해 열을 받으면 정의감이 더욱 강해지는 법!

제 밥벌이도 못하는 윤가네는 사퇴하라!

--- ‘날 간첩으로 몰아?’ 본회의장 뒤덮은 김병주의 사자후...“이적행위 취급까진 참았다! 윤석열은 사과하라” ---

동영상

https://youtu.be/NnrAyeChXVk

 

 

* 윤석열이 너무 까불고 있다는 증거!

죄 없는 사람 죄인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테지!

--- 포스타는 절대 건들지 말았어야, 굥과 똥별들 억지 박살낸 김병주 해냈다, 4성 대장 포스 뿜어냈다 "죽음을 각오하고 굥무리와 싸우겠다 " ---

동영상

https://youtu.be/qXltvcrLr8Q

 

 

* 매를 번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함정을 판다는 말도 있다.

인간은 그만큼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명언을 하고 말았다.

--- 또 자기소개 하고 있는 모지리 윤석열---

https://youtu.be/ChTj8fsJyHQ

 

* 세상은 끼리끼리 노는 게 맞아!

까마귀가 속 검은 백로의 집을 찾기도 하지만!

--- 윤석열의 실수인가? 계략인가? '비운의 황태자' 운명 덮어쓴 한동훈, 일리있는 변희재 판단 ---

동영상

https://youtu.be/yTy796PH8Vc

 

 

참고;

https://www.yna.co.kr/view/AKR20230106040651001?input=1195m

 

2022년 3월 31일 목요일

이준석 키워주는 국민들이 더 무섭지 않은가?


이준석을 당대표까지 만들어준 사회가 두렵지?

 

사회 흐름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고 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란 인간들끼리 가장 많이 부딪혀 이뤄지는 사회이다 보니 결국 인간들의 심성에 따라 다변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가장 건전한 사회를 원하는 사회가 되고자하지만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본다.

가장 올바른 판단은 인간들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말도 인간들이 만들어 놓고 자연의 섭리에 따를 생각은 하지 않고 진리라는 것을 만들려고 하는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옛 성현들의 말씀을 생각하다보면 아주 조금씩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내 뜻과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할 때가 이따금 있어 그런 답변을 거부할 때가 종종 있었다.

결국 그 문장을 기억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풀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물론 내가 풀어낸다고 하지만 그분의 기초적인 생각과 어찌 같이 갈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숙제는 항상 있다고 하니까 삶의 피곤함에서 해방되고자 미루고 만다.

결국 내 인생에 있어 숙제만 잔뜩 남기고 세상과 하직하게 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버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들을 풀어놓고 세상과 하직했을지...

 

조물주는 세상을 고르게 만들지 않았다.

자연의 凹凸(요철)의 심오함만큼.

결국 인간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 생각 또한 제각각이다.

그래도 인간들이 인간들끼리 기준을 정하려고 노력은 했기 때문에 올바른 쪽으로 기우러지려고 하는 동향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올바르다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바르지 않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세상사 아닌가!

그래도 올바른 세상을 위해 애쓰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만 해도 참으로 다행한 세상이라고 본다.

 

老子(노자)께서는 도덕경 제2장 서두에,

세상이 모두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나쁜 것일 뿐이고,

모두가 착하다고 아는 것은 착하다고 하는 착함이 아닐 뿐이다[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 皆知善之爲善斯不善已(천하개지미지위미사악이, 개지선지위선사불선이)].’라고 문장을 연다.

아름다운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 아름다움의 극치까지 내가 어찌 알 수 있을 것이며 사람의 선량함을 어떻게 선량하다고 가볍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자신이 올바르다고 할지라도 주위에서 보는 눈들이 아니라고 하면 그의 속에 분명 사악한 나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들키는 것 아닌가?

인간의 내면에는 악과 선이 항상 동시에 꿈틀거리며 선이 악을 짓눌러주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세상 속에 온 것을 다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국민의힘{국짐당; 힘없는 사람은 항상 힘이 없다고 업신여기며 권력이 강한 인간에게는 한없이 머리를 숙이는 국민의 짐 당- 권력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인간들의 집단} 이준석 대표(이하 이준석)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련)와 왜 각을 세워야만 할까?

전장련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와 허구한 날 왜 다퉈야 하는 것인가?

이준석이 단 하루라도 몸의 일부분을 다쳐 힘든 고통을 당해본 적이 있던가?

그 답변을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대표께서 저와 함께 휠체어를 타고 단 일주일만 장애인의 삶을 체험해봤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 입만 가지고 까불지 말고 체험을 하는 당 대표가 한 번 된 다음 국민 앞에 서보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거의 모든 성현들은 지식만 머리에 넣으려하지 말고 행동의 德行(덕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대한민국 지도자가 그런 정도로 행동으로 옮긴 지도자는 얼마나 될까?

행동으로 옮겼어도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르게 옮겼을까?

상대의 고민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며 숨을 쉬고 있을까?

대한민국 정치는 정치적으로만 풀려고 하는 정치꾼들만 봐왔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치를 지극히 싫어하는 국민들이 대다수 아닐까?

내게는 아직까지 존경해야 할 만한 대한민국 대통령조차 없다는 게 너무 불쌍하다.

작은 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작은 틈을 만들지 않겠다고 지극히 노력한 지도자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니 나는 청맹과니가 아닐까?

 

당 대표를 그 당 당원들이 뽑는다고 하는데 국짐당 당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했기에 입만 산 사람을 당 대표로 내세웠을까?

입만 산 사회를 위해 국짐당은 국가에서 꼭 필요한 존재의 무리일까?

지식은 인간의 심성을 올바르게 깨우치기 위해 쌓아야 하며 그렇게 잘 쌓아올린 지식은 자신의 원대한 삶을 위해 실천해야 ()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는 성현들의 삶을 우리는 머리로는 이해를 하며 실천하지 못한다면 배운 지식은 입으로만 튀어나가게 되는 것 아니던가?

그래서 이준석을 보고 하는 말이 못된 짓만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 않은가?

色魔(색마) 박정희 유신독재자가 아주 조금만 먼 세상을 볼 줄 아는 위인이었다면 지금의 논쟁이 벌어질리 없다고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멀쩡한 사람들만을 위해 금쪽같은 돈 들여 지하철 건설한 것만도 만족하라고요?

1970년대 당시 선진국 지하철에는 장애자를 위한 시설이 만연했는데도?

엘리베이터까지 달 수 없었다면 달 수 있는 자리라도 확보해 놓을 생각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솔직히 멀쩡한 사람들만 국민으로 생각하고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보시라!

그 때 장애자를 위한 생각이 있었다면 작은 돈으로 놓을 터라도 구입할 수 있었을 것을 지금은 엘리베이터커녕 그런 자리 마련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말았는데 이런 자들이 어떻게 전 국민을 위하는 위정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지하철 들여오면서 정치자금 빼낼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을...

결국 지하철 놓게 된 것도 민주공화당 정치자금 출처의 가장 핵심이었다는 것까지 말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우리 어렸을 때 대부분 부잣집 아이들은 불구가 된 아이들을 놀려먹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쉼 없이 바라보며 컸다.

물론 그 부잣집 아이 뒤를 졸졸 따르던 가난뱅이 아이들도 따라 붙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거의 가난하고 힘없는 아이들이 불구가 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며 친구가 됐다.

하기야 우리와 같이 놀 수 있는 장애 아이들은 그래도 움직일만한 아이들이었다.

정말 힘든 아이들은 학교는커녕 집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 되던 그런 시절을 우리는 경험했다.

그 아이들은 수명도 아주 짧았다.

장애자는 어디에 나설 수도 없었고 조금 당당하게 나서면 그 자리에서 윽박지르던 그 시절 장애자는 슬펐다.

욕도 바가지로 얻어먹던 그 시절 그 아이와 같이 놀아주던 그 아이들은 천사가 아니면 무엇이랴!

입으로만 장애우를 돕자고 하지 말고 진정한 마음의 행동으로 옮기는 국민적인 덕망이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이준석의 마음에 장애자의 입장이 돼가는 아주 작은 易地思之(역지사지)의 자세만이라도 갖춘 인간이었다면 뭇 국민으로부터 빗발치는 시선을 받지 않았겠지.

입만 나불거리며 착하고 여린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신뢰를 얻었을까만,

국민의 올바른 길로 유도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올바름이 아닐까 본다.

대한민국 70여 년의 민주주의 역사 속에 독재자의 역사가 자그마치 절반도 넘는 37년의 세월 중에서 수구 기득권들이 착하고 여린 국민을 짓밟아온 세월에 장애자들의 아픔이 얼마나 포함됐던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석이 누구의 영향에 의해 컸는지를 본다면 그 해답도 쉽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듣지 않겠다는 옹고집장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게 차리리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그들은 그렇게 淘汰(도태)되면서 사회는 뒤바꿔져야 하니까!

인간은 지식을 쌓고 덕행으로 옮기고 나면 勇氣(용기)가 일어나는 참사람으로 변하는 守則(수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기억하자!

 

---0---

 

----[천기누설] 133- “이준석, 그렇게 정치하면 안 돼!” JB가 풀어주는 혐오정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김종배 & 박지훈) 동영상

https://youtu.be/KsYMlvYkk3c?list=PLfdPfcp_xIq_a8_ps88fNX97zXGA1VoO5 

 

참고;

https://news.v.daum.net/v/20220331175559455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전두환 노태우을 기자들이 찬양하면?


  

사람의 죽음 앞에선 엄숙해져야지만...

 

인간의 존엄은 그 얼굴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인간의 얼굴은 喜怒哀樂(희노애락)에 대해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니 다른 동물들과 달리 존엄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즐거울 때 웃는 얼굴을 할 수 있고 그 웃음에 더해지는 웃음소리가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면 인간의 즐거움은 만끽돼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성난 얼굴도 지을 수 있어 그 성이 심해지다 못해 북받치게 되면 입으로 최대한의 憤怒(분노)하는 감정의 언어까지 토해내는 인간과 인간들!

슬퍼지면 자연스럽게 눈으로부터 눈물이 흘러나오게 돼있어 슬프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인간의 얼굴들!

이런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존귀한 인간들의 생명을 앗아간 인간들도 있으니 얼마나 사악한 일인가?

 


 

인간의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일 것이다.

특히 부모의 別世(별세)에서는 얼마나 많은 슬픔이 밀려오는가?

그래서 남의 부모가 死去(사거)했을 때도 자신의 부모의 喪禮(상례)와 같이 모든 행동에 존엄을 갖추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들 한다.

이런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그 도리를 잘 지켜가는 사람에게 尊嚴(존엄)의 가치가 더해지는 것 아닌가!

때문에 사람의 죽음이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처럼 애석한 죽음을 인위적으로 자행한 인간을 殺人者(살인자)라고 한다.

고로 살인자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인간들 간의 通例(통례)로 전해오고 있다.

심지어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난 다음 상대 적군을 죽인 것에 대해 동양에서는 상례에 준하는 예식을 치러야 했는데도 수많은 인간들을 사정없이 죽인 자들은 살아있는 夜叉(야차)饕餮(도철)이 아니고 무엇으로 표현해야하나?

 

기자들이 아직도 두 사람 이름 뒤에 대통령단어를 붙어주는 기자들은 얼마나 많은 승은을 그들 선친이나 자신이 받았을까?

 

 


 

2500여 년 전의 老子(노자)께서 적은 글을 보면 얼마나 인간의 죽음을 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도덕경 제31장 마지막 구절에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임해야 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할지라도 상례로서 대처한다[殺人之衆 以悲哀泣之 戰勝以喪禮處之(살인지중 이비애읍지 전승이상례처지)].”라고 적고 있다.

또한 제 31장의 특별한 내용은 참사람은 무기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하되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잡아야 할 때는 슬픈 마음을 앞세워 정결하게 해야 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적을 죽이는 일을 할 때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전두환과 노태우는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지역적 감정을 앞세워 광주학살을 했다.

헬기를 이용해서 다연발총까지 사용했다고 하니 광주학살의 참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슬픈 일인데 저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인간의 탈을 쓴 저 두 자들의 숨이 끊어졌다.

박수를 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괘씸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이 지옥으로 간 것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 虛脫(허탈) 상태에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부하들에게 살인 명령했다는 소리를 끝까지 하지 않고 자기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광주학살 이후 대권을 한 번씩 탐하고 수많은 돈을 착취했으면서 광주학살은 미궁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으니 얼마나 음흉하기까지 한 인두껍을 쓴 사악의 절정들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저들에게 범행을 自白(자백)하고 사죄를 받으라고 그렇게 바랐건만 저들은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다.

단지 노태우의 아들 입을 통해 사과한다는 말이 나왔을 뿐인데 문재인 정권은 노태우에게 아까운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장을 치러주고 있었다.

()정권조차 국민을 우롱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그 돈도 자신들의 돈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

문재인을 둘러싼 현재 인간들 중에도 전두환 노태우 독재와 독선의 정치 시절 그들에게 받았던 것{이들은 대량 학살자들로부터 돈이든 명예를 받은 것을 두고 은혜를 받았다고 할 것} 때문에 지금도 국가장에 손을 들이밀며 만지작거리고 있을지 누가 알까?

두 살인자들의 돈도 영예도 모두 국가 국민의 것이거늘 이들은 마치 전두환과 노태우 것인양 받아먹으면서 承恩(승은)을 받은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끔직하다.

그들의 후예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잘 알고 있듯 모든 종교는 거짓말과 도둑질 그리고 살인죄를 온전한 종교 계율에 꼭 집어넣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이 세 가지 다 하고 죽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만큼 인간에 있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전두환과 노태우는 자신들의 富貴(부귀)榮達(영달)만을 위해 부하들을 시켜 수백 명 국민들을 살인했고 수천 명의 국민들이 중경상자들이 되고 말았다.

더불어 적지 않은 국민들이 행방불명된 상태로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이 두 사악한 인간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문재인처럼 노태우의 아들이 사과 같지도 않는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

謝過(사과)라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사과가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사과가 어느 정도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태우가 전두환처럼 국가에 낼 추징금을 남기지 않고 다 냈다는 것으로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내야 할 돈을 낸 것인데 어떻게 그런 것을 내세울 수 있는 변명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국가에 법적으로 내야 할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내더라도 근본적인 傷痕(상흔)은 남게 되는 법인데,

()정권은 노태우가 자백한 것도 아니고 그 아들이 에둘러하는 말에 감동받은 나머지 국가장까지 허용했다는 것도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영삼이 그렇게 정치를 했기 때문에 지금의 국민의힘이 못된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더 이상 인간 같지도 않는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말은 하고 싶지 않구나!

 

기자들에게 말 하건데 대통령 직이 벌써 날아간 사람들에게 아직도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참된 기자로서 할 일인가?

 기자들이 그들을 찬양하는 그 순간부터 그들은 학살자들에게 승은을 받은자나 후예의 대접을 받게 되지 않을지 의심되지 않는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가 쓴 글 내용만 참고로 올려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 전광판에 둘째 며느리 박상아의 이름이 빠져 있어 조문객의 눈길을 끌었다.

 

23일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전 대통령의 빈소 앞 전광판엔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 차남 전재용씨, 3남 전재만씨, 딸 전효선 씨 등이 이름을 올렸다.

 

고인의 부인 이순자 씨와 손자·손녀 11명도 이름을 올렸다. 전재국 씨의 아내인 첫째 며느리 정도경 씨 이름도 있다.

 

그런데 전재용 씨의 부인이자 배우 출신인 둘째 며느리 박상아와 전재만 씨의 아내인 셋째 며느리 이윤혜 씨의 이름은 빠져 있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뉴시스에 "가족이 많은 경우 첫째 며느리만 적기도 한다. 이름 적는 건 유가족이 결정한 내용이라서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다"면서 "정확한 사유는 확인이 어려우나, 정도경 씨가 첫째 며느리라 그녀의 이름만 쓴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전재용 씨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뒤 지난 2007년 박상아와 세 번째 결혼했다.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이후 박상아는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박상아와 전재용 씨는 지난 3월 함께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에 출연해 근황을 전한 바 있다.

https://news.v.daum.net/v/20211123182708165

 

2020년 11월 14일 토요일

나경원 같은 수구 악증들이 왜 없을까?


 나경원과 같은 수구 惡症(악증) 인간들이 왜 없을 것인가?

 

동양의 유명한 성현들은 ()’이라는 글자보다 ()’라는 쪽으로 쓰곤 했지만, 서양에서는 ()’이라는 문자로는 나쁘다라는 의미를 충분히 발휘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이 앞섰던 것으로 악을 넘어 邪惡(사악)’하다라고 하든지 惡魔(악마)’라는 단어도 쉽게 써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기독교에서 ()에 견주는 단어로 ()을 더 심하게 강조하는 지도자들의 등장이 자주했던 것으로 미루지 않을 수 없다.

악을 강조하는 이유는 선을 더 돈독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동양의 孔子(공자)老子(노자)의 생각은 악을 ()로 하여 밉다’ ‘나쁘다’ ‘싫다라는 의미로 자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든 ()이든 한자 모양은 같은데 발음을 달리하며 뜻 또한 부드러운 감을 주는 것으로 보아 동양의 성현들은 될 수 있으면 나쁜 것에 강한 강조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서 볼 때 ()의 반대말은 不善(불선)’으로 했다는 것에서 볼 때 ()’이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착하다악하다의 차이보다 착하지 않다는 표현은 마음속에서 비춰보더라도 나쁜 것을 더 강하게 강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나쁜 것을 나쁘게만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는 증거가 아닐지?

 


 

이 사람도 노자나 공자의 마음처럼 쓰기는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선의 반대를 악으로 배워왔고 연속적으로 악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악하다라는 단어를 가볍게 쓰고 있는지 모른다.

예수로 인해 기독교 사상이 구약보다 신약이 정리된 것 같았지만 기독교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들의 입장은 더 많은 신자들을 얻어내기 위해 더 강한 단어를 동원했기 때문에 2000여 년 동안 기독교의 단어들도 더 강력하게 변하고 있지나 않았을지?

악함의 극치를 넘어 惡魔(악마)들의 등장 또한 可觀(가관)적으로 강해지면서 지옥과 천당의 구분을 더 크게 벌려버리지나 않았는지 기독인들만의 반성이 이 부분에서 꼭 필요하지는 않을지?

물론 동양신학에서 악마의 이름을 饕餮(도철)이나 夜叉(야차) 같은 것으로 부르며 그 잔인성을 더 크게 높였던 것으로 볼 때 평소 사악한 일을 하게 되면 사후에 내리는 징벌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인간의 양심을 더 좁히려고 하던 생각들을 했었기에 인간들 마음의 狹小(협소)함과 惡辣(악랄)함까지 드러나게 되지 않았을 것인가만,

인간들의 사악함이란 자신들이 그린 것보다 더 잔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깨우친 인간들이 더 잔인하게 인간의 굴레를 스스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인간들의 俗心(속심)까지 들어난 것을 인간들은 자나 깨나 반성을 해야 하건만, 깨우친 인간들은 깨우치지 못한 인간들에게 더 심한 짓까지 이끌어내면서 끊임없이 자신들이 선하다고 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들은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둘레를 보아가며 남에게 핑계를 돌리는 인간들은 얼마나 치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는 잘 보고 있는 중이다.

나경원이 그처럼 또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검찰이 그리고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부가 인간의 사악함을 스스로 감춰가며 나쁜 짓을 멋대로 하기 때문 아니던가?

 

 


헤럴드경제가 낸

나경원 "조국처럼 안 살았다"..신동근 "우리는 나경원처럼 살지 않았다"’라는 제하의 보도내용보다 그 댓글들을 읽어보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인간들이 이처럼 자신의 들보는 볼 수 없고 남의 눈에 들어있는 티끌만 보려고 하고 있는 게 얼마나 稚拙(치졸)한 양심이던가?

검찰과 사법부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나경원 같은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그 못된 입을 열고 살 수 있을지?

기독인들이 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살아가는지를 나경원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들 가슴속에는 예수와 하나님이 벌써 죽어 없어져버렸지만 그들의 집이나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학교 재단 같은 데에는 십자가가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신앙을 사야한다는 인간들이 선한 인간들을 저울질하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착하디착한 선자들까지 더럽게 물들인 기독교신앙인들의 비좁은 생각 때문에 세상은 참으로 더럽게 변해가고 있지나 않는지?

 

 


다음은 헤럴드경제가 적은 보도내용이다.

https://news.v.daum.net/v/20201114194901162

그 댓글을 보면 나경원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그대로 실어져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을지?

물론 나경원을 옹호하는 饕餮(도철)과 야차들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나경원과 같은 守舊(수구) 惡症(악증)의 인간들이 왜 없을 것인가?